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하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영화는 중국인 50대 부부인 에블린과 남편 웨이먼드가 세탁소의 영수증을 정리하고 있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에블린의 딸인 조이는 동성애자라는 것을 할아버지에게 쉽게 밝히기 어려워하고 에블린도 그런 조이를 말썽쟁이 딸처럼 생각한다. 초반부터 그 둘의 갈등은 깊어 보였다. 이후의 영화는 세금 체납과 관련하여 미국의 국가기관에 방문해서 백인 여성 직원과 대화를 하던 중에 남편 웨이먼드에 의해 평행우주를 체험하게 되는 에블린의 관점으로 전개된다.
1. B급 감성의 영화, 하지만.
대사만이 맴도는 영화관의 공기 속에 이물질을 불어넣는 것처럼, 영화 초반에 당혹스러운 마음이 ‘이게 뭐지’라는 말로 툭 나와버렸다. 어린 시절 중국어를 오랜 시간 배웠던 나지만 중국어가 흘러나오는 영화는 익숙지도 않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니군! 을 깨달았다. 하하. 더불어 B급영화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지고 있어, (주변의 평이 하도 좋았어서) 더욱 당황한 부분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가 인상 깊고 좋았던 이유는, 많은 것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는 의미) 유머코드도 내 취향이었고 피식하면서 새어 나오는 나의 입꼬리가 더욱 영화를 매력적이게 만든 것도 있다.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이 좋아하는 영화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의 취향이 들어간 장면들과 영감의 단초인 영화들의 자취가 영화의 일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왕가위의 <화양연화>의 이별 연습 시퀀스, <라따뚜이>- 이 장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폭소를 터트렸던 것 같다. (내가 그랬나) , 핫도그 손가락(이건 잘 모르겠다), <매트릭스>, 중국의 쿵후 영화까지. 신박하게 연출된 장면들을 볼 때마다 ‘우와 신선하다’라고 생각했다.
연출적인 부분도, 주제도, 사랑도, 다정함을 이야기하는 것 모두가 엔딩크레디트와 함께 내 마음속에서 새로이 분주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래서 길지만 영화에 대한 사색의 흔적을 날아가지 못하게 잡아두고 싶어서 이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2. 평행 세계에 대해
영화를 본 지는 꽤 시간이 흘렀지만, 나의 가치관에 조금이나마 영향력을 남긴 포괄적인 주제라고 볼 수 있다. 주인공 에블린이 선택하지 않은 모든 순간들이 나눠져서 그 순간들마다 다른 에블린이 살아 숨 쉬고 있고 결국 수만 가지의 다른 에블린의 삶들이 있었다.
삶 속에서, 나는 선택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아이였다. 어느 날 선택을 잘하기 위해선, ‘나’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많은 도전을 했다. 사소한 음식 선택부터 말이다. 지금에서야 고개 들어 거울을 보니 이것저것 뭐든 도전하고 맛을 보는 내가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선택하지 않은, 내 손 지문이 남지 않은 명명할 수 없는 무언가 들은 나의 마음 한 켠에 아쉬움으로 자리잡곤 했다. 하지만 그만큼 선택한 것은 온 마음 다해 나의 지문과 지문이 묻은 것들을 사랑했다. 상대적으로 타인에 비해 더 오랜시간 선택의 시간 속에 머물기도 하면서, 나의 시선을 거두는 방법에 대해 스스로 숙고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영화 속 에블린들을 보면서 선택의 아쉬움에 대한 생각에 잠길 뻔 했지만, 그리고 에블린처럼 현재 나의 처지와 미선택 순간들의 나의 삶에 대해 비교해볼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관뒀다. 그런 생각들은 나랑 어울리지 않는다. 선택할 때 정말 신중하게 하려고 하니까, 그리고 내가 선택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나의 삶의 방식이니까! 그렇기에 무수한 나의 존재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싶었고 그 순간들을 또 응원해주고 싶기도 했다. 또 위로가 되지 않는가? 지금의 나의 상황과는 다른 환경에 처한 내가 있다는 상상이 주는 즐거움과 위로가 있지 않는가. 선택하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미선택에도 숨이 불어 있다는 상상 혹은 망상! 죽은 선택이 아니다라는 것이 나한테는 위로가 된다.
3. 다정함에 대하여
다정함! 어쩌면 영화를 관통하는 한 가지 주제를 뽑으라면 ‘다정함’ 혹은 ‘사랑’이지 않을까 싶다. 세상을 살아가는 전략은 마치 한 사람의 악세사리처럼, 패션처럼 보여질 때가 많다. 그렇게 드러나진다고도 생각하고!
누군가는 까탈스럽게, 누군가는 무던하게.. 융통성있게 누군가는 모든 걸 닫고 반응하지 않게.. 전략을 세우고 익숙해질테지만, 그 누구도 빠짐없이 다정함에는 녹아내릴 것이다. 영위하고 있는 삶이 크림처럼 부드럽기만 한 삶은 단언컨대 없을 것이고 각자 당면한 어려움 속에 둥둥 떠 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 다정한 누군가가 있다면 그 다정함이 힘든 일들을 실질적으로 녹여 없애주진 못해도 마음의 힘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고 장담한다.
어떤 세계에 가도 다정함과 사랑을 이길 것은 없다는 것이 영화의 핵심이란 생각이 든다.
4. 한 사람을 이해해가는 과정
어쩌면 조이를 이해해나가는 과정을 시각화한 것이 영화 아닐까? 자꾸만 평행 세계, 다중 우주,,, 이러한 연출은 결국 ‘한 사람을 이해하기까지에는 우린 그 사람의 다양한 면을 볼 줄 알아야한다’라는 메세지를 담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 말도 있지 않는가, ‘한 사람이 내게 온 것은 그 사람의 생각, 삶, 그리고 등 ’ 그 많은 것들이 같이 오는 것이라고.
그런 것처럼 우리는 결국 한 명의 개체를 이해하고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다양한 면들을 그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서 볼 줄 알아야 한다. ‘나’만의 기준과 나만의 눈높이로 그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나의 무릎을 굽히거나 까치발을 세우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같은 세계 속에서 현실을 살아가지만 살고 있는 정신의 세계는 (연령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하) 정말로 다를 것이다. 영화관에서도 우리는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지만 모두 다른 생각을 하는 것처럼.
‘내 딸 조이‘로만 조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친구인’, ‘누군가의 애인인’.. 앞의 형용사가 달라짐에 따라 그 사람의 세계도 달라진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면, 그리고 있는 그대로 그 세계들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세계들의 총 집합인 유일무이한 그 존재자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제일 못하는 것이기도 하고..
별개로 애정할수록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더욱 어렵다 난 !
5. 베이글
베이글에 대한 생각은 영화를 보던 중에는 크게 없었는데, 리뷰를 작성하면서 괜히 생각해보고 싶었다. 조이는 에블린과 함께 베이글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했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니라 에블린과 함께 들어가고 싶어했다는 점에서 베이글은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포옹해줄 수 있는 그런 동그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오브제가 참, 참신하다. 문의 상징을 가진다고 했을 때 쉽게 떠오르지 않는 것이지 않는가? (물론 블랙홀과 같은.. 그런 것이었지만)
베이글의 모양은 동그랗다. 그 부분에서 나는 일단 ‘원불교’가 (뜬금없지만) 가장 먼저 떠올랐었다. 고등학생 때 윤리와 사상 수업 시간에 , 아마도 동양철학에 대해 배우다가 언뜻 배웠던 것 같다. 물론 감독은 원불교에 대해서 알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궁금해서 찾아봤다. 원불교의 창시자 소태산이 말하는 일원상이 있고, 이는 인간의 본성과 같은 것이라서 어리석음도 요란함도 없는 .. 그름도 없는 것이라고 한다.
베이글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요란함도 없고 그 무엇도 없는 , 하찮은 존재로서의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것으로 이해한 나로서 원불교의 의미도 나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베이글 자체가 블랙홀처럼 무섭게 생겨서인지힘들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저렇게 시각화한 건가 싶기도 했고!
6. 돌 , 우리, 하찮고 시시한 , 그러니까 사랑하고 다정하자
평화로웠다. 이 장면에서 들려오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평화로이 돌이 되어있던 그들만 보였다. 에블린이 자신이 다 망쳤다고 말을 하지만 조부투파키인 조이는, 하찮고 어리석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말한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인간은 스스로가 다 맞다고 생각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세계 속에 있다. 새로이 무언가를 발견할수록 우리가 틀렸다는 사실이 들통나는 것이고 … 고대부터 쫓았던 절대적 지식에 대한 우리의 욕구는 영원히 (어디까지가 또 영원인지도 모르겠다) 미제사건처럼 남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유일무이한 우리 자신과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다정할 필요가 더욱 있다고 생각한다. 에블린의 시선으로만 보던 조이가 아닌 다양한 면을 가진 조이로, 에블린에게 무능력해보이던 남편은 그 누구보다 에블린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응원해주는 동반자임을 느낄 때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