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에 호기롭게 걸어두었던 달력을 조용히 떼어냈다. 내일이 오면 새로 산 달력을 걸어놓을 셈이다. 한 해의 마지막 주말인 어제와 오늘은 눈과 비가 함께했다. 그리 차갑지도 않은 애매한 겨울의 공기가 수분과 오묘하게 섞여 들어 코 끝에 감도는 날씨. 지난날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겨울날이다. 매일같이 굴러가는 한결같은 그 노란 버스와, 천천히 걷고 뛰는 사람들 또는 반려동물과 함께 지나는 사람들이 익숙하다 못해 친근하다.
눈 오는 날의 세상은 다른 얼굴을 했다. 도톰하게 흩어진 안개와 무겁게 날리는 눈송이가 포근한 게 기분을 꽤나 좋게 만든다. 그 한가운데 가만히 서서 따뜻한 옷 속으로 파고들면 마치 폭닥하게 하얀 이불을 덮은 것 마냥 감은 눈앞이 하얘진다. 세상이 끝도 없이 희미한 듯도 보인다. 눈 오는 날이 그렇다.
어릴 적 주구장창 보던 디즈니 만화는 항상 해피엔딩이었다. 내 삶에도 언젠가는 그런 해피엔딩이 있을 거라 상상해 왔고,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나면 아주 당연하게도 "happily ever after" 하게 살아가게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해피엔딩의 끝자락조차, 내 짧은 평생 목격한 적이 있을 리 만무했다. 삶 앞엔 죽음 이외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나는 꽤 오래 걸린 것 같다. 동화 속에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해의 끝자락에 내린 눈이, 되려 끝은 없다 말하는 것 같다. 그래, 끝이 어디 있어. 어찌 되었든 계속 가는 것이 삶이겠거니 하며 23년의 마지막 날에 쉼표를 찍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