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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읽는 당신이 옳다

나는 당신에게 공감을 하고 있을까?

by 고강훈

7월 11일 저녁 마흔한 번째 북토크에 참석하게 되었다. 금요일에 열리는 북토크는 참석하기 힘들다.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날은 가까스로 몸과 마음이 같이 움직이게 되었다. 불금을 서점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사실 정혜신 작가님의 북토크 소식은 뒤늦게 알았다. 편성준 작가님의 페이스북에 소개된 글을 읽고, 진주문고에 작가님의 이름을 떠올리게 된 경우다. 그 후로 바로 신청하였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치유자로, 심리적 “CPR(심리적 응급처치)” 개념을 중심으로 우리 내면의 고통과 공감의 방식을 이야기한다. 외과의사가 칼로 수술하듯 말로 하는 수술(상담)하는 언어의 치유사이다.

책도 두 권을 바로 구매했다.


당옳 ‘당신이 옳다.’

손당옳 ‘손으로 읽는 당신이 옳다’


북토크 전 작가님의 책을 다 읽고 참석하는 편이지만, 이날은 정말 생으로 참석하였다.

맨 앞자리에 한 자리가 남아 가까이에서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책의 배경


‘손으로 읽는 당신이 옳다’는 ‘당신이 옳다’가 출간된 지 7년 만에 출간된 책이다. ‘당옳’역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사건에 의해 독방에 갇힌 한 재소자와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그분께 책을 보내주며 글을 써달라고 부탁하였지만, 수많은 거절로 돌아오며 시간은 흘렀다. 그분이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분에게 글을 쓰게 함으로써 정혜신 작가도 나도 쓴다고 다짐하였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당옳’을 읽고 필사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하였다. 사람들의 필사를 모은 ‘당옳’은 ‘손당옳’로 탄생하였다.

공감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

공감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누군가의 감정에 귀 기울이는 것은 그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공감은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따뜻한 시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감을 방해하는 것들이 나올 때면 다정한 전사가 되기도 한다.


챗GPT에 물으면 친절하게 대답한다.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정혜신 작가님도 말씀하셨지만, 맞는 말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이건 공감이 아니다. 일단 말이 많다. 앞서간다.

청중에게 챗GPT를 사용한 적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어느 분은 챗GPT에 부부 문제를 늘어놓기도 하고 자녀 문제를 말하기도 하였다. 해결책이라 제시하지만, 공감을 얻기에는 부족하다. “힘드셨겠네요. 뭐라고 위로드릴지 모르겠습니다.” 뭐 이 정도 말은 들을 수 있다.

여러 가지 방법도 제시를 해준다, 사람에 따라 이 녀석과 대화하면서 위로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챗GPT로 사주를 본 적이 있다. 답변은 장황했다. 더 궁금한 게 있을까요? 이렇게 되묻는다. 나는 됐어. “다 아는 내용이야.” 데이터베이스와 자료를 수집에서 늘어놓는 수준이라 생각했다. 명리학은 생년월일시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기에 웹에서 수집해 오니 맞을 수밖에. 얼마나 잘 수집하고 업데이트한 내용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작가님은 “너는 누구니?”, “너 괜찮니?” 같은 이런 시선과 시각 자체를 공감이라 이야기하신다. 말이 아니라 태도가 공감되는 것이다.



위로가 아닌 치유

“당신이 옳다”는 단순한 위로 문장이 아닌, 존중과 존재 인정을 통해 서로를 치유하는 책이다. 북토크에 참여한 청중과 감정을 인정하고 공감하고 관계를 치유한 시간을 가졌다.

각자의 사연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쏟고, 감정을 공감하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저마다의 사연에 청중들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흐르는 감정대로 흘러가다 보니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북토크는 1시간 30분 예정이었는데 3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KakaoTalk_20250721_174437985_04.jpg 정혜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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