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자의 글
커피를 처음 접한 건
수능을 준비하던 고3 때였다.
그때의 커피는 나에게 '으른의 맛'을 선사했고
공부를 하며 커피를 마시는 내가 좀 큰 것 같아 우쭐도 했고
커피를 타러 정수기에 달려가는 순간부터 마지막 한알이 녹는 그 시간까지 완벽했으며
무엇보다 맛있었다.
역시 커피는 맥심이지.
그렇게 맥심과 함께 진학한 대학교에서
쓴 소주보다, 목따가운 맥주보다 달달한 바닐라 라떼와 모카라떼가 훨씬 내 입맛에 맞았다.
맥심스럽지만 양이 더 많았다.
당시 대학생이 사용할 수 있는 돈은 그리 크지 않았으므로
가끔 기분전환용으로, 솜사탕 같은 친구와의 수다에 곁드는 그 커피가 그렇게 맛있었다.
한잔의 커피가 아쉬웠던 대학생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었을 때,
커피는 각성제였다.
아침에 좀비처럼 일어나 대중교통을 제정신이 아닌 정신으로 타고
회사에 도착하기 직전에 손에 아메리카노 하나를 뽑아 가야
내 눈이 일하기 시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릿했던 시야가 뚜렷해지고
숫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며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른이고 싶어서 마셨던 맥심의 달달함은 어디 가고
쓰디쓴 탕약 같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정신을 차리는 나라니.
진짜 어른이 되어 마시는 커피의 맛은 쓰지만 시원했다. 사회는 쓰기만 했지.
((그리고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 수유를 하는 내내 커피는 입도 대지 못했다.
물론 디카페인을 먹어도 괜찮았지만
그냥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나와의 약속 같은 것이었다.
한 4년을 카페인 없이 살아냈다. 내 인생의 금욕 기였다랄까.))
4년 후 커피는
생존이자 힐링 포인트가 되었다.
수유를 끊자마자 보상이라도 받아내듯 폭발적으로 커피를 들이붓기 시작했다.
육아를 하면서 당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면 급하게 캡슐커피를 한잔 내린다.
그 캡슐커피 한잔으로
집에 향긋한 커피 향이 풍김과 동시에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육아에 지친 내 감정에게 미각과 후각으로 차분함과 릴렉스를 선물해주는 고마운 것이었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었다.
아이가 4살이 되어 어린이집을 가게 되자
원두의 향이 살아 숨 쉬는 커피, 크레마가 살아있고 거품이 쫀쫀하게 살아있는 라떼가 고파졌다.
진득하고 향이 확 퍼지는 커피집을 아이가 하원하기 전까지 미션처럼 찾아내 한잔 마시고 돌아오면
어느새 한 손에 사탕을 들고 종알대는 입을 가진 아이의 손이 내손에 들려있다.
내 입가에 미소도 아직 살아있다.
아이가 유치원엘 들어가고 학교에 들어가고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나에게 커피는
하루에 한두 번 나에게 주는 보상 내지는 선물 같은 존재이다.
마실 때마다 마음이 온화해지고 평온해지고 너그러워지는 효과를 주는 선물이라니.
호그와트에서 온 선물인가.
마음 같아선 커피를 처음 발견하신 분께 노벨평화상을 다섯 번 정도는 안겨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 선물 하나로
아이를 웃으며 대할 수 있고 30초에 한 번씩 엄마를 부르는 메아리 같은 아이들의 부름에도
짜증스럽지 않게 대할 수 있어서 기쁘다.
아이들도 커피와 엄마의 상관관계를 눈치채고
엄마의 눈빛이 분노로 타오르기 시작하면 조심스레 권하곤 한다.
커피 한잔...?
당신의 하루에 한두 번 본인에게 선사하는 마법 같은 선물은 무엇인가.
없다면 하나쯤은 만들어 보는 게 어떨지.
하루 20분이라도 행복한 순간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아주 큰 법이니까.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커피 같은 행복한 선물로 마법 같은 행복이 일상에 채워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