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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담 Sep 02. 2024

소주 반 잔

우린 가족끼리 강릉을 여행하고 있었다. 

언니가 지역에서 소문난 횟집을 찾아서 갔는데, 엄마는 직원에게 술은 됐다고 하고 회만 4인분을 주문했다.

정말 맛집이 맞았는지, 회가 나오기 전에 무슨 전골이 나왔는데 국물이 정말 진하고 맛있었다. 뒤따라 나온 회도 신선하고 감칠맛이 났다. 

나는 소주가 없는 게 좀 아쉬웠다. 회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면 정말 딱일 것 같은데. 

"나 이거 소주랑 먹고 싶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옆에 있던 아빠가 불쑥 술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진짜로 아빠 앞에는 절반도 안 되게 차 있는 소주병과 잔 두 개가 놓여있었다. 

나는 너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아빠가 술잔에 소주를 반만 따라 나에게 주었다. 둘이서 잔을 부딪히는데 술이 흘러넘치자, 아빠는 오래 잔을 부볐다.  아빠의 오랜 버릇인가 싶었다. 문득 아빠와 술을 마신 적이 처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빠는 오랫동안 아팠고 지금도 아픈 와중에 잠시 여행 온 거라 팔에도 깁스를 하고 있었다. 깁스를 들어보니 주사를 맞은 자국이 보였다. 엄마는 감염이 되니까 오래 보지 말라고 하고, 나는 잠시 아빠의 깁스 위를 쓸었다. 정말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다. 

회 한 점과 함께 소주 반잔을 마셨는데, 그게 그렇게 기가 막힐 수가 없었다. 처음 아빠와 술 마시는 이 시간. 이 시간이 너무너무 귀하고 가슴이 벅찼다. 


나는 그렇게 꿈에서 깼다. 원래 아빠 꿈을 꾸면 깨고 나서 한동안 생각해 보게 된다. 아빠가 살아있나, 죽었나. 그러다 깨닫는다. 아빠는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암으로 돌아가셨다. 


최근 나를 괴롭히는 일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어젯밤에 못된 생각을 했던 것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한 번씩 문제가 생기면 걱정, 불안, 나쁜 감정에 휩싸이는 반복은 정말 죽을 때까지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죽어서 끝을 내자니 남아있는 자식들이 걱정이었다. 그런데 어차피 나도 아빠 없었지만 잘 살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던 것이다. 


 꿈에서 깨고 보니 허탈한 게 아니라 너무너무 좋았다. 잠에서 깨고도 마음이 꽉 차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꿈속에서 아빠와 잠깐 잔을 기울여 본 것인데도 그것이 너무 생생해서 '와, 나 아빠랑 술 마셔봤다.'이런 생각이 들어 막 신이 나는 것이다. 그러다 깨달았다. 아빠의 죽음이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고. 만약에 지금 내가 죽고 내 자식이 커서 고작 꿈속에서 잠깐 나랑, 그것도 소주를 한 잔도 아니고 고작 반 잔 기울여본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뻐하고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미어졌다. 


 유난히 막내딸을 예뻐하셨던 우리 아빠. 내가 찾는 소주를 얼른 꺼내 놓는 아빠가 정말 우리 아빠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아빠가 날 지켜보고 계시는구나. 어젯밤에 잠깐 교회를 다녀야 되나, 신을 믿어야 하나, 나는 너무 불안하고 자기 자신도 못 믿으니까 뭐라고 붙잡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빠가 날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해져서, 아침에 다시 깨보니 걱정되는 마음이 없어졌다. 모든 게 다 잘 될 것 같았고, 잘 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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