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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에서 쫓겨나다

여자는 변신을 원했지만

by 빛방울


오랜만이야.

언니, 뭐 하시려고요?

머리를 좀 잘라볼까 하고!

머리 지난번에 세팅한 거잖아요. 아직 자르면 아까운데? 아직 예쁜데 왜 잘라요?

아니 좀 지저분해 보여서 말이야.

아닌데, 컬링 에센스 바르고 말릴 때 돌리면서 말리면 컬이 살아날 텐데.


어젯밤 내내 엄선하여 단발머리 사진과 숏컷 사진들을 손안에 들고 열어보지도 못했다.


그럼, 나 어떡해?

왠지 이대로 물러서면 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손님한테 머리 하지 말라는 사람이 어딨어? 지금 너무 지저분해 보이지 않아? 머리도 너무 길고 말이야.


딸의 친구 엄마이기도 하고, 오랜 세월 온 가족의 머리를 책임져주는 C원장님은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언니, 운동하면서 머리 긴 게 더 편하지 않아요? 그리고 언니 저번처럼 기부한다고 했잖아요!


아, 맞다. 그걸 잊고 있었다니!

C원장은 나를 의자에 앉히지도 않고 설득했다.

언니, 겨울 내내 잘 길러서 봄에 와요! 그때 내가 산뜻하게 숏커트 해줄게요!


이건 상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온 식구들에게 나의 변신을 기대하라고 했다. 긴 머리를 반으로 접어 보여주기도 하며 거울 앞에서 오늘 달라진 내 모습을 상상하며 기분이 산뜻했는데 말이다.


머리는 하지도 못한 채 앉아서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음 손님이 오셔서 서둘러 인사를 전하고 문을 나섰다.


언니, 머리 잘 길러서 와요!


돌아오면서 마음에 꽃이 피었다. C원장의 마음이 고마웠다. 잊고 있던 나의 기부 약속을 떠올리게 해 주었고, 머리를 하면 돈도 벌고 좋은 일일 텐데.


그러고 보니 뿌리 염색도 이제 집에서 한다. 그것도 C원장의 권유. 바쁜 나와 미용실 스케줄이 안 맞아서 예약을 잘 못할 때 급하면 집에서 해보라고 권했다.


언니, 요즘 염색도 집에서 할 수 있게 잘 나와요. 매달 미용실 예약하기 힘들거나 급히 해야 할 때 가끔 해도 괜찮아요. 가끔 내가 색깔 맞추는 건 도와줄게요.

왠지 든든했다. 그러니 내가 C원장을 좋아할 수밖에. 다른 데 갈 수가 없다. 내 스타일을 너무 잘 알고, 솔직하면서도 진심으로 대해주니까.


변신에 실패하고 말았지만, 더 길러서 기부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운동하거나 마라톤 연습을 할 때 긴 머리를 질끈 묶고 달릴 수 있으니 그 또한 잘 되었다.


나 대신 매달 예약해서 아들과 남편을 부지런히 보내야지. 믿고 맡길 수 있는 C원장님에게 오늘의 글감까지 보태어주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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