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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집게도 아니면서

선무당이 자꾸 선을 넘네

by 글임자
2025. 9. 19.

< 사진 임자 = 글임자 >


"평소에 학교에서 쪽지 시험 같은 거 자주 봐?"

"응."

"그럼 풀 만 해 어때?"

"그런대로 풀 만 해."

"그래."

"근데 국어는 어떻게 시험에 나오는지 모르겠어."

"국어도 평소에 시험 보는 거 아니야?"

"봐. 수행평가 같은 거 해."

"그럼 비슷하게 나오겠지."

"수학도 봐?"

"당연하지."

"근데 수학 시험지는 한 번도 엄마가 못 본 것 같다?"

"수학은 선생님이 걷어가셔."

"그래? 왜 걷어가시지?"

"나도 모르지."

"수학이 어렵진 않아?"

"뭐, 그런대로."

"그럼 다 맞아?"

꿈도 야무지지, 어떻게 수학을 다 맞을 수가 있단 말인가.

수학에 특히나 약했던 나는, 나의 전생 같은 건 까마득히 잊고 감히 수학 문제를 다 풀어서 맞았냐고 딸에게 묻고 있었다.

(아주 지극히 나의 경우에만 해당되겠지만) 수학 문제를 다 틀릴 수는 있어도 다 맞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고 장담한다(물론 창피하지만 이것도 지극히 나의 경우에만 말이다). 그만큼 나는 수학에 약하다고 이쯤에서 양심고백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다 안 맞아."

"그래? 그럼 한두 개 틀려?"

"응. 그 정도."

"그럼 정~말 잘하는 거네."

수학은, 50점만 맞아도 잘하는 거다. 반씩이나 맞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말이다.

나에 비하면 딸아이는 천재다, 천재. 수학 천재!

"영어 시험 문제는 아마 뻔할 것 같다. 엄마 생각에 기본적으로 단어, 숙어는 다 알고 있으면 쉬울 것 같고, 본문 내용 다 이해하고 있으면 중간에 접속사 넣는 문제라든가 시제의 일치, 단, 복수 문제, 그리고 그 자리에 'to 부정사'가 오는지 아니면 'ing' 형태가 오는지 그거 말고는 별 거 없을 것 같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도 오지랖이다.). 물론 둘 다 취하는 게 있긴 하지만 일단 교과서만 잘 봐 두면 훨씬 쉬울 것 같은데."

라고 오지랖을 한참 떨었다.

"지금은 'to 부정사'만 나오는 것 같은데? 아, 맞다. 그리고 비교급, 최상급 나와."

"아, 지금 그거 배우는 거야?"

"응."

"beautiful'을 조심해야겠네. 보통 비교급은 원형에 'er'을 붙이고 최상급은 'est'를 붙이지만, 이건 3음절 이상이니까."

"more, the most 붙이면 돼."

"그래."

"근데 또 조심할 게 하나 있어. fun 알지? 그건 또 달라. 보통의 경우처럼 er, est를 붙일 것 같지만 예외적으로 more fun, most fun이라고 해."

"왜?"

"정확히는 엄마도 몰라. 뭔가 이유가 있겠지?"

"거 참 이상하네."

"그렇지? 이상하지? 원래 다 그런 거지. 우리나라 말도 어쩔 땐 왜 그렇게 쓰는지 이해 안 될 때가 있잖아."

"하긴."

"근데 그건 아직 너희들 문제에 나올 것 같진 않고. 엄마 기억에 그것도 아주 나중에 배웠던 것 같은데. 잊어버리고 있다가 최근에 '입트영' 듣다가 나오니까 또 생각나더라."

"그래?"

"지금은 3음절 이상 단어가 그것밖에 생각이 안 나네. 또 뭐가 더 있을 텐데."

"expensive!"

"맞다. 그거."

역시, 네가 엄마보다 더 낫다.


딸이 등교를 하고 난데없는 학구열에 도대체 왜 "fun'은 'funner'아닌지 너무너무 궁금해졌다.

원래 'fun'은 명사로 시작했다고 한다.

재미, 즐거움.

생각해 보니 아무 생각 없이 썼던 'I had a lot of fun!'을 떠올려보니 아주 쉽게, 그리고 금방 이해가 됐다.

아,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이따가 딸이 돌아오면 이야기해 줘야지.

물론 딸이 궁금해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딸에게 거절당하면, 그럼, 아들에게라도 얘기해 줘야지.

둘 다 듣고 싶어 하지 않으면, 그냥, 나만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어야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아프지만 알아다오,

다 필요 없다.

건강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그저 건강이 최고다, 라며 '건강 우선주의'를 줄기차게 주장하면서도 또 겉과 속이 다른 내 모습에 화들짝 놀란다.

당연히 건강하면 좋다.

바랄 게 없다.

그러나,

욕심이 살~짝 난다.

딸이 건강하기도 하고, fun의 비교급을 funner가 아닌, more fun으로 확실히 안다면 더 좋겠다.

이렇게 극성맞은 엄마라니...

이따가 '이브닝 스페셜'에 꼭, 질문해봐야지.



<저 화제의 fun에 대해 정확히 아시는 분들의 댓글 적극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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