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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Oct 19. 2022

낮에는 벌기 위해 글 쓰고 밤에는 살기 위해 글 씁니다

01.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몇 해 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정말이지 살면서 처음이었다. 서랍 속 약통에 약이 얼마나 있는지 세어보고, 실패 없이 한 번에 죽기 위해선 적어도 몇 개의 약이 필요한지 찾아보았다. 부엌칼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고, 밤이 되면 오피스텔 옥상으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엉켜버린 상황을 내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고, 오직 죽음만이 모든 것을 끝내줄 거라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의 나는 꽤나 삶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아이였다. 항상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스스로 설정한 목표에 이르기 위해 늘 애썼다. 6개월 뒤, 1년 뒤, 5년 뒤... 어떤 내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그림이 구체적이고, 명확했다. 달성 여부와는 관계없이 무언가 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하다는 것. 그것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자 내가 기필코 잘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되어 주었다.


그런데 나이 서른을 넘긴 어느 순간 최악으로 치달아 버린 상황은 나를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당장 내일의 나, 1주일 뒤의 나를 그릴 수 없었고 삶의 목표 따위 사치라고 생각했다. 아무 의미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상담 센터를 찾았다. 무교인 내가 스스로의 의지로 종교에 귀의하는 것조차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던 시기였다. 사실 상담을 통해 솔루션을 받았다기보다는 한 시간 동안 휴지를 적시며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이 9할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 안에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번에 모든 상황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씩 바꿔보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잠시 손을 놓고 있던 개인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는 일이었다.


스물세 살에 시작했던 블로그는 생각보다 좋은 호응을 얻었었고, 블로그를 비롯한 SNS 마케팅이 기업들에게 새로이 필요한 포지션으로 인식되면서 운 좋게 취업을 했다. 하지만 나름대로 치열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블로그는 항상 뒷전으로 밀어두기 일쑤였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이따금씩 블로그를 하다가, 다시 또 내가 조금 힘에 부칠 때면 블로그는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면서 뒤돌아보니, 나도 모르는 새 블로그는 나를 정의하는 큰 축의 하나로 자리 잡아 있었다. 비록 멋들어진 명함을 손수 만들어 돌리고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프리랜서 블로거는 아니었지만, 친구들은 나를 '파워 블로거'라고 불러주었다. 무엇보다도 내 20대의 많은 날들이 블로그라는 공간에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 내 축 하나를 잃어버렸으니 휘청휘청 흔들리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블로그를 다시 시작했다고 해서 예전처럼 폭발적인 방문자 수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이 바닥 꽤 오랜 짬밥과 더불어 이제는 필드에서 실무자로 쌓은 경력까지 더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창하거나 대단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일상의 순간순간을 짬짬이 사진으로 찍어 놓았다가, 보는 이 없어도 주저리주저리 사진에 대한 나의 생각을 글로 남겼다. 그리고 언제든 심심할 때 꺼내 읽으며 추억을 떠올리다 보니 조금씩 마음이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다음으로 한 것은 다시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내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당시, 나는 꿈 한 번 이루어 보겠다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그마한 가게를 차렸었다. 가지고 있던 모든 돈과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나는 썩 행복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고민 끝에 자영업을 그만두고 회사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일상의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버는 시간에 대한 부분이 바뀌지 않으면 결코 난 괜찮아지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감사하게도 자영업 하던 시기를 공백 기간이 아닌, 더욱 가치 있는 경험을 쌓은 시간이었다고 인정해 주는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케터로서의 커리어를 다시 이어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끊임없이 더 높은 목표로 나를 끌어 올려주는 대표님이 계셨다. 업무 관련 온라인 강의나 서적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고, 이제껏 해보지 못한 분야의 업무에도 도전해 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다. 내 안에서 사라진 줄만 알았던 목표라는 것이 다시 살아 숨 쉬는 것을 느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곳에서의 길지 않은 시간을 뒤로하고 지금은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다. 내가 있는 곳은 달라졌지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전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나는 다시 글을 쓰게 됨으로써 무너졌던 멘탈을 극복해나가는 중이다. 다시는 전과 같이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겠노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은 더 살고 싶어졌다. 이렇게 살고 싶은 순간순간을 잘 살아내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스스로 그런 생각을 가졌다는 것조차 희미해지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회사에서 매일매일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루틴으로 그날의 원고를 작성했다고 해서, 집에 돌아와 나의 글을 쓰지 않으면 나는 언제 또다시 무너져 버릴지 모른다는 것을. 어쨌든 나는 글을 쓴다. 낮에는 회사에서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쓴다면, 밤에는 내가 '살기 위해' 글을 쓴다.


고로 지금은 살기 위해 글을 쓰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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