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마법
지독한 현실 속에서 한 가지 마법이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시간
일 것이다.
무슨 조화를 부려놓은 것인지
힘든 일도 기쁜 일도
시간을 뿌리면 모두 그 흐름을 타고 가다가 흐릿해진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안개 같은 시간은
결국 신의 배려 같은 것인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도
그 마법이 만든 작품이겠지.
그해 겨울은 참으로 추웠다.
그때부터였던가 나는 추위가 정말 싫다.
내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마음의 준비를 했다가, 반만 살아 돌아오셨던 그때,
그 뒤엔 아버지의 핏줄의 철저하고도 잔인한 배신이 함께 있었다.
깨어난 아버지의 분노는 상상 그 이상의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그 분노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분노의 잿더미는 나와 엄마가 고스란히 주워 담았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내 아버지의 분노는 여전하지만 처음처럼 뜨겁지는 않다.
다만 그 분노는 병마로 남아 아버지를 괴롭히는 중이다.
시간의 흐름에 맡겨 흘려보냈어야 할 분노를 지니고 있으면
몸이, 마음이 병들기 시작한다.
물 흐르듯 흐르는 시간에 함께 흘려보냈어야 했다. 자기 자신을 위해.
가사 육아 아무것도 안 하던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너덜너덜하게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고된 독박 육아와 가사노동으로 많이 성장해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인생을 배웠고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통해 감사함을 깨달았다.
그 덕에 그간 나에게 모진 말을 쏟아냈던 남편에게 잘 왔다고, 이제는 괜찮다고
다독여줄 수 있었다.
조금 더 일찍 그런 결정을 했었다면
아마 받아줄 수 없었을지 모른다.
시간은 나에게 성장을 선물했었다.
인생의 힘든 기로에서
죽어라고 힘들기만 할까 싶다가도
시간이 끼어들어 조금 마법을 부려주면
한 달, 두 달, 석 달 즈음 조금씩 무뎌지고 흐릿해진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그걸 이용하여 시간은 기가 막히게 마법을 부린다.
인생은
때로는 모진 말로
때로는 사람으로
때로는 일련의 사건들로
마음과 몸을 힘들게 갈아댄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내가 성장할 것이다.
또 다른 시련이 오더라도
그 또한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괜찮아질 것이다.
이쯤 되면 인간에 대한 신의 배려가 맞지 싶다.
힘들고 지쳤을 때 충분히 힘들자. 괜찮다.
아픈 만큼 성장할 것이고,
그 또한 지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