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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겁쟁이 선비 Dec 14. 2022

관음성지 낙산사 템플스테이 ②

겁쟁이 선비의 인생 첫 번째 템플스테이



5. 준비

5월 2주 차 금요일에 시간을 내어서 어렵게 고속버스 예약을 했다. 5월 연휴라 고속버스 자리도 예약 못할 뻔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버스 예약도 못 했으면 차량 렌트로 직접 운전해서 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데,(*우리 집은 차가 없다.) 그 당시 나는 2014년 면허 취득 이후로 단 한 번도 운전을 해 본 적 없는 손가락 카트라이더라 버스나 기차 말고는 갈 방법이 전무했다.


다행히 오전 고속버스 2~3자리의 잔여석이 있어서 예약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온라인으로 예약하는 과정이 번거롭기 그지없었는데, (오래전에는 모바일 미지원이라 웹으로 예약하는 방법만 있었다. 그 악마의 Active X로 시작하는 새로고침과 설치의 무한 굴레…) 교통 앱이 나온 이후로 예약이 무척 간편해졌다. 상전벽해와 같은 이런 사실조차 나에겐 설렘의 연속이었다. 누군가와 동행하는 여정이 아닌 나 홀로 쉼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었기 때문에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면서 새로운 외부 환경과 교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취업하고 처음 떠나는 여행이기도 했고.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는 과정부터 그 한 순간 한 순간, 과정 하나하나를 온전히 음미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떠나는 짐은 간소했다. 여행이지만 회복으로 채우는 여정임과 동시에 덜어내고 또 비우러 가는 여정이기도 해서 많을 필요가 없었다. 카메라, 세면도구, 여벌 옷 1세트가 전부였다. 그렇게 5월 19일 수요일, 부처님 오신 날 이른 아침 동서울 터미널에서 낙산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6. 여정

전 날 푹 잤는데도 불구하고 버스 맨 뒷 석이라 그런지 그 쿠션감에 스며들 듯 누웠더니 출발하자마자 골아떨어졌다. 예약 편이 일반버스가 아닌 우등버스였던 탓에 변화무쌍한 창 밖 경치만 바라보고 달리기엔 버스 뒷 좌석이 너무나 편안했다. 그렇게 딥ㅡ슬립에 빠진 지 얼마나 지났을까. 이른 봄 아침 햇살에 잠들었다 어느덧 눈을 떠보니 하차하고 있는 승객들에 나도 모르게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내려버렸다.


나는 교통편을 이용할 때 도착했다는 기척에 헐레벌떡 일어나는 것을 선호하지 않아 보통 도착 예정 시간보다 20~15분 정도 앞선 알림을 맞춰놓고 미리 일어나는 편이다. 그런데 첫 힐링여행이라는 특유의 긴장감에 그걸 잊어버렸다. 어딘지도 모르는 상태에 일부 승객이 안 내리는 것이 미심쩍었지만 대다수가 내리고 있어서 관광지임에는 틀림없겠거니 라는 생각에 일단 내렸다. 내리고 나서 보니 눈에 들어오는 간판.


‘양양 고속 시외버스 터미널’


그렇다.

한 정거장 앞서 잘 못 내렸다.

낙산 버스터미널에서 내려야 했는데 1 정거장 일찍 내렸다. 초행길이기도 하고, 도착지를 착각하기도 했던 탓이기에 고민이 들었다. 이걸 어떻게 할까…. 그냥 택시를 부를까, 언제 올지 모를 이 지역 마을버스를 기다릴까… 고민하다가 일단 지도 앱으로 거리를 확인해보니 약 5km 남짓한 거리. 평소 운동량을 생각했을 때 충분히 걸어갈만한 거리라고 판단해서 지도 앱을 확인하면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래, 힐링 여행인데 이 정도 스토리가 없다면 진부하기 짝이 없지’라고 스스로 정신승리를 시전하며 늦봄 초여름의 더위가 올라오기 시작하는 아스팔트 찻길을 지도 앱에 의지하며 무작정 걸어갔다.






7. 도착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까. 30분 내외면 도착할 줄 알았는데, 1시간 조금 못 미치는 시간이 걸려 낙산해변을 거쳐 주차장에 도착했다. 템플스테이 참가자 입소 시간이 오후 2시가 아니었다면 택시를 불렀을 것이다. 생각보다 쉽게 줄어들지 않는 거리를 보며 살짝 조마조마했지만 그래도 결국엔 시간이 여유로웠다. 걸어가는 중간에 점심을 먹을 때가 되어서 허기짐에 물막국수 집에 들러 점심을 해결하고 온 덕에 든든하게 5km를 걸어왔다.


무엇보다도 해안가 근처를 걸었을 때 은은하게 나는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짠 바닷 내도 마음에 들었고, 한적한 양양의 도로변을 걷는 기분도 나름 만족스러웠다. 날이 조금만 시원했다면 좋았을 뻔했지만 그렇기엔 이미 초여름의 무더위로 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기 때문에 무용(無用)한 가정법이었다. 이리저리 오후 1시 남짓한 시간, 빼곡한 주차장을 지나고 나를 처음 맞이한 것은 ‘관음성지 낙산사’라는 현판이 걸린 웅장하고 경건한 일주문(一柱門)이었다.


관음성지낙산사 일주문 © 2021. 겁쟁이 선비. All right reserved.






8. 낙산

나는 한 가지를 간과했다. 여긴 ‘산’이다. 낙산(洛山)이다.(*이름은 산이지만 높이는 80m 남짓이다.) 일주문에서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절이 나온다. 그것도 모르고 5km를 걸어왔다. 허허허. 짐이 상대적으로 가벼워서 망정이지 조금만 무거웠으면 힐링이고 나발이고 입에 걸걸한 육두문자만 경문 대신 줄줄 뱉고 왔을 테다. 경건한 산사(山寺)에 무례를 범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스스로가 범한 실수이기도 하니 인내심을 가지고 오르기로 했다.


일주문에서 완만한 경사를 따라 낙산사 입구인 홍예문까지 산 흙길을 따라 십여 분 걸어 올라갔다. 당시 체감으론 훨씬 더 소요된 듯싶었으나 모든 일정이 끝난 후 사사로운 감정을 걷어내고 객관적으로 회고해보면 정문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문 매표소로 향하기까지 오르는 길이 살짝 힘에 부치긴 했지만 어떡하랴. 이 또한 내가 선택한 길.


홍예문(무지개 홍 虹, 무지개 예 霓, 말 그대로 무지개 문이다.) © 2021. 겁쟁이 선비. All right reserved.


정문인 홍예문과 매표소를 지나면(*템플스테이 참가자라고 말하면 매표소에서 티켓팅을 하지 않더라도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직진을 하면 경내를 돌아볼 수 있고, 오른쪽 아랫길로 가면 템플스테이 숙소가 나온다. 숙소로 내려가는 길에는 절에 상주하는 고양이 두 마리를 만날 수 있었는데, 낯을 사뭇 가리는 듯 하면서도 사람을 겁내 하지 않았다. 스님들께서 잘 챙겨주시는지 털에 때깔이 반짝반짝했다. 그렇게 지나가는 나를 처연하게 쳐다보는 5월 늦봄의 따사로운 햇빛에 걱정 고민 없이 늘어진 묘생(猫生)의 팔자가 나는 사뭇 부러웠다. 열반과 거리가 먼 나에게는 지금 상황보단 훨씬 나아 보였기 때문일까.



묘생(猫生) 팔자가 상팔자다. © 2021. 겁쟁이 선비. All right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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