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전 군대 생활 중 잠시 틈을 내어서 적은 일기
[한여름 밤의 일기]
한 줄기 소나기가 지나가고 맑게 갠 한여름 밤, 풀벌레들의 울음소리에 잠 못 이루고 뒤척인다. 답답해서 문을 박차고 나가 시원한 공기를 깊이 들어마신다. 밤하늘에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 자리가 유난히 눈에 띈다.
어릴 적 한여름 밤이면 마당 한가운데 모캣불을 지펴 놓고 동생과 평상에 드러누워 밤하늘 별자리를 찾으며 서로 먼저 찾았다고 우기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 늘 북두칠성은 대문 옆에 우뚝 서 아직 익지 않은 풋감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감나무 가지에 달려 있었다. 그러다가 밤짐승 울음소리가 나면 무서움에 질려 스르르 방으로 기어들곤 했다.
밤이면 동네 아이들과 수박이랑 참외 쓰리를 해서 멧부리에 숨어서 정신없이 먹어 치우던 주옥같은 추억들이 그립다.
유성이 밤하늘에 꼬리를 치며 휙 지나간다. 알퐁스 도데의 별 이야기에서 목장에 온 아가씨가 소나기로 물이 불어 돌아가지 못하고 목동의 등에 기대어 쌔근쌔근 잠이 들었을 때 황홀해진 목동은 두 눈을 부릅뜨고 분명히 내가 보고 있는 저 별들을 헤아리고 있었으리라.
남북으로 길게 은하수가 흐르고 있다. 저 은하수 속에는 꿈속의 요정들이 수정같이 맑은 물에 몸을 담그고 있겠지. 북두칠성의 국자로 은하수 한 바가지를 마시고 세속에 물든 마음을 깨끗이 씻어볼거나.
이제 시내도 완전히 잠이 들었다. 어둠에 묻힌 시내의 어느 한 집에서 반딧불처럼 빠안히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다. 저 불빛 속에는 어떤 사람이 무슨 일로 저렇게 밤을 지새우고 있는 것일까? 용마를 타고 청운을 겨냥하려는 한 소년이 졸리는 눈을 비비며 아직도 책상에 앉아 있을지, 아니면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꿈을 밤하늘의 성좌에 새기며 기도하는 소녀가 이 밤을 지새우고 있을지 모르겠다.
괴로운 듯한 차의 비명이 밤공기를 공명하며 지나간다.
아름다운 한여름 밤이다.
1982년 7월 안양 석수동의 연대본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