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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라는 착각

70억명 중 하나임을 인정할 때 생기는 용기가 있다.

by 사슴벌레

영화를 보다 보면, 사람들의 행동이 정말 과감하다고 느껴진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활약하고, 절벽 끝에서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진다.
그들은 늘 멋지고, 위대하다.


현실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많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하나같이 리스크를 감당할 줄 안다.
불확실한 세계로 과감히 발을 내딛는 그들의 모습은 놀랍기만 하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우리는 그렇게 감탄하고, 결국 “대단하다!”는 말로 대화를 마친다.


하지만 그 대담함을 내 삶에 대입해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과연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은 많아지는데, 몸은 선뜻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리스크를 감당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혹시라도 다치면 어쩌지?
혹시라도 모든 걸 잃는다면?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혹시라도'가 리스크를 회피할 이유를 들려준다.

그렇다면 과연, 나와 그들은 무엇이 다르기에 리스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걸까?


나는 그 차이가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났는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세상을 ‘나’를 중심으로 해석한다.

나의 실패는 큰일이고, 나의 고통은 특별하며, 나의 선택은 엄청나게 중요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지구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80억 개의 삶이 동시에 흘러가고 있다.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나는, 사실 생각보다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사실을 쉽게 잊고, 외면하며 살아간다.


어딘가에서는 지금도 수인성 질병으로 생후 1년을 넘기기조차 힘든 아이들이 있고,
어떤 이는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목숨을 걸고 광산에 들어간다.
이들의 기준에서 본다면, 내가 말하는 리스크는 오히려 안정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결국 리스크를 감당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의 절대적인 중심이라는 믿음에서 한 걸음 떨어져 본 사람들이다.

실패해도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니며, 내 이야기는 이 우주 안의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


리스크를 감수한다는 건 단지 배짱이 세다는 뜻이 아니다.
그건 어쩌면, 나라는 존재의 무게를 ‘적당히’ 이해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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