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재미있을 줄 알았다.
언젠가 30년차 교사의 수업이라는 내용으로 강연을 했다. 교육감도 참석했던 꽤나 큰 교육청 행사였다. 내 강연의 핵심은 교사는 가르치는 직업인 동시에 평생 배워야 하는 직업이라는 것이었다. 교직 생활 동안 내가 가장 잘한게 있다면 수업 방법에 대해 계속 배우고 실천했다는 점이다. 그 덕에 여러 권의 수업 방법 책을 썼고, 강연도 하게 되었다.
강연 후 한 선생님이 질문을 했다. 낯이 익은 교사였다. 평소 교육청 행사에서 얼굴을 자주 보았었고, 언젠가 같이 활동도 했던 교사였다. 그 교사의 질문은 이랬다.
선생님. 제가 수업에 슬럼프가 왔습니다. 이제까지 학생들과 잘 소통하며 수업을 했다고 자부했었는데 요즘은 수업에 더 이상 흥미가 생기지 않습니다. 오늘 강연도 어떻게 슬럼프를 극볼해볼까 하는 마음에 참석했습니다. 어떻게하면 수업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20년은 훨씬 넘게 교직 생활을 한 교사의 고백이었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선생님. 선수들에게 슬럼프는 프로선수나 1진 선수에게만 옵니다. 이제 막 배우는 선수나 실력이 형편없는 선수에게는 슬럼프가 오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오랫동안 학생과 소통하는 수업을 하셨고,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슬럼프가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오셨고, 또 질문까지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슬럼프를 느낄 충분한 자격을 갖춘 분이십니다. 제 생각에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다보면 매너리즘이 오곤 한다. 하던 일에 흥미를 잃게 되고, 의욕이 감소된다. 만약 운동 기량 같은 종류라면 평소보다 실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하물며 60세 정도 살다보면 삶의 슬럼프를 누구나 경험한다. 신체 및 호르몬 변화에 의한 갱년기일 수도 있고, 남녀관계에서는 권태기일 수도 있다. 또한 힘든 일을 만나 사는 것 자체가 고역일 수도 있 다. 그렇다면 삶의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첫째,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는 것이다. 좋은 성과에 집착하게 되면 마음의 에너지가 고갈되기 쉽상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과정과정에 소중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완벽보다 완수가 더 중요하다.
둘째, 빨리 벗어나려고 애쓰지 않는 것이다. 슬럼프는 어쩌면 쉬어야 할 때임을 알리는 몸과 마음의 신호일 수도 있다. 슬럼프임을 수용하고, 그 시간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는 것이다. 오히려 애쓸수록 마음이 그곳에 머물러 슬럼프를 깊이 끌고 갈 수도 있다.
셋째,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다. 나는 달리기를 적극 추천한다. 하던 일에서 슬럼프가 왔다면 한 번 달려본다. 슬럼프는 마음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육체적 힘듦으로 오히려 마음의 힘듦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일에서 얻은 성취가 원래의 일에 동기를 제공한다. 달리기는 가장 쉽고 빠르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다.
슬럼프는 불치의 육체적 병이나 우울증 같은 정신적 질환이 아니다. 어떤 일을 하고, 살아가는 과정에 생기는 일이다. 또한, 슬럼프는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생기는 육체적, 심리적 정체기이다.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꾸준히 계속하는 것이다. 가장 큰 성공은 꾸준함이다.
지난 주 평소와 같이 어느 중학교에서 질문 수업 강연을 했다. 시작과 동시에 웃으면서 잘 진행되었다. 실습도 잘 진행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 혼자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친 후 담당 부장님과 선생님은 좋았다고 말했지만 나는 계속 뭔가 찜찜했다. 강연 후 처음 느낀 기분이었다.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슬럼프인가?
만약 살면서 슬럼프가 온다면 이제껏 열심히 살아왔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그때는 스스로를 다독거려보자.
그 동안 수고했어.
조금 쉬어 가자.
항상 틀에 박힌 일정한 방식이나 태도를 취함으로써 신선미와 독창성을 잃는 일.항상 틀에 박힌 일정한 방식이나 태도를 취함으로써 신선미와 독창성을 잃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