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에요.
Z씨, 그거 아시나요? 어떤 영화는 편지를 쓰게 한다는 거.
김혜리 영화 평론가는 영화 <늑대아이>를 보고 쓴 글에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며 처음에 이렇게 말해요.
“모든 영화는 각기 다른 종류의 글을 쓰고 싶게 해.”
처음에는 믿지 않았어요. 저는 영화를 보고 격문이나 기도문 같은 것을 적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당신에게 편지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극장에 오직 우리뿐이어서 실컷 떠들 수 있었다면,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가득했거든요.
영화는 거대한 존재를 묘사하겠다는 야심을 내세우지 않아요. 그저 소시민의 일상을 담아내겠다고 말하죠. 영화의 첫 장면은 떠올려봐요. 도쿄의 전경을 보여주고, 서서히 확대하여 히라야마씨의 집을 보여주다가, 빗자루가 마당을 쓰는 사각사각 소리를 따라서 그의 귀를 클로즈업하죠. 이 장면은 히라야마씨가 거대한 도시의 소시민인 것을 강조해요. 그는 조용하지만 친근하죠.
그래서 영화는 그의 일상을 현란하게 담지 않아요. 카메라는 묵묵히 그를 따라갈 뿐이죠. 치열하면 치열한 대로, 여유로우면 여유로운 대로. 영화는 비슷한 일상에서 매번 다르게 다가오는 감상을 포착해요. 다른 영화처럼 넓은 비율의 스크린도 사용하지 않아요. 1.33:1에 다소 좁은 비율의 스크린에서 영화는 최대한 정갈한 화면을 유지하죠. 이것은 곧 영화의 태도이기도 해요. 이 영화가 성실함을 담아내는 경건한 노동 영화이면서, 흡사 수행하는 종교인을 보는 듯한 구도 영화이기도 한 이유에요.
이 영화로 시를 쓴다면 구절과 구절 사이에 행간이 무척 넓을 거예요. 영화는 히라야마씨의 일상을 따라가며 반복과 변주를 통해 시적 운율을 만들어요. 그런데 그에게 극적인 사건과 사연을 부여하지 않아요. 보통 영화라면 사건을 촘촘히 구성하여 빽빽한 밀도를 만들 텐데, 이 영화는 적당한 여백을 만들고 있어요. 여백은 곧 공간이에요. 히라야마씨는 비슷한 일상에서 변화가 찾아오더라도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여백에 채워 넣어요. 같은 장소에 다른 인물이 있거나, 같은 인물이 다른 장소에 있어도, 그 모든 변화들이 물결처럼 다가와 마음을 채우죠. 결국 영화에서 히라야마씨의 과거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저 삶을 함축한 하루하루를 묘사하죠. 영화는 그렇게 하루하루가 모여 삶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영화에서 도쿄 스카이트리가 반복된다는 걸 눈치챘나요? 스카이트리는 히라야마씨가 음악을 시작하는 지점으로 자리매김해요. 차를 타고 출근하다가 스카이트리가 보이면 바로 음악이 재생되죠. 스카이트리는 도쿄를 상징하는 타워에요. 영화는 스카이트리를 반복해서 보여주고 영화의 공간이 도쿄인 것을 강조해요. 그러니까 히라야마씨가 일상을 누비는 곳은 일본에서 가장 바쁜 곳이죠. 우리는 휴식과 행복에 관한 공간을 언급할 때 유유자적한 시골을 언급해요. 하지만 영화는 대도시에서도 일상의 행복은 가능하다고 믿어요. 굳건히 버틸 것 같았던 스카이트리가 물결에서 일렁이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유연한 태도라고 영화는 말해요. 한밤중에 히라야마씨가 그림자밟기 놀이를 하면서 했던 말을 기억해요. 변화할 것이라고 믿는 것. 실제로 변하지 않아도, 변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 위태로운 삶을 지탱하는 방법이겠죠.
꿈은 설계할 수 있어도 삶은 설계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기쁜 일이 있으면 반드시 나쁜 일도 있는 법이죠. 히라야마씨는 길을 잃은 아이를 챙겨주었지만 정작 아이의 어머니에게 감사 인사를 받지 못하죠. 하지만 뒤돌아 손을 흔드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그는 행복을 느껴요. 이처럼 삶에서 명과 암은 공존하는 관계에요. 하지만 늘 힘들고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더욱 커 보이겠죠. 그 힘든 시간이 당신의 어깨를 짓누르고 기쁨을 걷어낸다고 생각하니 슬퍼지기도 해요.
저는 비현실적이더라도 히라야마씨가 실천한 삶의 태도를 말하고 싶어요. 그는 점심을 먹고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사진기로 찍어요. 요즘 시대에 그는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인화하는 과정까지 거치죠. 그리고 집에 와서 확인하는데 잘 안 나온 사진은 찢어버려요. 그토록 지난한 과정을 통해 얻은 사진이건만 그는 망설이지 않아요. 그리고 잘 나온 사진들만 보관해요. 이 행위는 영화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삶의 태도라고 생각해요.
‘기쁜 순간은 집중하고, 나쁜 순간은 흘려보내기.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결국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에요. 행복은 반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완벽한 하루는 굉장한 일이 생기는 날이 아니라, 목걸이를 만들 듯 소박하고 작은 즐거움이 하나하나 조용히 이어지는 날이겠죠.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서 아름다운 구름을 볼 수도 있고, 노을을 바라볼 때 흘러나온 노래가 충만한 순간을 선사할 수도 있어요. 저는 그렇게 당신의 하루하루가 조금씩 나아지기를 간절히 소망해요. 나뭇잎 사이의 햇살을 사진으로 모아 삶을 만드는 히라야마씨처럼 말이에요.
참고
※ 김혜리 영화 평론가, [신 전영객잔] 그러니까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고, 씨네21
※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에리번리의 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