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령 그것이 아무 의미 없는 믿음일지라도
[월간 영화기록]은 월마다 간단한 소회와 함께, 영화관에 개봉 혹은 OTT에 공개된 영화들을 총정리하여 별점과 간단한 평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가끔 챙겨 보는 유튜버가 있다. 주로 게임 방송을 하는 스트리머인데 2016년부터 봤으니 대략 8년은 본 셈이다. 그 유튜버는 고양이 한 마리를 키웠다. 러시안 블루 고양이였는데 자기 이름보다 '참치'라는 말에 반응하는 순 먹보 고양이였다. 그 고양이가 얼마 전 고양이 별로 여행을 떠났다. 단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화면 너머로 보기만 했지만 이상하게 허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군 시절 키웠던 고양이 '모짜'가 생각났다. 본인은 의무대 수의과에서 근무했었는데, 어느 날 후임이 죽어가는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고양이를 키워본 적도 없는 나와 수의관은 어떻게든 모짜를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다.(후임은 나한테 고양이를 맡기고 다음 날 바로 휴가를 나갔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5개월간 모짜와 사무실에서 동고동락하였다. 모짜는 내가 입던 후리스 위에서만 잠을 잤다. 내가 생활관으로 돌아갈 때는 더 놀아달라고 바지를 붙잡았다. 내가 근무 때문에 의무대에서 잠을 청할 때면 침대 위로 올라와 다리 위에서 빙글빙글 윈드밀을 돌았다. 덕분에 잠도 못 자고 다음날 출근하였다. 힘들고 귀찮은 적도 많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군 생활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모짜는 내가 휴가 나갔을 때, 이비인후과 군의관에게 분양되었다. 새로 온 수의관이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어 더 이상 사무실에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거라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 지금도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쉽다. 만약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으면 '잘 가'라는 말 대신 '다녀와'라고 말했을 텐데. 그럼 언젠가 모짜가 다시 만나서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할 것 같아서. 이제 7살이 된 모짜는 잘 지낼지 궁금해진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이별이 찾아올 때가 있다. 가깝든, 멀리 떨어져 있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한 존재가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는 건 무척 슬픈 일이다. 모짜, 사카모토 류이치, 이선균, 그리고 참치를 좋아하던 먹보 고양이까지, 떠난 그들이 남긴 마음의 공허는 괜스레 헛헛한 기분을 남긴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만남에는 헤어짐이 정해져 있고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옴이 있다는 뜻이다. 이별은 필연적이다. 어떤 존재든 영원히 우리 곁에 있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설령 그것이 아무 의미 없는 믿음일지라도, 그렇게 믿는 것이 슬픈 현실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이라 믿는다.
참치를 무척 좋아하던 먹보 고양이에게 작별 인사를 남기며, 2월의 기록들이다.
잘 가. 귀여운 친구. 또 보자.
<듄: 파트2>
감독 : 드니 빌뇌브
내재된 악과 권력의 흐름에 휘둘리는 인간을 어여삐 여기는 영화의 시선.
모든 장면마다 자신의 호흡을 일일이 박아 넣는 드니 빌뇌브의 지독함.
★★★★
<바튼 아카데미>
감독 : 알렌산더 페인
소박하고 귀여운 장식이 가득 달린 크리스마스트리를 영화로 만들면 이런 느낌일까.
온화한 손길로 마음에 따스한 숨결마저 불어넣는다.
★★★★
<갓랜드>
감독 : 흘리뉘르 팔마슨
무의미를 견딜 수 없는 자의 발버둥이 유장한 트래킹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감독 : 바오 응우옌
스타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영감과 공동작업의 노곤함이 생생한 열기로 뿜어져 나온다.
★★★☆
<벗어날 탈脫>
감독 : 서보형
영화라는 먹으로 그린 커다란 만다라.
불가언설(不可言說). '없다'라고 규정하면 더욱 존재하는 역설.
인간의 언어로 규정하는 세계의 허상을 넘어서 진리를 탐구하는 영화적 시도.
아직 영화가 할 수 있는 것이 남았다.
★★★☆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감독 : 김다민
시종일관 통통 튀고 굴러다니는 상상력으로 끝까지 밀어붙인 개성과 뚝심.
알록달록 밝은 영화의 빛으로 바라본 그토록 어두운 아이의 현실.
★★★☆
<오키쿠와 세계>
감독 : 사카모토 준지
세계는 저쪽에서 와서 이쪽으로 간다.
순환하는 영화의 구조와 이미지로 삶의 비탄을 감싸다.
★★★☆
<여기는 아미코>
감독 : 모리이 유스케
여름의 따사로운 햇살을 품은 롱테이크마저 뚫고 나오는 외로운 소행성의 사이렌 소리.
★★★☆
<플랜 75>
감독 : 하야카와 치에
피할 수 없는 사회 난제를 전체적인 흐름으로 바라보기보단, 돋보기로 개인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야기한다.
죽음은 '선택'하기보단 맞이할 '준비'를 할 때 존엄하다.
★★★
<살인자ㅇ난감>
감독 : 이창희
원작의 강력한 딜레마를 억누른 덜어내기 각색.
★★★
<아가일>
감독 : 매튜 본
오! 오? 어? 엥?
★★☆
<파묘>
감독 : 장재현
영화의 야심이 영화의 도화지보다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