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세상의 어른.
사람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는다.
그 어떤 노력이 없이도 누구든지 공평하게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먹는 것이 바로 '나이'이다.
떡국 한 그릇을 더 먹는다고 빨리 먹어지는 것도 아니고, 먹기 싫어서 새해 아침에 이불속에 꽁꽁 숨어있는다고 안 먹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릴 적에는 빨리 어른이 되어 지금 못하게 하는 거 다하고 싶고,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른이라는 날개를 달고 전부 누려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사회적으로 어른이라 불리우는 나이가 되어보니
정말 어른이란 무엇인가 싶다.
나는 정말 어른이 되었는가.
여섯 살의 나는 아버지가 주신 과자 만원 어치라는 엄청 달콤한 제안에 천둥번개가 치는 밤에 가겟집에 나갔다가 눈앞에서 떨어지는 번개를 보고 놀라서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가 바로 기절한 적이 있다.
그 이후, 천둥번개가 치는 밤엔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너무너무 무서웠더랬다.
대학교 초년기까지만 해도, 천둥번개 소리에 움찔움찔 놀라곤 했는데,
어느 순간인가 먼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듯했다.
천둥번개를 창문으로 마주하게 되어도 이제는 그닥 놀랍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순간이 왔다. 무섭지가 않다.
나는 어른이 된 것일까.
아버지는 팥죽을 즐겨드셨지만 나는 영 흥미가 없었다.
팥이 싫었다. 맛도 별로 없는 것 같고 건강해지는 느낌이 드는 그런 맛이랄까.
그러던 내가 스스로 팥을 삶아 졸이고 내 아이들에게 한 입만 먹어보라고 조르고 있다.
나는 어른이 된 것일까.
슬픈 멜로드라마에서 젊고 예쁜 남녀가 서로 사랑에 빠져 저세상 달콤함을 누리다가 이별을 하고 슬픔에 허덕인다. 그들이 밤잠을 설치며 그리워하고 눈물 흘릴 때, 내 눈에도 눈물이 흘렀더랬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아이를 잃어버린 영화, 납치영화, 아이들을 건드는 각종 범죄 뉴스를 보면 분노하며 눈물을 흘린다.
내 눈물 버튼의 위치가 전혀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 같다.
나는 어른이 된 것일까.
이것 말고도 무수히 많겠지.
피자 한판을 먹던 청소년기의 나는 지금 피자 한두 조각에 소화가 안된다며 배를 두드리게 되었고
건강식, 건강음료, 건강보조제를 돌같이 하던 내가 이제는 알아서 때맞춰 척척 챙겨 먹고 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나이를 먹었다고 , 몸이 다 컸다고 전부 어른일까.
두려웠던 대상이 더 이상 나에게 위협적인 존재이지 않게 되었다고, 기쁨과 슬픔의 기준이 다른 분야로 이동했다고 , 내가 변했다고 어른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나가면서 굳이 굳이 듣기 싫은 한소리를 꼭 던지고 지나가시는 호호 할머니..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자식뻘 되는 매장 직원들을 쥐 잡듯이 잡으시는 으르신들..
남의 자식 귀한 줄 모르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분들..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몸소 실천하며 타인에 대한 배려와는 철옹성 같은 벽을 쌓고 사는듯한 분들..
버스만 타도 아니 집 밖에 나가기만 해도 너무너무 쉽게 보이는 이러한 불편함을 주시는 분들이 과연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두 아이를 키우며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이 이것이었다.
'나는 이 아이들의 몸집을 키우고 있지만, 이 아이들은 나의 멘탈을 키워주고 있구나. 우리는 같이 크고 있구나.'
아이들을 좋은 어른으로 키우려면, 내가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하니까.
자꾸 양심의 거울을 되돌아보고, 남의 입장에서 좀 더 생각해보고, 아이들이 따뜻한 세상에서 온기를 느끼며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에 내 마음의 온도를 조금도 올려보았더니, 내 마음이 자랐다.
아직도 나는 자라고 있다.
언제 어른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마음은 여전히 어른을 향해 자라나고 있음을 확신한다.
시간이 주는 그냥 자연적으로 먹어지는 나이에 따른 어른 말고,
좀 더 따뜻하게 세상을 만들고, 배려해주고 더불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빛과 소금 같은 존재의 어른을 향해 자라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마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