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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강가 Dec 27. 2023

25. 눈꽃여행

#1 겨울, 스며드는 감정의 온기


겨울인데 눈이 내리지 않아 겨울 같지 않은 날들. 대구에는 여전히 겨울에 눈을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기어이 눈을 찾아 떠나고야 만다. 이번에는 덕유산, 눈꽃 여행이다. 일기예보를 확인하면서 덕유산 향적봉 대피소를 예약했다. 그래도 산인데, 눈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떠나는 전날까지만 해도 날이 따뜻해서 눈이 녹아버렸다는 소식에 갈까 말까 수 없이 많은 고민과 갈등으로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렇다 해도 이왕 예약한 거 끝까지 가보자 했다. 운이 좋다면 눈꽃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하나로. 





오후 네시에 도착한 향적봉 대피소 곳곳에서 쌓여 있던 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녹고 있는 눈이 원망스러웠지만 이대로 기온이 더 떨어진다면 눈꽃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저버릴 수 없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대피소 곳곳을 살폈다. 대피소 내에서는 취사 및 화기 사용은 금지가 되어 있다. 단, 취사장 내 취사도구는 사용이 가능하다. 아무래도 산불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리라. 또한 식수를 비롯하여 물 공급이 어려우며, 자연보호를 위해 세면 및 설거지 등을 제한하고 있다. 빼어난 경치와 낭만이 그런 불편함까지 감수할 수 있게 만든다. 겨울철 산의 저녁은 일찍 찾아온다. 우리도 대피소 안에서 조용한 휴식 시간을 보냈다.






새벽 다섯 시까지만 해도 촉촉한 비가 내려 눈이 다 녹아내리는 모습에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아무래도 이번 눈꽃 여행은 실패한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극적으로 비가 눈으로 바뀌면서 그토록 바라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희망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래, 겨울은 눈이지! 한순간에 실망이 기쁨의 환희가 된다. 공기마저 차갑게 얼어붙어 몸이 떨려온다. 그의 머리카락이 나이 든 노인처럼 하얗게 변해 웃음과 함께 새어 나온 뜨거운 입김이 공기 중에 흩어진다. 황홀경 안에서 우리는 어느새 인간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춥고도 따뜻한 겨울의 끝자락, 그곳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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