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약 2주 만에 일기를 쓴다. 그 동안 바빴냐고 한다면 글쎄, 잘 모르겠다. 토트넘과 뮌헨 경기가 열리는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4일 간 알바를 했다. 그 동안은 바빴던 거 같은데 나머진 잘 모르겠다.
뮌헨의 오랜(?) 팬이었던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행사 알바를 지원했다. 그러나 어림도 없었다. 경기장 안은커녕 바깥에서 햇볕에 익어갔다. 얼마나 힘든 날씨였으면 끝까지 일을 해낸 알바생이 나 포함해서 두 명이었다. 일하기엔 너무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렇게 일단락 마무리를 한 뒤 집으로 가는 길이다. 기차 안에서 쓰는 일기는 잘 써진다기 보다는 시간 떼우기에 좋다. 2시간 거리인 열차라 잠자기엔 애매하고 무언가에 열중하자니 그러기에도 애매한 환경인지라 노트북을 두들기다 보면 2시간이 간다.
휴가 철이라 그런지 아침부터 좌석이 꽉 찬 KTX다. 이런 모습은 오랜만에 보는 거 같다. 이제 곧 10월이 되고 내 생일이 지나면 청소년 요금(만 24세까지 가능) 할인도 못 받는다. 그 전에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하는데..
가족 여행으로 통영에 간다. 나는 먼 곳을 선호하지 않는다. 통영에서 서울까지 가는 열차가 없어 버스를 예약했는데 4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6시에 통영에서 버스를 타면 서울엔 10시에 도착한다는 것. 고터에 내리면 자취방까지 약 1시간이 걸린다는 것. 그렇다면 나는 약 5시간을 대중교통에 시간을 보내야 한다.
어젠 하루를 보고 왔다. 오늘이 기일이지만 평일이기도 하고..
날씨가 좋다 못해 뜨거워 미쳤었다. 35도까지 올라간다는 게 말이 되나. 떼양볕을 그렇게 올라갔다. 추모공원엔 그늘이 적었고 언덕은 가파랗다. 사실 거리 자체는 그렇게 길진 않는다. 15분 안 걸었던 거로 기억하니까. 하지만 이런 날씨엔 1분만 바깥에 있어도 익을 것 같았다. 이런 더운 날인지를 아는지 아침에 눈을 뜨자 비가 내렸던 흔적이 보였다. 바깥은 시원했다. 시원한 아침이라, 출근하는 사람들도 기분이 좋지 않을까.
작년엔 추모공원 관리자 아저씨가 차를 태워줬다. 이런 날씨엔 힘들다고 말하며.
사실 어제도 좀 기대했지만 친한 형이 싫어했다. 하지만 첫 계단을 밟자마자 아마 그 형도 후회했을 거다. 관리사무소에서 조금 사글사글하게 굴었으면 태워줬을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품으며.
추모공원 입구에 들어서기 전에 편의점이 하나 있다. 거기서 대국을 샀었다. 어젠 어떤 알바생이 편의점을 지키고 있었는데 국화가 없다고 했다. 작년엔 샀었는데 뭐지, 싶으며 바깥을 나왔다. 꽃가게는 닫았고 추모공원 안에 꽃집을 갔다. 국화 한 송이에 8000원을 부르기에 멈칫, 했다. 두 송이면 16000원..
끝나고 나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알바생이 아닌 다른 분이 편의점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국화에 대해서 물어봤고 판다고 했다. 아하, 알바생이라 몰랐던 걸까.
집에 돌아가는 길 자꾸 국화가 밟혔다. 그래도 비싼 국화가 나은가. 사실 꽃은 거기서 거기 같은데.. 이것도 내가 잘 몰라서 할 수 있는 소리겠지.
날이 너무 더워서 올라가다 외쳤다.
이 새낀 왜 이렇게 더울 때 뒤져서는..
그러자 그 형이 드립을 이었다.
자긴 찾아오기 쉬운 곳에 묻힐 거라고.
일 년 만에 보는 하루는 여전했다. 사진은 변함 없었고. 옆 자리엔 어떤 아저씨가 들어왔다는 점 빼곤 작년과 같았다. 맑은 날이었고 하루는 전망 좋은 곳에 묻혔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자 쿠팡이 잘 보였다. 1년 사이에 쿠팡이 들어왔네.
매 해마다 가는 중국집을 갔고 여전히 푸짐했었다. 아이스크림이 사라졌다는 점이 아쉬웠다. 사라진 지는 반 년 정도 되었다고 했다.
행사 알바를 하는 4일은 끔찍하게 더웠다. 이것도 매일 더워하니 익숙해졌는지 어젠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이젠 옷이 스포츠 소재이기만 하면 땀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대체로 친절한 편이다. 물론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할 때만.
그래서 어떤 아저씨는 내게 '매일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 했다. 나도 좋았다. 그 아저씨는 거의 4일 내내 온 거로 기억한다. 아마 경기가 아닌 집 근처 마실에 산책 나온 거 같았다.
그리고 행사인 만큼 곳곳엔 알바생 천국이었다. 난 그런 알바생한테 더 마음이 갔다. 나이도 비슷해 보이고 더 친절하게 대했던 거 같다. 나는 맥주 부스에서 시음을 도우거나 재고를 관리하는 역할이었는데
어떤 쿠팡 알바생에게도 여느 알바생과 다를 바 없이 친절하게 맥주를 줬다. 그게 좋아 보였던 건지 그 알바생은 내 손에 키링을 쥐어주고 갔다. 쿠팡플레이와 토트넘, 뮌헨이 그려진 키링. 그게 좋았다. 뭔가를 받았다는 것 또한 기분이 좋았고. 굿즈를 좋아하는 내겐 인상 깊었던 경험이니까.
행사 알바의 묘미는 역시 뒷처리 같다. 행사가 끝나고 남은 재고나 물품을 갖고 오는 거. 혹은 행사에서 뿌리는 상품을 쉽게 가져올 수 있는 거. 이번 행사에선 맥주 부스라 뭘 챙겨온 게 없었던 터라 알바생이 준 키링은 소중했다. 마지막 날, 피디는 맥주를 가져가고 싶은 만큼 가져가라고 했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약 15개를 챙겼다. 가방 안에 가득 채워진 맥주 무게만큼이나 몸은 무거웠지만
뭔가를 얻어 간다는 게 기분 좋았다. 사실 이렇게 땡볕에 고생해도 일급 10도 안 되는 열악한 알바였기에
무언가를 보상 받고 싶은 욕심이 컸다. 혹시나 나도 싸인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4일 내내 유니폼을 챙기고 다니곤 했으니까.
밀린 일기를 쓰다 보니 뭔가 길어졌다.
이제 말을 줄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