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드림 프로덕션-인사이드 아웃 속 세계

어쩌면 본작보다 더 기발한 스핀오프

by 온화

라일리의 머릿속 꿈 제작소에서 한 꿈 감독이 흥행작을 만들려고 고군분투하며 악몽 같은 상황에 직면한다.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작품인 <드림 프로덕션-인사이드 아웃 속 세계>는 픽사의 인기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스핀오프인 시리즈로, 라일리의 감정을 주관하는 캐릭터(기쁨, 슬픔, 소심, 버럭, 까칠)가 아닌, 라일리의 꿈을 제작하는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제목에 프로덕션이 들어가는 이유는 이 작품이 라일리(인간)의 꿈이 만들어지고 라일리가 꿈을 꾸는 과정을 할리우드에서 영화가 제작되고 상영되는 과정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라일리의 뇌 속에는 드림 프로덕션 제작사가 존재하고, 제작사에는 주인공 폴라 퍼시먼을 포함한 다양한 꿈 감독 및 연출 스텝이 소속되어 있다. 그들은 매일 예산과 계획에 따라 라일리의 꿈을 만들고, 라일리가 잠에 들면 실시간으로 라일리의 시야로 작동하는 카메라 앞에서 라일리의 꿈을 상영한다. 라일리가 잠에서 깬 후에도 꿈을 잊지 않거나, 라일리의 꿈이 현실에서 라일리가 좋은 행동이나 생각을 하도록 기여한다면 그 꿈은 흥행작이 되고, 흥행한 꿈이 많을수록 꿈 감독의 위상과 처우도 높아진다.


<드림 프로덕션>의 주인공 폴라 퍼시먼은 라일리가 어렸을 때 수많은 좋은 꿈들을 만들어냈지만, 라일리가 십 대 청소년이 된 지금은 남들이 보기에 ‘지금 라일리의 나이대에 맞지 않은, 유치하고 뒤떨어진’ 꿈만을 만들어내며 부진하고 있다. 위기에 빠진 폴라가 ‘퇴물 감독’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아니면 재기에 멋지게 성공할 것인지가 바로 <드림 프로덕션>의 핵심 줄거리가 된다.


<드림 프로덕션>을 <인사이드 아웃> 관람객을 위한 단순 ‘팬서비스’ 차원의 콘텐츠로 간주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드림 프로덕션>은 <인사이드 아웃 2>를 넘어서는 정교한 세계관과 뛰어난 상상력, 그리고 개성적인 캐릭터를 자랑한다. 메시지 또한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단일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사이드 아웃 2>보다 더 심층적이다. 꿈에는 두 가지 의미, 첫 번째는 잠자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적 현상, 두 번째는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을 가지고 있다. <드림 프로덕션>은 라일리의 꿈을 만들기 위해 매일 치열하게 일하는 드림 프로덕션의 이야기를 통해 꿈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들고, 멋진 꿈을 만들고 싶어 하는 주인공 폴라의 이야기를 통해 변화 속에서 한 개인은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꿈을 실현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우리에게 안긴다.

드림 프로덕션


첫 번째로, 인간의 꿈에 관한 치밀하면서도 창의적인 재현이 <드림 프로덕션>에 나타나 있다. 우리가 황당한 꿈, 무서운 꿈, 행복한 꿈 등 다양한 종류의 꿈을 꾼다. 이를 반영하듯이 드림 프로덕션 제작사에는 ‘모든 것을 짜릿하게 만드는’ 액션 감독 솅, 모든 것을 무시무시하게 만드는 악몽 감독 지지, 모든 것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코미디 감독 자크 등 각자의 전문 분야를 지닌 다양한 꿈 감독이 소속되어 있다. 또한 우리는 매일 꿈을 꾸지만, 어떤 꿈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어떤 꿈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생생했던 꿈은 시간이 지나면서 잊히기도 한다. 이를 반영하듯이, 라일리가 금세 잊어버리는 꿈은 실패작이며, 라일리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꿈은 흥행작이다. 라일리의 감정 구슬처럼, 라일리가 기억하는 꿈들은 구슬로 만들어지며, 라일리가 기억하는 꿈 구슬은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반면 라일리가 점차 잊어버리고 있는 꿈 구슬은 회색으로 변하다가 마지막에는 모래로 사라지고 만다. 우리가 낮에 꿈을 꾸고, 저녁에 꿈을 꾼다는 사실을 반영하여, 드림 프로덕션에는 낮 꿈(백일몽) 전담 감독과 저녁 꿈 전담 감독이 따로 있으며, 저녁 꿈도 라일리의 수면 단계에 따라 얕은 수면 상태(막 잠에 들기 시작했을 때) 꿈 감독과, 렘수면 상태(깊은 잠에 빠졌을 때) 꿈 감독이 분업해서 일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꿈에는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했던 감정이나 경험들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사실을 반영하여, 이 시리즈는 라일리의 감정 본부와 드림 프로덕션 사이 긴밀한 관계를 강조해서 보여준다. 추가 처리가 필요한 라일리의 기억들이 생기면 감정 본부의 핵심 감정들은 그 기억들을 드림 프로덕션으로 보내며, 드림 프로덕션의 감독들은 감정 본부가 보낸 기억들을 영감 및 레퍼런스로 삼아 꿈 내용을 기획한다. 라일리가 잠에 들고 꿈을 꾸기 시작하면 감정 본부의 핵심 감정들은 라일리의 꿈 내용이 어떠한지를 꼼꼼히 모니터링한다. 라일리의 꿈이 라일리의 자아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 감정 본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쁜 꿈 제작에 책임이 있는 드림 프로덕션 임원진을 경질하기도 한다. 이처럼 <드림 프로덕션>은 꿈에 대한 동화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세계관과 스토리를 제시함으로써 우리가 매일 무의식으로 경험하는 꿈의 존재 및 작동 방식, 그리고 그 영향력을 흥미롭게 곱씹어보도록 만든다.


두 번째로, 꿈을 실현함에 있어 가장 본질적인 목표, 다시 말해 ‘내가 처음에 이 꿈을 꾸게 된 이유, 이 꿈에 내가 진심이었던 이유’를 그 어떤 상황 속에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드림 프로덕션>에 담겨 있다. 주인공 폴라 퍼시먼은 <인사이드 아웃> 세계관에서 1편의 기쁨이보다 더 최악의 상황에 처한 캐릭터다. 자신의 부감독인 자넬은 자신보다 뛰어난 감각과 연출력을 인정받아 감독으로 데뷔한다. 폴라는 자신의 ‘최고 파트너’를 잃는 동시에 ‘촉망받는 유망주 감독’에 밀리면서 자신의 입지가 더욱 좁아진다. 새로운 부감독으로 온 제니는 자신의 단점 및 문제점을 지나친 수준으로 비난하기 일색이며, 자신과 정반대인 연출 스타일을 합의도 없이 밀어붙인다. 자신의 상사이자 드림 프로덕션의 회장인 진은 ‘흥행작’이라는 상업적 성공에만 집착하는 속물이다. 실시간 기분 측정 기계를 만들면서까지 ‘빈틈없이 재밌고 강렬한 꿈, 라일리가 절대로 잊지 못하는 꿈’을 만들도록 감독들을 압박하며, 자신의 성공 기준을 달성하지 못하는 감독들을 좌천시키거나 해고한다. 초반에 폴라는 이런 최악인 상황 속에서 하나같이 최악인 선택들만 내린다. 감독으로 데뷔한 자넬에 열등감을 가지고, 은근히 자넬을 헐뜯고 위축시키려고 한다. 제니의 비판을 진지하게 듣고 자신을 성찰하는 대신 쓸데없는 말로 치부하며, 제니와 소통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제니를 아예 업무에서 배제시기 위해 갖은 수를 쓴다. 흥행작에만 집착하는 제작 방식이 라일리에게 해로울 수도 있지 않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는커녕, 진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꿈에 자극적인 요소만 넣는다.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라일리가 몽유병에 걸려 실제로 다칠 위기에 처할 뻔한 사건이다. 폴라는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것 ‘라일리를 위한 좋은 꿈’을 만드는 것이고, 자신이 계속 이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은 ‘라일리의 행복과 성장’인데, 그것을 어느 순간부터 철저히 무시해 왔다는 것을 자각한다. 이후 폴라는 달라진 태도를 보인다. 자넬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한 다음 자넬의 기획과 연출 방식이 지닌 장점들을 배우려고 한다. 제니를 무시하는 대신 제니의 색다른 작업 방식을 이해하려고 하며, 제니와 힘을 합쳐 ‘라일리를 위한’ 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흥행작’을 명분으로 라일리에게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는 끔찍한 악몽을 만들려는 진의 계략을 막아 세우며, 자각몽 상태에서 실제 라일리가 꿈속으로 들어오자, 라일리의 꿈이니 라일리가 원하는 대로 꿈을 만들어보라고 말하여 라일리의 자아와 의사를 존중한다. ‘라일리가 잊지 않을 꿈’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해 왔던 폴라가, 이 꿈을 잊으면 어떡하냐며 속상해하는 라일리에게 ‘잊어도 상관없고, 좋은 아침을 맞이하면 그만이라며 위로하는 장면은 폴라의 인격적 완성을 상징함과 동시에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시청자들에게 인상적으로 전달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로봇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