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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아웃 2>, 정확하게 사랑하기

"날 정확하게 사랑해 줘."

by 권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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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와 B는 같은 동아리 동기였다. 그들은 공강 시간이 같아 동아리실에서 주로 만나곤 했다. 학과는 달라도 정해진 시간에 A와 B는 그 공간에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암묵적 합의였다. 그들은 그 시간에 수업이 얼마나 이상한지 이야기했으며, 교수가 우리의 시간을 절대 고려하지 않는다고 떠들었다. 말조심하지 않는 학과 동기부터 주접떠는 선배까지, 그들은 적정한 대화를 나누었다.


적정한 대화란 무엇일까.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대화일까. 그들은 대화를 나누더라도 마음속 깊이 있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서로 기분 나빠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 그 거리감이 오히려 그들을 엮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학교 근처 공원을 걸었다. 그 공원에 폐쇄한 철도가 있었다. 그 철도를 걸으면 늘 앞서가는 것은 B였다. A는 뒤에서 바라볼 뿐 옆에 서지 않았다. B는 철도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었다. A가 옆에 있었으면 균형을 잡지 못한 B의 손을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뒤에 있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변명이 생겼다. A는 아직까지 왜 B를 뒤에서 바라봤는지 모른다.


어느 날, A와 B는 영화관으로 향했다. 무슨 영화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다 영화의 주인공 소년이 하늘나라로 떠난 할머니에게 마지막 말을 전하였다. B가 울기 시작했다. 옆에 있는 사람은 간신히 알아챌 수 있는 흐느낌. A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손을 잡아야 하나. 괜찮냐고 물어볼까. 아니면 가만히 놔둬야 하나. 행동할 용기가 없던 A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A는 이날을 두고두고 생각했다. 과연 어떻게 해야 했을까. 정답은 무엇이었을까. A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하며 정답을 궁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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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는 관객과 함께 시간을 공유한다. <인사이드 아웃 2>는 전작의 개봉 이후 무려 9년 만의 속편이다. 9년의 시간 동안 관객 또한 그 시간을 고스란히 겪었다. 라일리가 성장한 만큼 관객도 성장했다.


<인사이드 아웃 1>은 슬픔이 기쁨에게 묻는 영화다. 정말 나 없이 기쁠 수 있냐고. 결국 영화는 '기쁨'의 머리색이 '슬픔'의 파란색인 것처럼 그들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한다.


<인사이드 아웃 2>는 새로운 감정이 등장한다는 측면을 제외하곤 전작과 크게 다른 것은 없다. 새로움보단 익숙함을 택했다. 영화는 세계관을 확장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펼치지 않는다. 라일리가 사춘기를 맞이하며 등장하는 새로운 감정들로 자아에 관한 이야기를 펼친다. 그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불안'이다.


미래는 통제할 수 없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고 할 때 불안은 탄생한다. 나의 서투른 행동을 숨기고 뭐든지 잘하고 싶다. 서투른 것이 곧 신경을 덜 쓴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황경신 작가의 말처럼 서툴고 불안하다는 것은 진심의 증거이다. 진심이었기에 모든 것을 고려하고 마음을 다한다. 소중하지 않다면 그토록 마음을 기울일 이유가 없다.


불안은 그렇게 싹튼다. <인사이드 아웃 2>에서 불안이 등장하기 등장한 시점은 라일리가 자기 존재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선택하는 순간이다. 라일리는 존재 이유를 친구에게서 찾을 것인지, 새로운 꿈에서 찾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결국 라일리는 자신이 존경하는 하키 팀에서 가치를 찾으려고 한다. 그 과정 속에서 라일리는 늘 망설이고 비틀거리고 안절부절못한다. '불안'이가 라일리의 감정을 지배하기 시작한 순간, 행동은 계산적이라기보단 충동적이다.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해 코치의 평가 노트를 보는 행동이 이를 증명한다. 불안은 자신이 모든 상황과 변수를 고려하며 계산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지극히 충동적이다.


걷잡을 수 없이 움직이는 불안이를 멈출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불안이는 계속 말하고 있지 않았을까.


"날 정확하게 사랑해 줘."


장승리 시인의 시 「말」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불안이가 영화 내내 하고 있는 말을 표현해 본다. 영화에서 불안이는 누군가가 자신을 껴안아주길 바란다. 누군가 자신을 정확하게 사랑해 줄 것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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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A는 정확하게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B가 울음을 터트린 이후 A는 자꾸 B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른다. A의 마음에는 B가 자리 잡고 말았다. A는 이 감정을 명확히 정의 내리지 못했다. 그저 사랑이 A의 마음속에 기생하여 몸을 키우고 만 것이다. 그 사실을 확인한 것은 영화관이었을 것이다.


그 시간 이후로 A는 B와 함께하는 시간이 어색했다. 어색하지 않던 시간은 이제 없었다. 문제는 이것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를 사랑하는 되는 일은 드물다는 것. 대개는 먼저 사랑을 시작하는 한 사람이 있고, 그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를 요구받는 다른 한 사람이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확신이었다. A는 B를 향한 확신을 찾아야 했다. 확신은 근거가 필요하다. 나머지 시간은 근거를 찾는 시간이었다. '알랭 드 보통'은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주인공은 연인과 자신이 만날 사건이 989.727분의 1이라는 확률을 계산하고 흡족한다. 그리고 다시 의문에 빠진다.


"그녀가 정말 멋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A의 의문도 비슷했다. B 같은 사람이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문제는 확신의 근거를 찾으려 할수록 사랑은 커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커지는 사랑만큼이나 흐르는 시간은 그들 사이에 먼지를 쌓았다. 쌓인 먼지는 관계를 희미하게 했다. 사랑은 시간의 물결 속에서 마모된다.


A는 매일 밤 이불을 뒤척여도 확신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확신은 애초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A는 확신을 찾지 못해 망설였다. 가끔 A는 돌이켜 생각한다. 과연 모든 걸 알았다고 달라졌을까. 불안하고 서툴고 비틀거리고 망설인 그 나날들이 조금은 편안했을까. 현재의 A가 과거의 A를 만난다면 과연 할 말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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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른이 된 라일리가 사춘기 시절의 라일리를 만난다면 할 말은 무엇일까.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일에 화를 내고 너무 많은 것을 책임지려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그저 껴안아주지 않을까. 결국 이 모든 과정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인사이드 아웃 2>은 어른의 조건을 제시한다. 평생 어린이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필연적으로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는 기쁨이 줄어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쁨이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쁜 기억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찾을 수가 없다. 기쁨이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선택한 방식은 기쁜 기억만 남기고 나쁜 기억은 잊는 것이다. 결국 기쁨이는 다시 복귀하기 위해 그 모든 기억을 가지고 돌아간다.


기쁨이 줄어드는 것은 곧 눈치를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을 염두에 둘수록 자신을 향한 기쁨은 줄어든다. 하지만 눈치를 살핀다는 것이 곧 슬픔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은 기필코 타인을 외면하지 않고 살피는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라일리 또한 친구에게 시선을 향하기 시작한 순간 불안은 안정되었다.


영화는 불안은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 라일리의 부모님 감정 속에서도 불안은 존재한다. 불안은 피할 수 없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지만 불필요한 감정은 아니다. 라일리의 자아가 최종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기존 감정들이 자아를 형성하는 방식은 좋은 기억을 남기고 나쁜 기억을 잊는 것이다. 그것은 살아가는 방식이지만, 곧 자아를 형성하는 방식은 아니다. 결국 라일리의 자아는 모든 기억들 속에서 탄생한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좋은 기억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나를 스쳐 지나간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 그토록 서툴고 불안한 시간마저 나의 모든 것이다. 결국 어른이 된다는 건 나의 불안한 마음과 불안전한 모습마저 있는 힘껏 껴안는 것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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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어른이 되어도 그날의 정답을 찾지 못했다. 결국 시간의 더께 속에서 B와 멀어지고, 마음을 전하지 못한 자기를 탓할 뿐이었다. 시간이 훌쩍 지나 커진 사랑이 작아지고 기억이 희미해졌을 때, 공원의 철도에서 A와 B가 다시 만난 건 어떤 우연이었을까. 이 사건은 어느 정도의 확률일까. 하지만 A는 이제 계산을 멈추기로 했다. 그저 과거의 마음 위에 쌓인 먼지를 털기로 했다.


그들은 오랜만에 다시 철도 위를 걸었다. A는 B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리고 각자의 철도 위에 올라가 위태로운 발걸음을 반복했다.


웬일이야. 맨날 뒤에만 있더니.


그땐 네가 너무 빨랐어.


근데 난 말이야. 네가 뒤에 있어서 좋았어. 모두가 나의 앞을 보더라도 한 사람쯤은 나의 뒤통수를 봤으면 했으니까. 그 영화처럼 말이야.


A는 영화관의 기억을 떠올렸다. B가 울음을 터트렸던 순간을 말하려는 찰나, B가 먼저 물었다.


아, 그 영화하니까 말인데, 그때 왜 아무것도 안 했어?


네가 울었을 때?


응, 그때.


그냥...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잘 모르겠어. 내가 그때 어떻게 해주길 바랐어?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네가 그때 가만히 있어줘서 고마웠어. 그건 확실해. 덕분에 온전히 울 수 있었으니까.


B는 생각보다 잘 살았다. 야근이 다소 많지만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좋은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 약혼까지 했고 곧 결혼식 날짜를 정한다고 하였다. A는 진심으로 축하를 건넸다. 그리고 마음속 응어리가 녹았다. 그토록 정답을 찾아 헤매던 시간이 끝내 무의미하지 않았으니까. 비로소 A는 과거의 자신을 껴안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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