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말들) 김신지 『제철행복』
“안 하던 일을 하기가 어려울 땐 작게 해 본다.”(p.129)
나이가 들면 자연이 우리를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걸까? 비슷한 또래의 지인들이 주말농장을 하겠다며 여기저기 땅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이미 땅을 산 지인은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편과 오전 2-3시간을 밭에서 보낸다면서 아무 생각 없이 풀을 뽑고 있는 시간이 정말 편안하다고 한다. 흙을 만지면서 편안하다니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저 먼 옛날 농경 사회의 DNA가 우리 몸속에 남아있는 걸까?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오늘날 우리의 뇌와 마음은 수렵채집 생활에 적응해 있다는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장에 공감하며 이렇게 말한다. “3만 년 전 전형적인 수렵 채집인이 손에 넣을 수 있는 달콤한 식품은 오직 하나, 잘 익은 과일뿐이었다. 무화과가 잔뜩 열린 나무를 발견한 석기시대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은 그 자리에서 최대한 먹어치우는 것이다. 고칼로리 식품을 탐하는 본능은 우리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오늘날 우리는 고층 아파트에 살며 냉장고에 먹을 것이 가득하지만, 우리의 DNA는 여전히 아프리카 초원을 누빈다.” 사피엔스는 존속기간의 거의 대부분을 수렵채집인으로 살았고, 이후 1만 년 동안은 농부와 목축인으로 살았다. 도시 노동자나 사무직 직원으로 산 지는 2백 년밖에 되지 않는다. 수렵채집인의 본능이 우리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면 농경 생활을 했던 유전자도 몸속 어딘가에 새겨져 있으리라. 그래서 고층 아파트에 살지만, 우리 DNA가 여전히 논과 밭을 향해 있는 것 아닐까? 아니 자연을 향해 있는 것 아닐까? 궁금증에서 시작된 내 나름의 추측일 뿐이다. 질문이 던져졌으니 언젠간 제대로 된 답을 구할 수 있으리라.
나 역시 전원주택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 “아파트에 둥둥 떠 있다 죽기는 싫어요. 땅을 밟고 살다 죽고 싶어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이런 모습의 나를 꿈꾸지 않았을까 싶다. ‘텃밭을 일구면서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사는 나’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마음 한편에는 항상 자연과 어긋나 있는 듯한, 자연스럽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전원주택에서 산다면 이런 마음이 어느 정도는 해소될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은 마음일 뿐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언제 실현될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하염없이 그날만을 기다리기엔 지금의 삶도 중요하기에 나만의 방법을 찾기로 했다. 텃밭에서가 아닌 내 집, 내 아파트에서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아보기로 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없다면 시골에 가서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나를 더 부채질했다. 올 한 해 절기에 맞춰 살아보기로 했다.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의 통나무집에서 의도적으로 생을 살았듯 내 집, 내 아파트에서 의도적으로 24 절기를 촘촘히 살아보기로 했다.
제철 음식도 잘 챙겨 먹지 않는 내가 한 달에 두 번 있는 절기를 꼬박꼬박 챙기며 산다는 건 분명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빛의 속도로 지나가는 이 시기에 ‘망종’인 오늘의 바깥은 어떠한지 의도적으로 쳐다보고 해야 할 일을 챙기는 건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루틴으로 이루어진 일상 중간중간 틈을 내야 하는 일이고 예기치 않게 던져지는 인생의 숙제 속에서도 까먹지 않고 신경 써야만 챙길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24 절기에 따라 1년을 살기로 했다는 건 눈앞의 계절을, 자연을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이자 자연에 가까워지고 싶다는 원초적인 바람이다. 본능적으로 자연에 끌리는 이 시간을 나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작은 선언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일상에 치여 다 챙기지 못하고 지나갈 수도 있다. 집채만 한 인생의 파도가 덮쳐와 절기를 챙긴다는 게 사치스러울 수 있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도 인생의 큰 숙제 하나 때문에 마음이 시끌벅적 난리브루스 중이긴 하다. 하지만 인생이 뭐 내 뜻대로 흐를 리 없으니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따로 분리해 생각하려 한다. 일상과 절기, 두 트랙으로 한 해를 보내려 한다. 두 개의 강물로 흐를 1년. 처음엔 일상과 절기 두 갈래로 따로 흐르겠지만 어느 순간 조금씩 교집합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점점 자연과 가까워지는 내가 기대된다. 24 절기를 촘촘히 살아낸 1년 후의 내가 기대된다.
“안 하던 일을 하기가 어려울 땐 작게 해 본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크게 시작하지는 않겠다. 6월에는 ‘망종’과 ‘하지’가 있다. 오늘은 ‘망종’이다. 우리가 봄을 3월 5일 하루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오늘 ‘망종’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오늘만 ‘망종’인 게 아니라 21일인 ‘하지’가 될 까지를 망종이라고 본다고 한다. 오늘은 단지 ‘망종’의 시작점, 즉 절기에 들어서는 날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사전에서 찾아보니 “망종이란 벼, 보리 같이 수염이 있는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시기”라고 나온다.
책을 반납하기 위해 도서관에 갈 일이 있는데 차를 타고 가면서 모가 심어져 있는지 논을 한번 '쓰-윽’ 쳐다봐야겠다. 작가 김신지는 망종 무렵엔 장마가 오기 전이니 부지런히 바깥을 즐겨야 한다고 말한다. 망종엔 바깥이 제철이란다. 오늘은 그녀 말대로 바깥을 즐겨야겠다. 탁구장으로 걸어가면서 길가에 핀 장미를 보기 위해 잠시 멈춰 서야겠다. 무슨 색 장미였더라. 운동 후에는 지인과 동네 벤치에 앉아 달을 벗 삼아 편의점 맥주도 한 캔 마시고. 이렇듯 소소하게 시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