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모임 발제 중 하나가 "2달 뒤에 죽는다면 무슨 일을 할 것인가?"였다. 내일 죽는다면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이야기처럼 어쩌면 뻔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발제였다. 하지만 각자가 가진 생각은 뻔하지 않았다. 오히려 뻔한데 뻔하지 않는 느낌이랄까? 발제자는 2달의 시간을 정한 것은 너무 짧은 것 같아서 넉넉하게 설정해 보셨다 하는데 먼저 자신은 세계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언급했다.
만약 여러분은 지금부터 2달 뒤에 죽는다면 어떤 일을 하고 마칠 것인가? 한그루가 뻔하다면 여러 그루를 심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도전적인 이야기보다는 일상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마칠까 한다는 이야기, 슬퍼할까 봐 알리지는 않고 막판에 알릴 거란 이야기도 있었다. 여러 이야기 공존하는 것만큼 각자의 색깔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그렇다면 나의 경우는 어떠할까? 나는 누가보든 말든 나만의 생각을 남기고 죽는다는 생각으로 책 한 권쓰고 가겠다는 포부 아닌 포부를 밝힌 것 같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뜻도 맞을 것이지만 한 사람의 생각을 남긴다는 것은 초월의 영역이란 생각이 든다. 시간을 초월하여 그 사람의 생각을 듣거나 읽는 것은 곰곰이곱씹어 보면 거룩하기까지 하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 내 생각을 탐험함으로 일말의 영감을 얻는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할 것 같다. 기록은 인간의 유한성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수단을 마련해 준다. 사람은 모두 죽지만 몇천 년 몇만 년이 지나도 행적은 남는다. 그리고 기록에 의해 더욱 뚜렷해진다. 이는 직접 경험하여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엔 없지만 그들의 생각은 여전히 기록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진정한 가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나온다. 만약 기록이 완성되면 좋겠지만 그건 아쉬워하는 후대 사람들의 마음인 것이고 당사자는 꾸준히 하다가 어느 날 급사하더라도 아무것도 모른다. 그는 결과를 보지 못한 채 죽었지만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았는지 그의 삶에서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과정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결과는 이를 확증해 준다.
물론 과정 중에 다른 길로 새서 전혀 다른 결과을 보일 수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판단하는 타인의 욕심이다.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자기 삶의 과정을 즐길 것이다. 사후세계가 있다면 그가 아쉬워할지 모르지만 그것 역시 판단하는 자의 욕심일 수 있다. 매일 삶을 가치 있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가치 있게 보낼 수는 없다. 항상 즐거운 것도 아니며 보람찬 매일매일이 될 수는 없다.
줌아웃을 하다 보면 각자만의 궤적은 뚜렷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과정에서 삶이 끝나더라도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며 스스로 만족했으면 뭐라 할 수 없다. 결국 스스로 행복하기 위해서 결과만을 바라봐서는 행복을 양 껏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과정에서 스스로의 만족을 구축하는 것은 어쩌면 아등바등한 삶의 기록에서 먼 길을 돌고 돌아 이제서야!라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찾기 위한 여정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