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으로 치장된 아픔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기에 최적이다.
공포 영화만큼 감독의 실력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르가 있을까. 관객을 공포에 몰아넣는 것은 순전히 감독의 역량으로 결정 나기에, 호러 장르에서 감독의 연출은 무척 중요하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감독한 ‘피터 잭슨’의 시작이 스플래터 영화 <고무 인간의 최후>라는 것을 생각하면, 공포 영화는 신인 감독들의 좋은 발판이기도 하다. (예컨대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을 감독한 ‘제임스 완’ 감독도 출발은 그 유명한 <쏘우>였다.)
하지만 영화 역사가 오래된 만큼 공포 영화의 작법도 굳어졌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와 관객을 놀라게 하는 ‘점프 스케어’ 기법은 이제 너무 유명하여 관객이 어느 정도 익숙할 지경이다. 공포 영화 마니아들은 영화를 보는 도중 모든 점프 스케어 타이밍을 예측 가능할 것이다. 물론 점프 스케어 기법이 나쁜 것은 아니다. 잘 쓰면 관객에게 쉽게 공포감을 줄 수 있어 편리하다. 하지만 그만큼 연출에 고뇌가 느껴지지 않아 게으른 작법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오컬트 영화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유전>과 <미드 소마>를 시작으로 최근 <오멘: 저주의 시작>에 이르기까지 오컬트 영화의 활약은 꽤 유효하다. 단순히 공포감을 넘어서 인간의 추악한 면모가 뒤섞이기도 하고, 악의가 가득한 존재를 마주하기도 한다. 또한 ‘슬로우 번 호러(Slow Burn Horror)’를 도입하여 관객을 서서히 옥죄어 숨 막히게 한다.
그러니까 이제 단순히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만으로는 호러 영화의 역할을 다할 수 없다. 관객을 사로잡는 아이디어와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론이 필요하다. <악마와의 토크쇼>는 이를 잘 간파한 영리한 영화이다. ‘토크쇼’라는 아이디어와 공간이 관객에게 독특한 감상을 자아낸다.
영화 <악마와의 토크쇼>의 핵심은 시대상이다. 이 영화는 프롤로그 부분 내레이션을 통해 시간적 배경이 1970년대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1970년대 미국은 격동과 혼돈의 시대였다. 베트남전이 심화하여 반전 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났고, 오일쇼크가 발생하여 경제적 충격이 상당했다. 흑인과 여성 인권이 탄압 속에서 서서히 움 틔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화는 주인공 ‘잭 델로이’와 ‘올빼미 쇼’가 사회의 진실을 가린다는 것을 지적한다. 잭은 끔찍한 현실을 포장하거나 보지 못하게 하는 인물, 혹은 미디어의 대변인인 셈이다. 영화의 도입부가 내레이션을 통해 직접적으로 격동의 시대를 표현하지만, 토크쇼는 이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장막’으로 작동한다.
이 장막이 작동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자극적이고 타인의 아픔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토크쇼 조수에게 우스꽝스러운 역할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가학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잭은 폐암으로 죽어가는 자기 아내를 토크쇼에 출연시켜 사람들의 환심을 산다. 아름다움으로 치장된 아픔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기에 최적이다.
이처럼 시대상을 도입하여 이야기를 직조하고 호러 장르로 풀어나가는 시도는 신선하면서 흥미로운 몰입감을 제공한다. 필리포 형제의 영화 <톡 투 미>가 SNS와 챌린지라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현재 젊은 세대의 정신 건강 문제를 첨예하게 파고 들어간 것과 비슷하다. <악마와의 토크쇼>도 1970년대 미국의 시대상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며 미디어의 죄악을 비판한다. 영화는 마지막 하이라이트에서 최근 공포 영화와 다르게 고전적 향취가 물씬 풍기는 기법으로 폭주한다. 이 또한 영화가 1970년대 공포 영화의 걸작 <엑소시스트>나 <캐리>를 정신적으로 계승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악마와의 토크쇼>에서 또 영리한 점은 공간이다. 이 영화는 파운드 푸티지 장르로, 일종의 ‘찾아낸 영상’이라는 컨셉으로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한 느낌이 특징이다. 그 점에서 영화는 무대와 무대의 뒤쪽으로 공간을 분리한다. 그리고 화면비도 가변적으로 적용하여 이를 표현한다. ‘올빼미 쇼’가 진행 중일 때 영화는 아카데미 비율 1.33:1을 사용한다. 토크쇼가 끝나고 무대 뒤쪽 이야기는 시네마스코프 비율 2.35:1을 사용한다. 이를 통해 하나의 장소를 분리하여 관객에게 정보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이 영화의 장소는 토크쇼 무대를 벗어나지 않지만, 외화면의 정보와 상상을 통해 관객의 공포감을 자극한다. 동시에 관객의 위치를 무대 방청객으로 전환한다. 방청객이 된 관객은 단순히 보는 입장이 아닌 즐기는 입장이 된다. 토크쇼가 진행되는 순간 관객도 당시 사회와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시대상과 토크쇼라는 공간을 활용하는 <악마와의 토크쇼>는 분명 영리한 영화이다. 다만 이런 요소들이 형식적으로 흥미로운 설정으로만 작용한다는 점은 아쉽다. 잭은 신흥 종교 단체에 연루되어 있다는 소문이 떠도는데, 정황상 백인우월주의 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이 모티브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아내의 죽음에도 모종의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영화는 모든 것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은 채 잭을 처벌하며 마무리한다. 물론 영화가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지나치게 과묵한 영화는 관객에게 어리둥절한 감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