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만큼 진실에서 멀어질 수 있는 영화 언어도 드물다.
제주 4.3 사건은 희미한 역사이다. 대부분 해방 직후 제주도민들이 억울하게 학살당하는 참극이 있었다고 개괄적으로 알고 있을 뿐, 구체적인 내막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교육 과정 교과서에서도 거의 언급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민간인 학살 사건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희미한 역사에 카메라로 빛을 비추는 영화가 있다.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의 김경만 감독은 군사재판에 회부돼 억울하게 형무소로 끌려간 수형인들의 사연을 담았다. 당시 끔찍한 역사를 겪은 다섯 할머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 영화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하지만 한 걸음씩 또박또박 한국의 은폐됐던 역사에 접근한다.
다큐멘터리는 다른 영화 장르와 다르게 짙은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현장의 실제성과 사실성을 담기 때문이다. 생생한 현장은 관객에게 좋은 설득력을 가진다. 하지만 사실성이 곧 '사실'을 담보하지 않는다. 현장의 영상을 담았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은 아니다. 사실은 촬영과 편집에 따라 순식간에 숨길 수 있다. 다큐멘터리가 사실을 담는다는 것은 환상이다. 다큐멘터리만큼 진실에서 멀어질 수 있는 영화 언어도 드물다.
기본적으로 모든 영화가 프로파간다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다만 소재와 이념을 다루는 방식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 많은 감독들이 영화라는 도구를 다루는 데 있어 그토록 의심하고 검토했다. 영화 중에서도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다룬다는 '착각' 위에 토대하기 때문에 프로파간다의 위험성이 더 높다. 어떤 다큐멘터리든 프로파간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에는 늘 고민이 따르기 마련이다. 감독이라면 이야기를 다루는 데 있어서 자신이 온전히 전달하는지 고민한다. 물론 현장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이 영화 예술의 미덕은 아니다. 영화라는 언어 속에서 재구성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가 더 중요하다.
결국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다. 언젠가부터 근현대사 실존 인물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문재인입니다>, <길 위에 김대중>부터 시작하여 <건국전쟁>에 이르기까지 모두 프로파간다의 위험성을 지닌다. 다큐멘터리를 가장한 프로파간다의 등장은 염치의 문제로 전환한다. 지나친 믿음은 염치를 희생한다.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도 제주 4.3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결코 프로파간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 영화도 역사의 지나친 믿음을 경계한다. 그래서 김경만 감독은 120여 명의 인터뷰를 담고도, 단 5명의 목소리만 활용한다. 영화는 사건 외부 인물의 내레이션을 끌어오기보단 직접적인 희생자의 목소리를 전한다.
5명의 할머니는 제주 4.3 사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자 역사의 입장이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양농옥 할머니의 경우 4.3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며 머리말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승만 이야기를 언급하며 깊이를 더한다. 박순석 할머니는 남로당 활동을 한 유일한 분이다. 제주 4.3 사건은 국가의 폭력이 자행된 학살이기도 하지만 저항 측면의 이야기도 중요하다. 반면 박춘옥 할머니는 산에 있던 무장대를 두려워한 분이다. 김묘생 할머니는 트라우마로 자기는 4.3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증언한다. 송순희 할머니 가족의 이야기는 4.3 사건이 과거에 끝나지 않고 현재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영화는 개인의 이야기 속에서 역사 전체를 길어낸다. 이 방식을 통해 역사의 입체적인 면을 전한다. 역사를 다각도로 바라보는 시선은 정답보다 질문을 남긴다.
"예술가의 역할은 질문을 던지고 빛을 비추는 것이지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말처럼 좋은 예술은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이 역할을 실천하고자 끊임없이 되묻고 고민한다.
역사의 끔찍한 비극을 영화 언어로 다루면 반드시 영화 윤리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영화가 역사의 비극을 그대로 재현해서 전해도 될까? 일단 비극을 재현한다면 그것이 사실인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영화라는 언어에 담긴 순간, 그때부터 사실과 거리가 멀어진다. 그렇다면 비극을 다루는 태도가 중요하다. 태도에 따라 영화 연출도 다르다. 만약 전쟁을 어떤 연출로 담느냐에 따라 태도는 뒤바뀐다. 영화 <핵소 고지>처럼 게임 같은 1인칭 시점 쇼트를 통해 선혈이 낭자한 장면을 담을 수도 있다. 그때 영화가 전쟁을 다루는 태도는 오락에 가깝다.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처럼 아름다운 풍광과 전쟁의 참상을 비교할 수도 있다. 그때 태도는 전쟁의 광기를 전하는 관찰자이다.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도 영화 윤리를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는 역사를 재현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영화는 그저 묵묵히 제주도의 풍경을 담을 뿐이다. 할머니들의 음성으로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풍경에 기록한다. 이 방식으로 제주도의 자연 풍경은 그 자체로 역사를 서술한다. 거대한 파도는 돌들을 덮치고, 해무는 그림자와 함께 산을 잠식한다. 형상을 드리우는 풍경은 4.3 사건이 얼마나 급격하게 제주도를 덮쳤는지 표현한다. 영화는 할머니들의 인터뷰를 담다가도 문득 카메라를 제주도로 향한다. 마치 시선을 돌리는 것 같은 카메라는 끔찍한 폭력을 조금이나마 덜어낸다. 그리고 관객의 상상에 맡길 뿐이다. 영화는 이렇게 피해자들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어쩌면 역사의 격류 속에서 휩쓸린 사람들에게 영화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태도일 것이다.
'그 크나큰 슬픔의 권능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바르게 다스려 주소서'
영화는 제주 4.3 희생자 북촌리 위령비의 문구로 시작한다. 무지와 무능, 이념의 광기 속에서 참혹한 역사를 자행했던 인간의 어리석음이 무척 무겁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제주도의 풍광은 사뭇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