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Hidden Gems
#1 리바이어던

1차 세계대전 배경에 SF를 곁들인 대체역사 이야기, 리바이어던

by 샤샤
넷플릭스가 야심차게 선보인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중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운 작품들을 발굴해보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첫 번째 주인공은 바로 '리바이어던'입니다.


히사이시 조 음악이 만나는 바이오펑크 vs 스팀펑크 서사시


넷플릭스를 켜고 애니메이션 섹션을 둘러보다가 '리바이어던'이라는 제목을 본 순간,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또 다른 괴물 액션물이겠거니 하며 클릭했는데, 첫 화 오프닝에서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부터 예상이 빗나갔음을 깨달았다.

이 작품은 단순한 괴수물이 아니다. 1차 대전이라는 역사적 무대 위에 바이오펑크와 스팀펑크가 맞붙는 문명의 대결을 그린 대체역사 서사시다.


만약 다윈의 진화론이 무기가 된다면?


리바이어던의 세계관은 우리가 아는 1914년과는 비슷하면서 완전히 다르다.

협상국은 '다윈주의자'가 되어 바이오펑크 기술을 발달시켰다. 거대한 고래를 개조한 비행전함 'HMS 리바이어던', 바다를 지배하는 생체 괴물 '베헤모스'가 그들의 주력 병기다. 상상해보라. 하늘을 나는 거대한 고래 배 안에서 유전자 조작된 메신저 도마뱀이 전령을 전하고, 해파리 모양의 정찰기가 적을 감시하는 모습을.

반면 동맹국은 '클랭커'라 불리며 스팀펑크 기술로 거대한 증기기관 보행로봇과 철갑 전함으로 무장했다. 톱니바퀴와 증기가 만들어내는 기계 문명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설정만으로도 이미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성경의 괴물에서 철학의 상징까지


제목 '리바이어던'이 단순히 큰 바다괴물의 이름이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이 괴물은 토마스 홉스의 정치철학서 제목이기도 하다.

홉스에게 리바이어던은 강력한 국가권력을 상징했다. 개인들의 혼란(베헤모스)을 질서로 통합하는 거대한 힘 말이다. 애니메이션에서 리바이어던이 다양한 생물들이 하나로 결합된 거대한 생명체로 나오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작품은 이런 철학적 메타포를 바탕으로 개체와 집단, 자연과 인공, 질서와 혼돈이라는 근본적 질문들을 던진다.


정체성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두 영혼


도망친 오스트리아 왕자 알렉산드르와 남장 여성 파일럿 딜런 샤프. 이 두 인물이 거대한 생체 비행선에서 만나면서 벌어지는 모험은 단순한 액션을 넘어선다.

알렉산드르의 고민은 왕족으로 태어났지만 전쟁을 원하지 않는 평화주의자라는 점이다. 부모가 암살당하고 독일 제국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그는, 자신의 신분 때문에 오히려 많은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 예술을 사랑하고 타인을 돕고 싶어 하는 선한 본성과 왕족으로서의 책임 사이에서 갈등한다.

딜런 샤프의 고민은 더욱 절실하다. 여성이지만 남성으로 위장해 군대에 들어간 그녀는 매 순간 정체가 발각될까 봐 전전긍긍한다.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한 열정과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당시 사회에서 여성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진정한 자신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고통이 그녀의 핵심 갈등이다.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과정


흥미로운 건 발로 박사와 릴리트 등 여성들이 전부 샤프가 여자라는 걸 알아차리는 동안 가까이 있으면서도 후반까지 전혀 떠올리지 못하는 알렉의 둔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샤프에게는 해방감을 준다. 성별을 의식하지 않고 순수하게 동료로, 친구로 대해주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된 후 잠시 거리감을 느끼지만, 결국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입맞춤을 나누기도 한다. 이들의 사랑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다.


사랑의 진정한 의미: 정체성의 해방


알렉과 샤프의 사랑이 특별한 이유는 서로의 진짜 모습을 받아들인 사랑이기 때문이다.

알렉은 샤프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그녀의 용기와 실력을 인정한다. 성별이 아닌 인간 그 자체로 바라보는 것이다. 샤프 역시 알렉이 왕족이라는 부담스러운 신분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선한 본성과 평화에 대한 의지를 사랑한다.

이들의 사랑은 정체성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해방의 사랑이다. 알렉은 샤프를 통해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으로 타인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찾고, 샤프는 알렉을 통해 여성으로서도 당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최종화에선 고향으로 귀향하며 자신의 나라는 물론 세계를 돕겠다 선언하는 알렉의 모습과 정식 리바이어던 승무원으로 복무하게 된 샤프의 모습은 이들이 서로를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았음을 보여준다.


오렌지의 3D 애니메이션 혁신: 더 이상 3D 같지 않은 3D


제작사는 《트라이건 스탬피드》, 《비스타즈》로 3D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지평을 연 오렌지다. 이들의 가장 큰 강점은 3D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3D 같지 않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3D 애니메이션의 어색함이나 플라스틱 같은 질감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2D 애니메이션의 자연스러운 표현력과 3D의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특히 거대한 고래 내부가 하나의 완전한 우주함으로 기능하는 모습은 3D 기술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시각적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준다.

리바이어던에서 오렌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생체공학 생물들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살아 숨쉬는 비행선의 내벽, 촉수처럼 움직이는 통신 장치들, 심장박동처럼 고동치는 엔진실까지. 모든 것이 진짜 살아있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여기에 감정적 깊이를 더한다. 기계와 생물이 충돌하는 장면에서도, 두 주인공이 우정을 쌓아가는 순간에도 그의 멜로디는 이야기에 완벽하게 스며든다.


왜 지금 리바이어던인가


2025년 현재, 우리는 AI와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공'과 '자연'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리바이어던이 던지는 질문들 - 기술은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가, 개인과 집단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 은 지금 우리에게도 절실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