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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기록들, 우리 어빙이 달라졌어요

지구가 평평해질 때까지 농구공을 드리블하는 어빙을 지켜보며

by 권순범
[월간 영화기록]은 월마다 간단한 소회와 함께, 영화관에 개봉 혹은 OTT에 공개된 영화들을 총정리하여 별점과 간단한 평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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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리 어빙(Kyrie Irving)은 NBA의 기인(畸人)이다. 필자는 대강 2019년부터 NBA를 보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카이리 어빙은 사뭇 남달랐다. 당시 '보스턴 셀틱스'에서 '브루클린 넷츠'로 이적하였는데, 2023년에 '댈러스 매버릭스'로 이적할 때까지 '말썽꾸러기' 그 자체였다.


우선 카이리 어빙이 누군지 소개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카이리 어빙은 2011년에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서 데뷔한 농구 선수이다. 그는 화려한 볼 드리블을 바탕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의 플레이를 보면 당장 뛰쳐나가 길거리농구를 하고 싶을 정도다. 카이리 어빙은 데뷔 첫해 바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하지만 당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약팀이었기에 우승에 다가가기 부족했다.


그러나 2014년에 농구의 왕(King) '르브론 제임스'가 '마이애미 히트'에서 다시 친정팀 캐벌리어스로 돌아오면서 상황은 뒤바뀐다. 르브론 제임스 복귀 첫해 2014-15시즌은 '스테판 커리'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막히면서 우승에 실패하였지만, 다음 해 2015-16 시즌은 워리어스에 복수하며 우승했다. 그 당시 어빙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우리에게도 유명한 서장훈이 객원 해설 위원으로 "저런 슛은 쏘면 안 되는데 다 들어가니 할 말이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어빙의 슛은 쏘는 족족 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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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대로를 걷는 것 같았던 어빙에게 음흉한 마음이 싹트기 시작한다. 바로 르브론 제임스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내가 리더가 되어 팀을 이끌고 싶다는 욕망. 결국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어빙은 트레이드를 요청하였고, 보스턴 셀틱스로 이적한다. 과연 어빙의 리더십은 성공하였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했다. 일단 부상으로 시즌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보스턴 셀틱스로 이적한 첫해 2017-18시즌은 부상으로 결장이 많았다. 직접 경기장에서 마이크를 잡아 "팬들이 원한다면 재계약하겠다"라고 말하며 환호성을 자아낸 어빙이었지만, 다음 시즌도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며 썩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어빙은 뜬금없이 브루클린 넷츠로 이적하며 본격적인 기행을 시작한다. 그전에도 기행을 저지르고 다녔지만, 필자가 NBA를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 2020년부터 어빙은 그야말로 처치곤란 '애물단지'였다. 셀틱스 팬들에게 중지를 날리는가 하면, 코트 위 셀틱스 팀 로고를 짓밟는 비신사적인 행위를 한다. 액운이라도 막으려는 건지 경기 시작 전 풀을 태우는 인디언 제사를 지내며 부두술을 펼치기도 하였다. 하지만 액운을 못 막은 것일까? 어빙은 점차 아무 이유 없이 결장하였다. 당최 이유를 알 수 없어 팬들은 의아했는데, 이후 생일 파티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어 공분을 샀다. 당시 브루클린 넷츠는 케빈 듀란트, 카이리 어빙에 제임스 하든, 일명 'BIG 3'를 만들어 우승을 꿈꿨다. 하지만 듀란트는 부상에, 어빙은 홀연히 사라져버리니, 하든의 눈물겨운 농구쇼만 남았다.


더군다나 어빙은 NBA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을 끝까지 거부한 선수였다. 자신의 신념 때문에 코로나 백신을 맞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즌 절반을 결장한 어빙은 한 마디를 남겼다.


"농구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연봉 400억을 받으며)


어빙은 지구는 둥글지 않고 평평하다는 '지구평면설'을 주장하며 NBA의 반지성주의 이미지가 강했는데(훗날 농담이었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분위기다.), 트위터로 반유대주의 영화를 홍보하며 위기를 자초했다. 여태까지 다 참았던 브루클린 넷츠도 이번에는 참지 못했다. 어빙은 트레이드를 요청하였고, 넷츠도 어빙을 제발 데리고 가달라며 시장에 내놓았다. 3년 반 동안 보여준 기행 덕분에 '도대체 어빙을 누가 사?'라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댈러스 매버릭스'가 샀다.(팬들도 '이걸 사네'라며 어이없다는 반응이 덤.) 그렇게 어빙은 자신의 우상인 '제이슨 키드' 감독과 슈퍼스타 '루카 돈치치'가 있는 댈러스 매버릭스로 왔다.


어빙의 팬들은 '농구만 하는 어빙은 다르다'라고 자조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진짜 농구만 하는 어빙은 달랐다. 매버릭스의 어빙은 농구 자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으며, 리더십을 발휘하며 팀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다.(브루클린 넷츠만 환장할 노릇이다.) 그렇게 어빙은 올해 NBA 파이널에서 자신의 숙적 '보스턴 셀틱스'를 만나게 되었다.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그의 태도였다. 걸핏하면 기자들과 설왕설래를 벌였던 어빙은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를 이긴 후 기자들 앞에서 매우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image.png?type=w773 출처 : 유튜브 채널 농사꾼:농구사랑꾼

(카이리 어빙과 루카 돈치치가 NBA 역사상 최고의 백코트(가드 포지션)라는 질문에 대하여)


저희가 함께 우승반지를 끼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전 책임감을 갖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희가 훌륭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그런 인정을 받을 자격이 있는 다른 백코트 콤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저와 루카가 특별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맞지만 저희 팀 동료들 없이는 여기까지 절대 오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팀이 이룬 성공입니다.


아, 이게 정녕 어빙의 입에서 나온 말인가? 인터뷰 학원이라도 다니기 시작한 것일까? 명상하다가 득도라도 해버린 걸까? 진짜 지구가 평평한 것일까?


댈러스에 오고 나서 어빙의 변화는 굉장히 놀랍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미디어에서 진리처럼 말하지만, 어빙을 보고 나니 사람은 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김경일 심리학자는 사람이 변하는 세 가지 순간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 좋은 친구를 만났을 때. 둘째, 좋은 연인을 만났을 때. 셋째, 좋은 정신과 의사를 만났을 때. 어빙은 둘째에 해당되는 것 같다. 어빙이 변화한 순간은 결혼, 그리고 딸의 성장과 맞물려있다. 딸은 어빙에게 "올 시즌은 망치지 말자, 아빠. 모두가 지켜보고 있어."라고 말했다. 딸의 말을 실천하며, 어빙은 아버지가 되어 가고 있다.


현재 글을 쓰고 있는 시점, 댈러스 매버릭스는 NBA 파이널에서 2패를 기록 중이다. 어빙의 부진이 무척 아쉬운 경기였다. 보스턴 셀틱스는 올 시즌 최고의 강팀이다. 역시 쉽지 않은 난적이다. 과연 어빙은 다시 활약을 펼치며 승기를 가져올 수 있을까?


지구가 평평해질 때까지 농구공을 드리블하는 어빙을 지켜보며, 5월의 기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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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감독 : 조지 밀러


"네가 과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왜 안돼?"라고 포효하는 야성의 배기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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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의 아내>

감독 : 카릴 세레브렌니코프


거대한 그림자로 가려진 인물의 고통을 카메라와 환상으로 조명하고 위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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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감독 : 웨스 볼


같은 하늘 아래서 서로 다른 꿈을 꾸는 집단 사이에 공존 가능성을 묻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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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시나리오>

감독 : 크리스토퍼 보글리


무리에서 튀어나간 한 마리의 얼룩말로 들여다본 현대 사회의 병폐.

꿈의 역설로 들여다본 인간의 초라한 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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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

감독 : 안톤 코르빈


뜨거운 열정과 의견 충돌, 거기에서 비롯되는 혼란의 탁류 속에서 탄생한 걸작이 남기는 깊은 감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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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투어>

감독 : 미야케 쇼


그 소년은 어떻게 카메라를 잡게 되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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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턴트맨>

감독 : 데이빗 리치


스턴트맨,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멋있게 떨어지는 사람들(The Fall Guy).

스턴트맨들에게 바치는 헌사가 낭만 가득하게 펼쳐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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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의 토크쇼>

감독 : 캐머런 케언스, 콜린 케언스


공간과 시대적 배경을 활용하는 솜씨가 영리한 공포 영화.

격동의 시대를 바탕으로 미디어의 죄악을 묘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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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감독 : 로라 포이트라스


개인의 역사와 예술에서 길어낸 혼돈의 '아름다움'.

심연 속에서도 '유혈사태'를 바꾸기 위한 동기를 추적하는 에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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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내일로>

감독 : 난니 모레타


'영화는 이래야 한다'가 아닌 '영화는 이래도 된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고목처럼 굳건히 버티기보단, 강물처럼 유연하게 변화하는 베테랑 감독의 태도가 돋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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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

감독 : 기시 요시유키


이해의 범주 사이에 혼란이 범벅되는 곳에서 생존 가능성을 모색하며 손을 잡는 사람들.

진흙탕에서도 서로에게 물이 되겠다나지막한 결의와 다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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