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산책
젊은 시절,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외모에 손이 가고 화장과 옷차림에 신경 썼다. 관계를 돈독히 만들어 나갈 대화거리를 찾고 상대가 좋아할 만한 취향을 고민했었다. 지금은 내차 옆자리에 태우고 좋은 음악을 들으며 길을 향한다.
자주 보는 친구, 지인이더라도 유독 좋은 곳에 데려가고 싶은 날이 있다.
며칠 전 통화 했을 때 친구의 기분이 안 좋았거나, 날이 너무 좋아서 가만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날이 그렇다.
그뿐 아니라 봄바람에 온 마음이 들썩이는 날,
밤새 내린 비가 이제 막 멈추고 대지를 휘감던 습기가 서서히 다시 하늘 위로 올라가는 아침,
앞 다퉈 만개하는 꽃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모든 계절,
짙은 녹음이 이번엔 꽃이 되어 지구의 만인을 시인으로 만드는 가을,
눈꽃으로 뒤덮인 겨울날 아무도 밟지 않은 땅에 나의 첫 발자국을 남기고 싶은 날,
이런 날, 당장 뛰어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마음속 1,2등을 다투는 길이 있다. 서울에서 가까운 이곳이 아마 1등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종종 딸에게 엄마가 죽거든 북한강 아무 데나 뿌려달라고 말할 정도로 그 강을 사랑한다. 이길 또한 북한강에서 시작하고 끝이 난다.
나만의 코스가 있다. 가벼운 모임이라면 대충 한두 곳 들를 테지만 좋아하는 사람을 데리고 갈 때는 꼭 나만의 코스로 움직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선 단골식당에서 밥을 먹고, 식당 맞은편으로 길을 건넌다. 북한강변 산책로에서 투박한 돌계단을 오르면 북한강을 가로지르는 양수교에 오른다. 옛 기찻길이 지금은 자전거 길이자 산책로가 되었다. 전날밤, 나의 안내를 따라 낯선 길에 발을 들인 누군가가 자아낼 감탄사를 미리 상상한다. 나의 행복은 길에 오르기 전 날부터 이미 시작된다.
첫 시작은 늘 '돌미나리 집'이다. 이곳은 봄에 가야 더 환상적이다. 간판을 둘러싼 초록잎들이 온통 등나무 잎이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 등나무꽃이 피는 시기에 간다면 보랏빛 은하수가 내 정수리 바로 위에서 바람결 따라 일렁이는 횡재를 맛본다. 날씨의 변수에 따라 더 일찍 피우거나 일찍 지는 바람에 자주 가는 나조차도 적중률이 그리 높지 않다.
둘이 가든 셋이 가든 두 종류의 국수와 미나리 전은 필수다. 샐러드처럼 내오는 생 돌 미나리와 초고추장만으로도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 든다. 바삭하고 향긋한 미나리전과 새콤, 달콤, 매콤한 비빔국수의 조화가 입맛만 돋우는 것은 아니다. 나들이의 설렘을 한결 고조시킨다. 이곳에서 늘 용량초과의 과식을 하기에 곧장 카페로 가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내가 만든 코스는 탁월하다. 식당을 나와 왼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앞으로 두 시간가량 펼쳐질 아름다운 산책로를 만난다. 제아무리 부른 배도 이 길 위에 서면 소화가 된다.
행복감은 온몸의 신진대사를 돕는다.
식당에서 나와 길을 건너 왼쪽으로 20여 m 걸어가면 운길산역 삼거리가 나온다. 인가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그곳에 오래된 철물점이 있다. 자전거를 이용하면 자연스럽게 양수교에 갈 수 있지만 차를 갖고 가면 철물점 앞에 주차를 하고 걸어가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주변에 제대로 된 주차 공간은 물의 정원 주차장과 협소한 운길산 역 주차장인데 양수교까지 꽤 멀다. 철물점은 차도에서 지붕만 보일 정도로 낮은 지대에 위치해 있기에 웬만해서는 지나치기 일쑤다. 이곳을 처음 발견한 데에는 겁 없는 나의 '무작정 정신'이 크게 기여했다. 구미가 당기는 곳은 어디든 들어가고 보는 습관은 운전할 때도 마찬가지다. 호기심이 가는 길은 일단 들어서고 본다. 홍천 어딘가에서도 호젓한 어느 마을 신작로에 마음을 빼앗겨 정신없이 길을 탐한 적이 있다. 해는 이미 산을 넘어 사라졌고, 오도 가도 못하는 논 한가운데로 들어서고 나서야 차를 멈췄다. 겁을 잔뜩 먹은 딸은 울었고, 차는 수십 미터를 후진하고 나서야 겨우 길을 빠져나왔다. 길을 찾는 사람은 무모하고 용감하다.
철물점 앞 주차장은 나만의 스폿인셈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풀이 우거진 공터였는데 얼마 전 공사를 하더니 단정한 주차장의 형태로 바뀌었다.
주차를 하고 강 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정비된 자전거길을 만난다. 길을 따라 몇 걸음 더 가면 양수교 아래 벤치 서너 개가 나란히 한 곳을 향해 있다. 모르긴 몰라도 양평군 환경 관리팀은 감성이 있다. 벤치의 자리를 일열이 아닌 두 개씩 나란히 이열로 배치할 수도 있고, 그 방향이 아닌 강 너머의 서종방향으로 배치할 수도 있었다.
앉아 보면 안다. 벤치의 방향이 기막히다는 것을.
강변의 거친 수풀과 뒤 엉킨 고목들, 드문 드문 무리지은 연잎이 그림처럼 프레임 안에 들어온다.
양수교에 오르면 노르드 신화 속의 다리, 비프로스트를 걷는 듯 다른 세계로 가는 영혼의 이동로가 된다.
도시에서 자연으로, 번뇌에서 평안으로 이르게 하는 길.
마음의 짐을 잔뜩 안고 올라섰지만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우리의 발자국 소리에 집중하고 발아래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무겁던 마음이 덜어짐을 느낀다.
걸음은 나에게 치유다.
내가 초대한 이도 오늘 이 길 위에서 마음의 자유를 얻길 바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산책을 한다.
양수교 끝에 다다르면 오른쪽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나는 그 계단을 마법의 계단이라고 부른다. 계단을 내려가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말을 한다.
"와! 여기 뭐야?"
나도 처음 그 자리에서 같은 말을 했었다. 양평군에서 나를 위해 이런 대단한 프로젝트를 한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첫눈에 반한 곳이다. 내 마음속의 정원이 돼버렸다.
정갈하지만 인위적이지 않은 공원, 양수리 '수풀로'는 환경부가 식수원 보호를 위해 조성한 생태 공원이다.
강변의 오랜 주인이었던 큰 나무들과 수십 종의 꽃과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다. 나무 사이사이 소박한 벤치가 조용히 놓여있다. 동행인과 말을 하지 않는다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발자국 소리만 들린다. 워낙 인적이 드물기도 하지만 이곳에 들어오면 절로 소리를 줄이게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가 있다. 공원을 가로지르는 얕은 물길 주변으로 커다란 플라타너스 서너 그루가 서있다. 나무는 내 키만 한 곳에서부터 울창함이 시작된다. 손바닥 보다 큰 잎들이 눈앞에서 나풀거린다. 그 잎들을 헤집고 보는 풍경이 너무나 이국적이어서 사진을 안 찍고는 못 배긴다.
규모가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알차다. 산수유나무 군락과 화살나무 군락이 봄과 가을을 화려하게 물들인다. 높이 뻗은 두충 나무가 빼곡히 늘어선 곳을 지날 땐 지브리 만화 속 주인공 소녀가 된 기분이 들어 신나게 휘파람을 불고는 한다. 공원에서 맨발 걷기를 하시는 동네 어르신들이 많다. 나 역시 몇 해전부터 맨발 걷기를 즐기기에 주저 없이 신발을 벗고 공원을 거닌다. 그늘진 나무 사이사이를 음미하듯 걷다 보면 시야가 탁 트이는 잔디 광장을 만난다. 광장 주변에 병풍처럼 서있는 집들을 보며 이곳에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숲을 다 돌고 다시 우측으로 강을 끼고 걸음을 옮기다 무심코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생각지도 못한 풍경에 깜짝 놀란다.
이름처럼 그림 같은 풍경을 지닌 카페다. 카페는 산책을 좀 더 한 후 들르기로 하고 가던 방향으로 계속 걷는다.
500여 m의 산책로는 수십 개의 얼굴을 보여준다. 친구들은 몇 걸음 채 가지 못하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사진에 담기 바쁘다. 자주 들르는 나 조차도 올 때마다 사진을 찍는다.
자연은 하루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면서도 변함이 없다.
이 길을 특히 더 좋아하는 까닭은 한낮의 산행을 즐기는 이유와 같다. 고요하고 적막하다.
어쩌다 마주친 사람도 나처럼 이 길 위에서 행복할 것을 알기에 속으로 미소를 보낸다.
산책로 끝에 만나는 아스팔트 도로를 건너면 또 다른 세상으로 진입한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세미원, 두물머리로 가는 길이다. 보통은 두물머리 주차장에서부터 걸어와 두물머리만 보고 가지만 나는 반대 방향인 운길산역에서 두물머리로 향해 가는 모든 산책로를 탐하는 코스다. 너무 멀다며 걷기를 주저하는 이도 있겠지만 다행히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처럼 걷기에 주저함이 없다.
풍경에 취하다 보면 말이 줄어든다.
그 점이 길이 주는 최고의 미덕이다. 좋은 이야기도 자꾸 들추다 보면 흠이 되고 만다. 하물며 살기 힘든 얘기는 신물이 날만도 한데 우리는 끓임 없이 내뱉는다. 뱉어 낸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덮어지기 마련이다.
그 시간 동안 잘 버티면 되는 거다. 자연은 이런 때 힘을 발휘한다.
스스로 마음만 먹는다면, 자연은 우리에게 언제든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할 것이다.
두물머리로 가는 길목에서 나는 늘 같은 경험을 한다.
넷플릭스의 '기묘한 이야기'처럼 뒤집힌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을 맛본다.
드라마와 달리 나의 뒤집힌 세상은 천국이다.
화창한 날에 갈 때면 이렇게 말한다.
"비 오는 날 와도 좋겠어"
비 오는 날 가서는 이렇게 말한다.
"가을에 오면 너무 좋겠다"
"눈 올 때 다시 꼭 오자!"
두물머리까지 오면 사람들이 제법 많다. 연꽃이 필 때는 인파로 북새통이고 주차장은 대기 줄로 얼씬도 못한다. 내 손에 이끌려 한번 왔던 지인들은 가족, 혹은 또 다른 좋은 이와 함께 가기 위해 나에게 길을 묻는다. 철물점이름을 외고 있지 않기에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쉬 찾지 못한다. 그때는 다른 대안을 넘겨준다. 굳이 양수교를 건너지 않고 카페 '그림 정원'이나 그 옆 또 다른 대형 카페 주차장에 주차하기를 권한다. 두 곳 모두 카페 본체와 떨어져 있고 주차 공간이 넓다. 카페를 이용하지 않아도 주차 후 산책로와 공원 진입이 가능하다.
두물머리에서 연잎이 지평선처럼 펼쳐진 강변 데크의 벤치도 좋고,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울창한 나무 그늘아래 바위에 앉아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 누구하고 오든 각기 다른 관심사와 걱정, 두려움을 나누지만 결국 사는 이야기는 비슷하다. 죽을 만큼의 고통도, 당장 생이 위급한 일도, 지금 생을 마감한다 해도 여지가 없을 정도의 대단한 기쁨도 없다. 언젠가는 지나가버릴 이야기들이고 누구나 한 번쯤 지나칠 인생의 한순간일 뿐이다.
급성 디스크 탈출로 2주간 누워 지내는 동안 TV로 유튜브 시청을 했다. 평소에 드라마를 보거나 유튜브를 보는 편이 아니지만 누워서 달리 할 게 없었다. 처음엔 한국의 오지 탐험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 기행, 한국의 섬, 자연의 철학자 등등 알고리즘을 타고 다니며 한국에 아직도 저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싶을 정도의 생경한 삶을 목격하게 되었다. 처음엔 저런 곳에서 어떻게, 왜 살지?라는 어리석고 건방진 질문을 했지만, 나도 저리 살고 싶어 졌다.
없으면 없는 대로 소박하고 간소하게 살고 싶다. 허리가 반으로 접힌 노인들이 '내년엔 농사 안 지을 거야, 이젠 힘에 부처'라고 매해 말씀 하시면서도 봄이 오면 다시 땅으로 나가 씨를 뿌리고 자투리 땅 구석구석에 수확할 무언가를 심는 이유는 한결같다. 조상님이 주신 땅을 함부로 놀릴 수가 없어서이다.
하늘에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살고 싶다.
건강한 허리는 잃었지만 대신, 돈으로 매길 수 없는 인생 수업을 들었다.
한두 시간 앉아 이런저런 사는 얘기 하다 보면 이제 커피가 당기기 시작한다.
수변 산책로는 수십 가지의 다양한 경로의 산책로를 제공한다. 되돌아갈 때는 왔을 때와 다른 코스로 간다. 이렇게 가나 저렇게 가나 결국 우린 운길산 방면으로 가면 된다.
눈, 비만 오지 않으면 야외 좌석에 앉는다. 요즘 들어 카페 내부의 소음이 거슬리기도 하지만 나는 계절의 온도를 즐기는 편이다. 더우면 더운 데로 추우면 추운 데로 그 계절의 모습 안에 남는다.
카페 '그림정원'의 매력은 양쪽 어디로 가든 끝내주는 산책로가 기다리고 있다는 점, 느긋하게 앉아서 아름다운 북한강과 양수교, 신양수대교를 보며 별 다를 것 없는 커피를 특별한 맛처럼 마실 수 있는 점, 그리고 카페 뒤편에 있다. 카페 주차장에 주차를 한다면 멋스러운 한옥을 보게 된다. 한옥은 지금의 박공지붕의 대형 카페 이전, 카페의 전신이다. 한옥에서는 다른 이름의 카페였는데 몇 해 전 강 바로 앞에 이전하며 대형 카페가 되었다. 나 같은 단골들의 주머니에서 나간 돈이 모여 누군가의 재산만 불린다.
기역자의 한옥도 멋스럽지만 마당이 정말 좋다. 강변 카페로 가는 길목에 쌓아 올린 돌담, 지붕으로 뻗어있는 으아리 덩굴과 철마다 피고 지는 꽃들이 담백한 한옥과 잘 어울린다. 으아리 덩굴에 꽃이 피는 계절엔 일주일에 두세 번도 간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서이다.
탐스런 으아리 꽃 앞에서 부모님을 카메라에 담는다.
소녀처럼 들뜬 중년의 친구를 담는다. 이러려고 이곳을 찾는다.
지금 아름다우면 되는 거다.
양수리 강변에는 또 한 곳의 그림 같은 풍경을 지닌 카페 '수수'가 가 있다.
나는 이곳에서도 주차장에 주차하지 않고 서종 방향으로 몇 미터 더 가서 작은 공터에 주차를 한다. 연꽃 군락지 쪽으로 나있는 길로 들어서면 보리밭을 만난다. 보리가 없는 계절엔 백일홍이 피어있다. 그곳에 서서 잠시 감상을 하고 가던 방향으로 좀 더 가면 강 위로 펼쳐진 데크길로 진입한다. 어릴 적 내 딸은 그 길 위에서 늘 곡예를 했다. 지금은 가자하면 따라나서기는 하지만 사진처럼 멋진 곡예는 보여주지 않는다. 내년이면 고3이 되는 딸과의 추억이 북한강 곳곳에 있다. 이곳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카페 자체로서 매력은 잘 모르겠다. 커피와 빵맛보다 강변에 서있는 커다란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카페의 얼굴이나 다름없다. 우거진 여름도 좋지만 가을 끝자락에 가면 '이제 가을을 보내주어도 좋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그 계절의 화양연화를 만끽할 수 있다.
살면서 뜻하고 바라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면 그 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염원하고 분투하며 사는 것 일게다. 전부를 다가질 수는 없더라도 좋아하는 사람과 나란히 걷고, 같은 곳을 보며,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일은 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면서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다.
길은 나를 기다렸다는 듯 언제나 길을 터준다. 세상의 모든 길은 우리를 기다린다.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세상의 모든 길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