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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May 25. 2023

승진 한 번 탈락했다고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됐어?

송충이라 솔잎을 먹은 것이 아니라 솔잎을 먹다보니 송충이가 된 걸까.

내가 캐나다 생활을 해 볼 기회를 얻었을 때, 주위 동료들은 내가 그 기간 동안 당연히 MBA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외국 나가서 MBA를 하고, 다시 회사에 돌아와 사장이나 regional manager를 노려 경쟁하는 것이 해외 생활의 기본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내가 MBA가 아닌 로스쿨을 가기로 결정했다고 하니, 주위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만류했다. 캐나다로 국제 전화를 거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국어로 치르는 사법 고시도 통과하기 어려운데 이과생인 네가 영어로 어떻게 로스쿨을 다니겠다는 것이냐며 말렸고, 이름있는 대학에서  MBA를 마치고 오면 (물론 그런 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우리 회사는 다국적 기업이니 더 좋은 기회가 많을텐데 이과생이 로스쿨은 나와서 회사에 돌아와서 뭘 할 것이냐며 말렸고, 한 번 밖에 없는 기회에 남들이 이미 가 본 성공적인 길을 두고 왜 그런 모험을 하느냐며 말렸다. 비행기를 타기 며칠 전에 있던 환송회에서까지 다들 말렸다. 


내가  MBA 도 당연히 생각 중이지만 로스쿨도 고려 중이라고 넌즈시 이야기 하니, 같이 일하던 회사에서 다른 대기업 인사팀으로 옮긴 한 인사 담당 후배는, 술이 몇 잔 들어가더니 이렇게 말했다. 


형,  승진 한 번 탈락했다고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됐어?


아, 그렇구나 - 다들 말은 안 했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그 당시에는, 혹은 내 주위에서는, 정상적이라고 인정되던 길이 아니었기에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생각들을 한 것이고, 그래서 생각해 낸 이유가 내가 임원 승진에 실패했기에 내린 극단적인 선택 (?) 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물론 그런 이유가 없지는 않았다. 막 임원으로 승진하고서 몇 년 외국에 나갔다 오겠노라 말할 수는 없었을 것 아닌가. 승진하지 못했으니 나이 40에 나름 객기를 부려 볼 여유도 생긴 것이 맞기는 맞았다. 하지만, 승진에 실패한 좌절감으로 한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만류했고, 대부분 그 동안 쌓아온 경력에 맞는 결정이 아니라며, 미래도 불확실한 결정이라며 반대했다. 교수님께서도, 추천서는 써 주셨지만,  박사학위까지 한 것이 아깝다고 계속 아쉬워 하셨고 (아직 로스쿨 합격한 것도 아니었지만), 선후배 동료들도 무모한 결정이라며 말렸다. 


우리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면 보통은 주위 사람들이 그 길을 막는다. 마치 어시장에 작은 게들을 모아놓은 통을 보는 것 같다. 한 녀석이 통을 넘어 가려고 하면 다른 녀석이 잡아 당겨서 넘어가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벽을 두 번 넘어야 한다. 한 번은 나 자신을 설득하고 결심하여 실행하는 벽이고, 그 다음은 걱정이라는 명목으로 다가오는 주위 사람들의 진심어린 조언을 뿌리쳐야 한다는 벽이다. 


첫 번째 벽은 잘 넘는 사람들도, 보통 두 번째 벽에서 무너진다. 똑 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열 번... 백 번... 이렇게 들으면 자신이 없어진다. 그래,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해, 이런 생각이 들면 결국 포기하게 된다. 


내가 처음 근무하던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 들려 준 이야기다. 연구소에는 실험을 보조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데, 보통 10년이 넘는 경력이 있으셨다. 연구자들은 보통 연구소에서 10년을 버티기 전에 이직을 하거나 본사로 발령이 나니, 실험 보조원 분들이 연구자들보다 연구소 생활을 훨씬 더 오래 한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일을 잘 하시는 분들인데, 유독 한 종류의 식물에 필요한 병을 일으키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식물에 병을 내야 실험을 할 수 있으니 다른 방법을 쓰려고 하셨는데, 실험 보조원 분들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시더란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실험 매뉴얼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이렇게 물어보셨다고 한다. 


매뉴얼대로 해서 병 낸적 있나요?


그랬더니, 놀랍게도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선임 연구원은 다른 방법을 시도했고 성공했다.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매뉴얼에 그렇게도 집착하니, 만일 성공한 적이 있다면 그 믿음은 신앙에 가까웠을 것이고, 그 선임 연구원은 매뉴얼과 다른 길을 시도하기 더 어려웠을 것이다. 


토익을 공부하던 동료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토익 만점 어떻게 받나요? 라고 지식인에게 물어보면, 만점 못 받은 사람들의 답변만 줄줄이 달린다고. 우리 주위에도 나의 새로운 시작을 막으려는 시도는 대부분 그 일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온다. 그리고 나의 시도를 막는 그 이면에는 나를 걱정해 주는 선의가 있음이 분명하니, 그걸 뿌리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새로운 일을 시도하려면 꼭 가져야 할 기술은 '뿌리치기'이다. 비록 선의라 할 지라도 나를 끌어내리는 시도는 과감하게 뿌리쳐야 시작이라도 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의를 뿌리치는 그 첫 단계는 의심이다. 


내가 송충이라 솔잎을 먹어 온 것이 아니라, 솔잎만 먹었기 때문에 송충이가 된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보아야 한다. 


내가 로스쿨을 가기로 했을 때에도 딱  두 명, 이미 외국에서 MBA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후배 한 명과 영어 학원에서 예전에 LSAT 준비를 하다가 포기하셨다는 학원 강사분만 내 결정을 지지하고 응원했다. 어떤 이유로든 다른 이의 조언을 들어야 한다면, 내가 가려는 길을 가 본 사람의 조언을 듣는 것이 가장 좋고, 그런 사람이 없다면 적어도 비슷한 시도라도 해 본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솔잎이 아닌 다른 잎사귀도 먹어 보기로 했다면, 일단 과감하게 먹어볼 일이다. 그건 솔잎이 아니라고, 먹어서는 안 된다고 외치는 음성에 한 번은 귀를 틀어 막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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