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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Sep 12. 2024

인생의 회전목마







6000보만 걷자 시작한 걷기가 이제 8000보 이상이 디폴트가 되었다.   매일 걷다 보니 비슷한 시간대와 동선에 따라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다.   오전 9시대 산책을 나서면  보행 보조 기구를 의지해서라도 걷는 노인들을 만난다.  



'꼬부랑 할머니' 노래 속 주인공처럼 몸이 반은 굽은 할머니.  흥겨운 리듬 때문에 레크리에이션송으로 여겼던 그 노래가 지금 불러보니 서글프다.  어느 한 시절 젊고 곧았던 육신이 검불처럼 변해버린 모습에서 우렁이 엄마가 떠오른다.   우렁이는 자기 몸 안에 40개  이상의 알을 낳는데 부화된  새끼 우렁이들은  엄마 살을 조금씩 떼어먹으며 자라난다.   한 점의 살도 남김없이 새끼들에게 다 줘버린 어미 우렁이는 빈 껍데기가 되어 냇물에 둥둥 떠내려가는데,  그때 새끼 우렁이들은 "우리 엄마 시집간다"라며 손뼉을 쳤다는 설화가 있다.  어미의 살을 파먹고 자란 새끼 우렁이도 훗날 엄마 우렁이가 되면 그때의 엄마 마음을 뒤늦게 읽어낼 수 있겠지.  











걷기 운동을 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양할 거다.   체중조절, 관절 관리, 당뇨나 심혈관 질환 예방 등등.  나에게 걷기는 운동 이전에 도전이다.  그깟 걷기에 뭔 도전이란 거창한 타이틀까지 달까 싶지만,  운동 열등자인 나는 앉아서 하는 일로 하루 대부분을 보낸다.  어찌하다 필라테스, 요가를 등록한 적 있지만 막대기만큼 뻣뻣한 내 몸에 좌절해 몇 번 다니다 포기해버렸다.  그런 내가 올여름 숨 막히는 더위에 밀려 새벽 걷기를 시작했고,  자발적 의지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시작한 걷기가 내게 '걷는 맛'을 알게 해줬다.



진정한 걷기 애호가는 구경거리를 찾아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기분을 찾아서 여행한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걸을 때 마주치는 불편한 몸의 노인분들.  그분들의 뒷모습에서 나는 뭉클한 인생을 읽는다.   새끼 우렁이에게 자신의 살을 다 내줘 빈 껍데기뿐인 우렁이 엄마는 그 상황에서도 병든 육신이 자식에게 짐이 될까 염려한다.   내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유효기간을 하루라도 더 늘리기 위해 오늘도 느린 걸음을 한 발씩 내딛는 이 땅의 어른들.  걷기의 의도가 순전히 이타적이기에 그분들의 느린 걸음을 리스펙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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