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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빛 Nov 19. 2022

알바하기 좋은 나이, 마흔

알바 입문기


'백세시대에 마흔은 아직 애기지' 


라는 막연하고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이력서를 써 내려갔다.

역시 이력서는

자기애가 충만하고 자신감이 하늘을 찔러야 그럴듯하다.


하지만 육아라는 인생의 제2막을 살아가는 나에게

전에 있던 경력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다.

가지고 있던 지식 모두 변해가는 강산과 함께 발맞추어 날아가버렸고,

나 혼자 집에서 아이 둘과 씨름하며

세상을 등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사회로 나가는 자체가 두려워졌다.

내가 없을 때 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지?

내가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지?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과 바닥 치는 자신감이 점점 더 나를 겁쟁이로 만들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맞다, 나 마흔이지


불혹, 미혹되지 않는 꿋꿋한 나이.

아이 둘 육아에 맷집이 생겨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세상 살다 보면 듣는 모진 말에 단련도 되었고

반만 듣고 흘려듣는 연습을 충분히 해서 그런가

웬만한 일엔 초연하게 대처할 자신도, 이해할 준비도 되어있다.


물론 그 자신감에 대한 근거는 없다. 


그래서 홀린 듯 위치가 가깝고 내가 사랑했던 까페에 당당하게 완성된 이력서를 제출했고

어찌하다 보니 면접까지 보게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이는 눈으로 나의 의욕을 보여드렸고

최선을 다해  좋은 분위기 속에서 면접을 마쳤으며,

오늘 내로 연락 준다는 대표님의 말씀에 확신했다. 

'나 일할수 있겠어'




하지만 오늘 내로 준다는 그 연락은 오지 않았다.


미친 듯이 핑계를 찾기 시작했고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훗, 인간의 마음이란.


그래, 역시 마흔은 좀 많지

아마 젊은 친구들이 아줌마랑 일하기는 좀 어렵고 힘들 거야

내가 너무 자신감에 차있었나


알바 자리 하나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그도 그럴 것이,

근 십수 년 만의 알바니까.

그렇게 오만가지 생각과 잡생각으로 밤을 보내고

머리를 식히러 운동하려고 하던 찰나


'오늘부터 가능한가요'


라는 마음이 울리는 문자에

미소가 번지고 잡념이 사라진다.



인생 2회차를 얻은 기분이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이 얼마만의 출근이야.

마치 심폐소생으로 새 생명을 얻은 기분이다.



젊은 친구들이 일하는 공간에

아줌마를 초대해주니 얼마나 감사한가.

민폐가 되어서 안될 텐데 조바심,

일은 진짜 가리지 않고 잘할 수 있는데 의욕충만,

새로 시작하는 일에 대한 설렘

만 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나는 이제 출근하는 알바생이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문을 나선다.



잊지 않아야지.

미혹되지 않는 나이.

흔들리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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