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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은 미덕인가? 공유는 죄인가?

디지털 시대, 저작권의 균형을 묻는다

by 신광훈

스마트폰을 켜면 쏟아지는 뉴스,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 눈길을 사로잡는 영상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디지털 콘텐츠 속을 매일 항해하고 있다. 그리고 손가락 하나로 전 세계의 정보를 넘나드는 이 편리함 뒤에는 '저작권'이라는 중요한 원칙이 자리 잡고 있다.


디지털 혁명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과 같아서, 전례 없는 창작의 자유와 공유의 풍요를 선사한 대신 아날로그 시절에 맞추어진 저작권의 오래된 균형추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아, 이제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원치 않는 숙제를 받은 셈이 되었다.


저작권의 딜레마: 보호와 공유 사이에서

저작권은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을 통제하고 사용할 권리를 가지도록 보장하는 것으로 특허권, 상표권과 같은 지식재산권의 하나다. 베른협약을 비롯한 국제 저작권 체계 하에서 주어지는 저작권은, 창작자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법적 권리를 넘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지켜내는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 저작권을 통해 창작자는 자신의 허락 없이 창작물을 사용하는 것을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창작물은 대중에게 널리 퍼질 때에 비로소 가치를 얻는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보더라도, 작품에 등장한 게임, 소품, 유행어들은 밈과 패러디로 전 세계에 확산되었고, 이는 원작의 검색량과 시청률, 관련 상품의 판매 급증으로 이어졌다. 일부 행위는 엄밀히 말하면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었음에도 창작자가 이를 묵인함으로써 작품의 문화적 영향력은 더욱 확대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지나치게 엄격한 저작권 보호는 오히려 창작자의 기회를 줄이는 역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은 명확하다. 무단 복제나 상업적 도용은 분명히 막아야 하지만, 창작물이 널리 퍼지고 재해석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적 가치가 창출되며 이러한 가치 창출 과정의 핵심에는 '공유'라는 행위가 있다.


공유는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문화다. 1980년대에는 라디오에서 녹음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빌린 음악 테이프를 통해 좋아하는 노래를 모아 자신만의 테이프로 만들어 친구에게 선물하는 일이 자연스러웠고, 그 수고는 우정의 표현으로 여겨졌다. 심지어 불법 복제 테이프가 '길보드 차트'라는 이름으로 길거리에서 버젓이 판매되던 그 시절, 저작권은 대중에게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라 불리는 지금의 공유는 그 속도와 파급력에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다. 클릭 한 번으로 콘텐츠가 전 세계로 퍼지는 지금, 그 편리함 뒤에는 창작자의 생계와 권리가 걸려 있다. 무분별한 공유는 창작자의 수입을 잠식하고, 결과적으로 창작 환경 자체를 위협한다. 나아가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문화 다양성까지 훼손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유는 어디까지가 나눔의 미덕이고, 어디서부터가 죄가 되는가?


법원이 제시한 균형의 지혜

2024년 캐나다 연방법원의 한 판결은 이 질문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캐나다 정부 부처가 하나의 유료 구독으로 획득한 '블랙록스 리포츠'라는 회사의 기사를 정부 부처 내에서 공유한 것이 발단이었다. 기사에 대한 저작권을 가진 블랙록스 측이 제기한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캐나다 연방법원은 오랜 심리 끝에 합법적으로 취득한 자료를 법이 허용하는 공정 이용 범위 내에서 공유한 것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캐나다 연방법원은 "저작권법의 목적은 창작자의 권리 보호 뿐 아니라, 공공의 이익과 문화·지식의 발전에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 판결은 저작권이 창작자만을 위한 권리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화 생태계를 위한 제도임을, 그렇기에 서로 다른 두 이해관계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준다.


만약 저작권 보호가 극단적으로 강화되어 하나의 작품에 대한 언급, 비평, 교육적 활용, 심지어 팬들의 패러디와 2차 창작까지 금지된다면, 그 창작물은 대중과 어떻게 소통하며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을까? 이런 배경 속에서 우리는 저작권을 창작자만의 독점물이 아닌, 모두의 문화적 자산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동시에, 공정한 이용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섬세한 균형감각이 절실하다.


일선의 혼란과 과제

이 대전제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일선에서의 상황은 더 복잡하기에 저작권을 둘러싼 갈등은 이미 우리 주변에 만연해 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패러디들은 오마주인지 상업적 도용인지 판단하기 어렵고, K-pop 팬들의 영상 편집이나 웹툰 불법 유통 문제는 창작자의 권리와 팬덤의 문화가 충돌하는 대표적 사례다.


여기에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등장은 다시 새로운 차원의 질문을 던진다. 2023년 미국에서 제기된 Getty Images v. Stability AI 소송은 AI 학습용 데이터 수집이 저작권 침해인지를 다루었고, 2024년 미국 특허청은 AI가 생성한 작품에 대해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있어야만 저작권을 인정한다고 명시했다. 이런 쟁점들은 기존의 체계로는 답하기 어려운, 새로운 균형점을 요구하는 시대적 과제다.


세대를 가르는 공유 문화의 변천

같은 지식재산권이지만, 저작권은 특허권이나 상표권에 비해 시대와 기술에 따라 세대 간의 인식이 좀 더 극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과거에는 허용되던 행위가 오늘날에는 침해가 되거나, 반대로 기술 덕분에 새로운 형태의 창작과 그 공유가 가능해지기도 한다. 기술의 발전은 창작과 소비의 양식을 바꾸었고, 그에 따라 저작권에 대한 인식 역시 세대마다 다른 양상을 띤다.


좋아하는 노래를 라디오에서 녹음하고 소위 '믹스테이프'를 만들어 친구와 나누는 행위는 1980년대 젊은 세대의 우정의 표현이자 문화의 일부였다. 하지만 2020년대의 젊은 세대는 스트리밍을 통해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콘텐츠를 이용하며, 불법 다운로드 자체에 대한 경각심은 높은 반면, 팬아트나 팬픽 등 새로운 2차 창작을 통해 원작의 세계관을 확장해 나가는 부분에서는 관대하게 반응하는 경향도 보인다.


이러한 기술의 변화 속에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어려서부터 저작권을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기에, 그 최전선에 서 있는 공교육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 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교육 현장은 아직 혼란스럽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수업이 일상화된 후, 수업 자료를 제작하던 교사들은 저작권이라는 장벽을 마주해야 했다. 다행히 한국 저작권법은 제25조(학교교육 목적 등에의 이용), 제28조(공표된 저작물의 인용), 제31조(도서관에서의 복제 등), 제35조의3(저작물 이용과정에서의 일시적 복제) 등을 통해 학교 교육 목적의 저작물 이용을 일정 부분 허용하고 있으며, 공공기관의 자료는 '공공누리'나 'CC 라이선스'로 자유로운 활용을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수업에서 교과서의 작품을 낭독하면서도 저작권 침해를 우려한다는 어느 교사의 고백은, 저작권이 단순히 적절한 법 조문의 제정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매일매일 고민하고 배워 나가야 하는 일상의 문화적 쟁점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법과 제도가 저작권에 대해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해도, 결국 그 안에서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은 사회 구성원의 몫으로 남는다.


지속가능한 저작권 생태계를 향하여

보호와 공유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은 어렵고, 지금 어렵게 도출한 균형이 앞으로도 계속 유효하지는 않을 것 역시 자명하다. 그러나 균형을 찾으려는 그 노력을 멈추는 순간, 우리의 문화 생태계는 기울어지고 무너질 수 있다.


지금은 ‘저작권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이다. 체계적인 저작권 교육을 통한 인식 개선, 플랫폼 기업들의 자율적 가이드라인 마련, 그리고 창작자와 플랫폼 간의 공정한 수익 분배 체계 구축 등이 그것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새로운 협력 모델들이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하이브가 운영하는 위버스 플랫폼은 팬들이 만든 2차 창작물과 원작이 공존하면서 서로의 가치를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고, 네이버웹툰과 레진코믹스는 각각 다른 2차 창작 허용 정책을 통해 창작자와 팬 커뮤니티 간의 새로운 관계를 실험하고 있다.


유튜브의 콘텐츠ID 시스템처럼 기술을 통해 창작자에게 자동으로 수익을 분배하거나, 창작 과정에 참여한 원작자, 2차 창작자, 플랫폼, 커뮤니티 등 모든 주체가 공정하게 가치를 나누는 '협력적 저작권 모델' 역시 새로운 균형의 사례가 될 수 있다.


균형을 찾아가는 여정

디지털 기술은 전례 없는 창작의 풍요와 공유의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저작권이라는 저울을 끊임없이 흔들고 있기에, 우리는 창작자의 권리라는 한쪽 추와 공공의 이익이라는 다른 한쪽 추 사이에서 늘 균형점을 고민해야 한다. 이 균형은 고정된 정답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찾아 나가야 할 질문이다.


지금 우리가 던지는 질문은 ‘디지털 시대의 공유는 과연 어디까지가 미덕이고 어디서부터가 죄인가?’ 이지만, 우리 시대의 진정한 과제는 ‘공유는 미덕인가, 죄인가?’라는 이분법적 질문에 답을 내리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그 과정 속에서 우리 시대의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진짜 책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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