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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동안 직장이 세 곳

휘몰아치는 변화.......

by 은혜은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내고.... 며칠 간의 여유가 생겨 집안 정리를 하다 10월 중순 브런치스토리 팝업에서 받았던 유인물을 들춰봤다.


'최근 나에게 생긴 변화에 대해 써보세요'

변화라. 엄청 많죠. 2024년의 키워드로도 손색없죠....


3월에 학교에서 교육청 Wee센터로 전근을 왔고, 6월에 본격적인 이직준비를 시작한 후 9월에 의원면직을 했다. 한 달간의 신입사원 연수 끝에 경기도로 발령이 나 1시간 30분의 통근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 다른 회사의 서류, 필기 전형에 합격했다. (어떻게 합격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더 관심 가는 산업군의 회사였고 조건도 좋아 욕심이 났다. 신입으로 새롭게 일을 배우고 적응하는 한편 퇴근 후에는 다른 회사 면접을 준비하는 것이 몸도 마음도 편안하지 않았다. 한 달에 하나 겨우 생기는 연차를 쪼개어 면접 일정을 맞추는 것도 머리가 아팠고,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불확실의 시간을 또 겪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눈물을 흘릴지언정...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떨어지면 지금 회사에 계속 다니면 된다며 의연한 척을 해보기도 하고, 임용고시 이후로 이렇게 잘 해내고 싶었던 목표가 있었던가 싶을 만큼 간절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만약 합격을 한다면 지금 회사에는 대체 어떻게 말씀드리나 싶어 가슴이 답답했다. 퇴사가 죄는 아니라지만 성심성의껏 해주신 인수인계가 무용지물이 되고, 신입 충원 기간도 지난 시점이라 죄송스러운 마음이 컸다. 최종 결과 발표가 예정된 주간에는 발표 시간 한 시간 전부터 속이 쓰렸다. 정확한 발표일자를 공지하지 않아 월요일부터 매일매일 긴장과 실망이 반복됐다.


그 시간들을 견디고 최종합격을 확인하자 온몸이 짜릿했다. 피가 잠깐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쓰고 보니 보통은 분노의 감정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 아닌가 싶은데... 표현할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강렬한 감정은 생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닐까? 화장실로 달려가 혼자 방방 뛰었다. 으악 너무 좋아. 근데 이제 어쩌지?


입사 일정이 촉박했기 때문에 당장 상부에 말씀드리고 퇴사 수순을 밟아야 했는데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와 하던 일을 마무리하면서도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30분가량을 고민하다 사수님께 운을 뗐다. 대리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앞자리에 앉아 계시던 다른 대리님께서 벌떡 일어나 '나 안 좋은 예감이 들어. 혜은 씨 어디 가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상황이 너무 웃기면서도 전혀 웃기지 않았다. 이를 어쩌나. 속전속결로 지사장님께까지 퇴사 보고를 올렸다. '거기가 뭐 하는 덴데? 여기보다 좋은 데야?.... 하긴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러 온 거겠지. 그래 더 좋은 데 간다는데 내가 뭘 어떻게 막겠니. 잘 가라.' 퇴사에 필요한 서류 처리를 한 뒤 이틀 뒤로 마지막 출근일을 잡았다. 첫 퇴사도, 두 번째 퇴사도 이렇게 정신없을 수가 없다.


올해는 이동수가 많지만 그 이동의 결과가 별로 좋지 못하다고, 앞으로는 2를 얻어도 뒤로는 4를 잃을 운세이니 변화하고 싶은 생각이 계속 들겠지만 참으라는 말을 들었었다. 완전히 무시하고 있던 말이었는데 신입사원으로 적응하는 동시에 면접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그 말이 떠올라 계속해서 맴돌았다. 뒤로 4를 잃는다는 말이, 이건가? 섣불리 움직였기 때문에 더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되는 건가? 마음이 힘들 때는 왜 이렇게 귀가 얇아지는지. 마음이 튼튼할 때는 귓등으로도 안 듣고 이직을 준비했었는데 말이다. 튼튼한 시절의 내가 저질러놓은 일들을 팔랑거리는 내가 어찌어찌 수습하고, 다시 입사를 앞둔 시점이 되었다. 3월 전근, 9월 퇴사, 12월 퇴사라는 변화의 물결을 지나오며 많이 흔들렸지만 그만큼 나 자신을 많이 믿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이걸 해내네.......)


다들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시겠네'라고 했는데, 정작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다. 원래도 호들갑스러운 분들이 아니시고 호들갑을 떨었어도 썩 내 마음에 드는 반응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그래도 너무 무던한 반응이었달까. 친구네 부모님들이 더 좋아하셨던 것 같다. 왠지 모르게 예전에 읽었던 기사 내용이 생각났다. 장애형제의 성장에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부모님을 보며 '나는 저거 옛날부터 할 줄 알았는데' 하고 울었다는 비장애형제의 이야기였다. 딱 들어맞는 상황은 아니지만 기사 속 아이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그래서 조금은 슬퍼지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축하로 채워낼 수 있어서 마음이 많이 비지는 않았다. 모든 걸 원가족에서 얻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직장에서 원가족을 떠올리는 일을 그만하고 싶어서 결정한 퇴사의 과정에서 또 원가족에 대한 감정을 끌어올리고 싶지 않다. 완전히 끊어낼 수는 없겠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또 언니에 대해 어떻게 말할지 고민해야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만 생각하고 싶다.


두 번째 신입사원 연수도, 2025년의 새로운 시작도 '나로서' 잘 해내고 싶다는 다짐으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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