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직장도, 세 번째 직장도 퇴사.
그렇게 1년 반 만에 졸업 후 내 첫 직장을 퇴사하고 선택한 직장은 콜센터였다. 제법 돈을 많이 주는 곳이었는데, 그만두면 당장 먹고살기 바쁜 나에게 아주 적합한 직장이었다고 생각한다.
콜센터 퇴사 후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오래 생각해 보고 좋은 직장을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제법 심사숙고하고 앞으로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와 조기재취수업 수당까지 포기하고 선택한 직장이었다.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무조건 내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냥 적당히 벌면서 적당히 스트레스받고, 적당히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삶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적당히의 기준은 블로그에서 주구장창 얘기하고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콜센터에서 근무하면서 정신이 피폐해진 건 덤이었고. 돈을 많이 주는 직장이 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직한 곳이 학원 행정실이었다. 제법 큰 학원이었고, 업무 체계도 제법 잘 갖춰져 있던 곳이라. 나는 내가 그곳에서 잘릴 때까지 평생 근무할 줄 알았다.
너무 바빠서 매일 개인 카톡 확인할 시간도 없이 너무 바빴다. 심지어 내가 앉은자리 위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원생 관리 목적이었으나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한 날은 오랜만에 핸드폰을 바꾸려고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었는데, 직장으로 받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해 마이그레이션 하려고 업무가 바빠지기 전 행정실 선생님들에게 보여줬다. 근데 그 모습을 보던 대표님이 한마디 하셨다. 요새 너무 일에 집중을 못하는 게 아니냐고.
계속 CCTV만 보고 있다는 것도 기분이 나빴지만, 평소에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매일 보고 계실 분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것도 속이 너무 상했다. 아마 그때부터 내 맘속에 불행의 싹이 트기 시작했던 건 아닐까. 이제와 생각해 본다.
회사에 장기 근무자들에게 주거지를 위한 사내 대출이 있다고 대표님이 먼저 말씀을 해주셨다. 대표님과 부원장님(대표님 아들)이 업무적으로 나를 제법 좋게 평가해주고 계셨고, 내가 제법 상담에 재능이 있어 보였는지 나를 키우고 싶다고도 하셨다. (배운 게 도둑질이었나 보다.) 나도 이제야 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것 같았고, 정착해보고 싶어 사내 대출을 이용해 전세로 옮기고 싶어졌다. 근데 웬걸? 막상 사내대출이 필요한 상황이 되니 학원 확장으로 당장은 돈이 없어서 힘들다고 하더라. 기대출자들에게도 상환을 요청한 상태라고.
당시 청년 버팀목 전세대출을 이용하고 있는 나로서는 진짜 하늘이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청년 버팀목 전세대출에서 중소기업 청년대출로 갈아타려고 하는 상황이었는데, 정부지원 대출은 중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조건 청년 버팀목 전세 대출을 상환해야지만 중기청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하더라. 버팀목을 상환하더라도 중기청이 내가 원하는 한도만큼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었다.
중기청 매물은 많지 않기 때문에 나는 마음에 드는 집에 이미 가계약금을 걸어둔 상태였고, 내가 신청한 금액이 대출이 되지 않는다면 회사 사내 대출금이 절실했는데. 이제와 너가 알아서 해라. 부모님이 도와주실 상황은 안되냐니. 이게 무슨 맥락 없는 대화인지 모르겠더라. 이 나이 먹고 부모님한테 전세자금을 보태달라고 하라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나는 그때 기분이 너무 상했고.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대표님께서 본인이 여유자금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나는 그게 진심으로 와닿지 않았고. 여기서 계속 일하면 이와 비슷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는 내 몸을 갈아가며 일했는데,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평생 갈려나갈 것 같다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회사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주말에도 출근해야 했는데, 주말을 지킬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지 뭐. 아직도 가족 경영하고 있는 것 같던데, 너무 잘 운영되고 있어서 배 아프다.
그렇게 일 년 반정도 일하고 두 번째 직장도 그만뒀다. 그때부터 우리 집에서는 나를, 1년 일하면 그만두는 애로 낙인찍더라. 이번 직장은 얼마나 가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나를 지켜보는 게 느껴졌고, 나는 제법 한심한 인간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그냥 나의 길을 찾고 있는 것뿐인데 말이다.
그곳을 그만두고 나와 영상편집과 디자인을 배웠다. 평생 배워보고 싶었던 분야 중 하나였는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나랑 더 잘 맞더라. 내가 노력한 만큼 나오는 결과물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첫 외주는 블로그를 통해 받았다.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모를 때고, 국비학원에서 교육받고 있을 때 얼떨결에 받게 된 주문이라 로고 시안 2개에 10만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판매했지만, 고객님이 너무 마음에 들어 수정할 곳이 없다고 했을 때는 진짜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더라.
아, 이래서 디자인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