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가장 거칠고 정없는 소리. 빨갛고 큼지막한 몸통에 두껍고 주름이 많은 회색 줄까지, 거대한 빨간 곤충같이 생겨서는 뭐 하나 예쁜 구석이 없는 진공청소기다.
전화벨 소리까지 잡아먹고 온 집안을 시끄러운 소음통처럼 만드는데, 거기다 다른 곳을 청소하려고 덜커덕! 하면서 문지방을 넘거나 방향을 트는 소리는 또 얼마나 크고 묵직한지. 엄마에게도 저 청소기가 무거워보인다.
청소하려 열어 놓은 창문들 틈으로 겨울 바람이 차갑게 내복을 파고든다. 나한테는 편안하지 않은 시간이다. 내 피부는 온도에 대항해 경계심을 바짝 세우고 있다. 몸에 털이 곤두서고 팔에 소름이 돋아있는 것이 그 증거다. 귀는 고통스러워하고 온몸의 근육들은 소리와 차가운 온도에 대항해 뻣뻣하게 긴장해 있는 것이 꼭 전투에 대비하는 것 같다. 저놈의 청소기 소리가 아니었다면 그래도 가볍고 상쾌한 겨울 공기가 반가운 오전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코끝이 바알갛게 익더라도 상쾌한 공기가 내 온몸까지 환기해주는 것 같아서, 겨울 공기는 그만의 매력이 있다.
이럴 때는 안방에 있는 보일러와 가까운 작은 칸 안에 담요를 깔아두고 그 안에 쏙 들어가 있거나, 동생이 엄마 아빠를 졸라서 산 푹신푹신한 숫자 매트로 울타리를 만들어 나만의 요새를 만들곤 하는데, 오늘은 그렇게까지 번거로울 필요가 없겠다. 어제 갓 세탁한 침대 시트가 널어진 큰 빨래 건조대가 있으니까! 하얀 시트가 장식처럼 늘어진 건조대 아래 공간으로 기어 들어갔다.
깨끗하게 빨아서 보송보송 잘 말려진 시트, 오전의 햇빛을 받아 더 빛나 보이는 하얀 색감, 나를 보호해주는 듯 적당히 늘어진 길이까지 아늑한 요새로 딱이다. 혼자 있을 순 없지. 동생도 아마 겨울철의 청소시간이 싫을 거다. 동생을 데리고 오려다가 문득 냉장고에 시선이 멈춘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초코 우유가 저기 있는데! 초코우유 중에서도 제일 맛있는, 토끼 캐릭터가 그려진 초코우유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초코우유를 손에 든 채 동생을 데리고 시트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빨대를 꽂고 달콤한 초코맛을 한 입 가득 들이켰다.
햐!
살 것 같은 게, 겨울의 청소시간을 견디기 딱이다!
초코우유는 딱 하나 뿐인데 옆에서 동생이 계속 내 손에 있는 우유곽을 움켜쥔다.전에 엄마가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동생한테는 '네 거, 내 거'의 개념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동생은 항상 마음에 드는 걸 힘으로 빼앗으려고 든다.
부엌에서, 아빠 차 뒷자리에서, 마트에서, 먹고 마시던 걸 동생이 탐내면 나는 대부분 내어줬다.
좀 버티면 동생은 슬슬 짜증에 시동을 건다.
이마와 눈썹부터 시작해 온 얼굴이 찌푸려지기 시작하고, 동생의 입에서는 '히이이-' 하는 짜증소리가 크게 새어나오면서, 온 몸을 뻗대고 발목을 꺾기 시작하면 곧 대재앙이 터질 징조처럼 우리 집의 모든 식구들이 긴장한다. 그게 싫어서 내어준 적이 많았다.
그 소리가 힘들어서,
내 몸까지 스트레스로 바짝 긴장하게 해서,
나를 둘러싼 분위기가 버거워서.
별로 화가 나지는 않았다. 내가 같이 자라면서 본 동생은 늘 그런 반응을 보이는 아이였고, 그래서, 그냥.
나한테 동생은 바깥 세상이 말하는 것처럼 '어딘가 크게 잘못된 애'라기보다는 내가 관찰한 모습들의 모음에 가까웠다.
그리고 엄마아빠는 대부분 나에게 양보하라고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 아빠가 난처함을 느끼는 모습, 동생을 말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봤다. 동생에게 '다른 사람의 것을 함부로 빼앗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하는 사투에 가까운 모습을 지켜보았다. 덕분에 나는 동생에게 늘상 뭔가를 주어야하는 헌신적이지만 불쌍한 누나이기보다 동생의 입장을 이해하고 양보하는 누나로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초코우유는 다르지!
겨울 아침의 청소시간에 먹는 초코우유가 얼마나 소중한데... 오늘은 쉽게 양보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오늘같은 순간이 또 올지도 모르니까, 동생에게 뭔가를 알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예를 들어 눈 앞에 있는 이 초코우유는 <같이 먹는 거> 라는 걸 말이다. 그동안은 내 거 아니면 동생 거였지만, 이 초코우유는 '우리 거'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