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물성은 공간에 따라 가변적이다.
시간은 균질하게 흐르지 않는다. 비단결처럼 부드럽게 흐르기도 하고, 자갈밭처럼 투박하게 흐르기도 한다. 절대적인 시간은 현재에서 미래로 향하지만 상대적인 시간은 현재에서 과거로 도착하기도 한다. 시간의 물성은 공간에 따라 가변적이다. 어떤 공간에서 시간은 전력질주하며 내달리지만, 어떤 공간은 과거로 회귀한다. 어떤 공간인지, 어떤 사람과 함께 있는지, 상황에 따라 마음의 시간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카메라로 시간의 성질을 담는다. 이 영화에서 시간은 늘 현재에서 미래로 흐른다. 플래시백조차 사용하지 않으며 단 한 번도 과거를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인물들이 머무는 공간에서 시간은 과거에 회귀하며 응어리를 풀어낸다.
24년 전 12살의 어느 날, '해성'의 첫사랑 '나영'은 갑자기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다. 12년 후, 해성은 SNS를 통해 나영을 찾는다. 나영의 이름은 '노라'로 바뀌었고 뉴욕에서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스카이프로 대화하지만 실제로 만나지 못한 채 다시 작별한다. 그리고 또 한 번의 12년 후, 해성은 나영을 만나기 위해 용기 내어 뉴욕을 찾는다. 그러나 나영에겐 남편 '아서'가 곁에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교차하는 그들 사이에서 감정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카메라는 단순히 인물을 포착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인물에게 다가가거나 물러나면서, 물결처럼 일렁인다. 그리고 카메라 방향을 정교하게 구성하여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시간 감각을 직조한다. 카메라가 양옆으로 움직이는 '트래킹' 기법은 이 영화가 시간의 결을 매만지는 방식이다. 인물 혹은 카메라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순방향은 시간의 진행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는 역방향은 과거의 회귀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현재의 공간에서 과거의 시간을 소환한다. '해성'과 '나영'이 뉴욕에서 만나 공원을 걷는 장면에서 인물과 카메라는 역방향으로 향한다. 익스트림 롱 쇼트로 구성하여 자그마한 인물들은 현재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해성은 사랑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사랑에 조건이 붙기 시작하였고, 평범한 해성은 그 조건을 만족해 줄 수 없다. 그렇게 현재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지만 마음의 시간은 과거로 흐른다. 그들은 다시 12살의 해성과 나영을 불러오고 있다.
해성이 그토록 과거의 시간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이유는 12살에 하지 못한 작별 인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뉴욕에 찾아오면서 다시 나영과 사랑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사랑하기엔 시간과 현실의 장벽은 두텁다. 더 아파하기엔 자신에게 미안하다. 그래서 12살에 하지 못한 작별 인사를 건네야 한다. 이것은 시간의 바다에서 길 잃은 돛단배와 같은 해성이 다시 항로를 잡기 위한 결정이다. 어쩌면 그의 이름 '해성(Sun과 Star)'과 같이 해와 별이 함께 있을 수 없는 것처럼, 해성과 나영은 이번 생에 인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네 남편이 좋은 사람인 게 이렇게 가슴 아픈 일인지 몰랐어." 해성은 솔직한 감정을 전달하며 아픈 가슴을 정리한다.
영화는 우버를 기다리는 장면으로 기나긴 여정을 마무리한다. 해성과 나영은 우버를 잡기 위해 역방향으로 걸으며 12살의 시간으로 향한다. 그리고 우버를 기다리며 아무 말 없이 2~3분의 시간을 보낸다. 가끔 대화보다 침묵이 주는 힘이 더 강하다. 그들은 그 침묵 속에서 우버를 기다리는 마음과 서로를 떠나보내기 싫은 마음이 교차한다. 단 10초만이라도 우버가 늦게 오길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대적인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다. 우버는 도착하고 해성은 떠나야 한다. 차를 타려고 한순간 "야!"라는 외침에 그들이 헤어졌던 12살의 모습으로 회귀한다. 그들은 실제로 낮에 이별했지만 지금은 밤의 풍경이다. 즉 밤의 뉴욕 골목에서 서울의 골목을 소환한 것이다. 아이들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24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해성을 떠나보낸 후 나영은 다시 순방향으로 걷는다. 한 번도 울지 않은 나영이 집으로 향해 걸으면서 울기 시작한다. 그렇게 걸으면서 24살을 거치고, 36살의 '노라'로 성장한다. 이토록 절절한 감정 속에서 노라는 가운데 문으로 들어가며 시간의 바다에서 항해를 멈추고 정박한다. 결국 서울의 골목에서부터 열리지 않던 가운데 문을 연 것은 노라였다. 영화는 마지막에서 해성이 탄 택시가 정방향으로 달리는 것으로 끝난다. 마침내 그도 시간의 바다에서 표류를 멈추고 다시 항해를 시작한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反)
만남에는 헤어짐이 정해져 있고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옴이 있다는 뜻이다. 이별은 필연적이다. 인연이 닿지 않아 상실의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낙담하지 말자. "다음 생에 다시 만나자."라는 해성의 말처럼 서로의 인연을 믿고 기다리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만날 때 웃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