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을 바라보며_ 《결담》 시리즈 1편
1. 철학을 오래 지키는 회사가 있을까?
요즘은 빠른 변화가 조직의 생존 전략처럼 여겨지는 시대입니다. 비전은 자주 바뀌고, 조직의 슬로건도
해마다 새로워지죠.
이런 흐름 속에서 한 가지 철학을 오랫동안 지켜온
조직은 어떤 모습일까, 그게 가능하긴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저는 교보생명을 다시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익숙한 이름이지만, 그 안을 천천히 살펴보니
꽤 다른 결이 느껴졌습니다.
교보생명은 1960년대부터 “사람 중심”을
이야기해온 회사입니다.
요즘엔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이지만
그 시절엔 꽤 낯선 언어였겠죠.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이 철학이 구호나 이미지로만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 말이 조직의 방식에
고스란히 스며 있었습니다.
보험 상품 설계에도,
고객과의 관계를 맺는 방식에도,
사회공헌의 형태에도 일관되게
사람이 중심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런 점들이 교보생명을 그저 ‘오래된 회사’가 아니라
한 방향을 지켜온 조직으로 느끼게 했습니다.
사람 중심이라는 말은 참 쉽게 들립니다.
하지만 조직이 그 방향을 실제로 유지하려면
정책도, 구조도, 태도도 모두 함께 가야 합니다.
교보생명은 그걸 해낸 몇 안 되는 조직 중
하나라고 느꼈습니다.
금융권 최초로 소비자중심경영(CCM)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고, 10년 넘게 매년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꾸준히 발간해 왔습니다.
CEO인 신창재 회장은 “고객을 이롭게 해야 우리도
이롭다”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철학을
실제 경영에 반영하고 있죠.
“우리는 고객에게 피해를 주면서 이익을 취하는 마피아 같은 조직이 아닙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겉으로만 따뜻해 보이는 조직이 아니라,
그 방향을 실제 운영 방식에 녹여낸 조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철학은 자회사인 교보문고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출판시장 위축, 전자책의 성장,
온라인 플랫폼과의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서도
교보문고는 ‘사람과 지식이 만나는 공간’을
유지해왔습니다.
오히려 광화문 본점을 리뉴얼하고,
지역 거점 매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구성하며
책을 매개로 한 커뮤니티를 확장하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수익만 본다면 축소가 더 쉬운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사람 중심이라는 철학을 끝까지
구조화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조직의 철학이 실제 전략을 바꾸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철학을 지키는 방식이
조직의 실적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정확히 단정하긴 어렵지만,
교보생명의 흐름을 보면 조심스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화려한 실적은 아니지만, 건전하고 꾸준한 성장,
그리고 위험을 회피하지 않는 구조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 2023년 당기순이익은 약 489억
• ROA는 0.4%대 유지
• CSM(계약서비스마진) 6.4조 원 규모
단기 목표를 좇기보다는
조직이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야 할지를
먼저 고민한 흔적이 느껴졌습니다.
그 철학이 전략이 되었고, 결국은 실적으로
이어졌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요즘 나는 ‘이 조직은 얼마나 벌었을까?’보다는
‘이 조직은 무엇을 지키며 움직이는가?’가
더 궁금해졌습니다.
특히 ESG나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반복되고 있는 지금,
그 말의 실질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교보생명은 그 점에서
말이 아니라 방식으로 철학을 증명해낸
조직이었습니다.
그게 이 회사를 기록해두고 싶은 이유였습니다.
다음에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진 조직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MUJI(무인양품)는
덜어내는 방식으로 철학을 이어온 회사입니다.
사실 철학을 실천한다는 건
꼭 뭔가를 많이 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을 것’을 정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 이야기 역시, 곧 이어서 써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