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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Nov 22. 2024

친절이면 충분하다


주문을 받는 바리스타의 표정이, 없다.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은 ‘사무적’이라고 해야 맞다. 그의 말투와 억양에는 정형화된 친절함이 묻어난다. 말과 표정의 간격이 너무 멀어서 괴리감이 느껴진다. 이런 경우 많은 손님들은 불친절하다고 느낀다. 정말 불친절한 것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불친절한 것이 아니라 친절하지 않을 뿐이다. 불친절한 매장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친절하지 않은 것이고, 몇몇이 친절하다.  


잠시 카페 일을 쉬는 동안 가장 아쉬웠던 점은 ‘더 친절할 수 있었는데’ 하는 것이었다. 나름 스스로를 친절하다고 여겼고, 이제는 어떤 손님에게도 웃으며 응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뒤돌아보니 아홉 번의 친절보다 한 번의 친절하지 않음이 후회가 됐다. 그래서, 후회 없이 친절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손님들이 반가워 아는 체를 했다. 대부분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궁금했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반가운 마음에 오랜만에 뵙는다, 잘 지내셨냐고 물었더니, 뭘 그리 친한 사이인 양 묻냐는 듯한 말투와 표정으로 경계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순간 움찔했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순간 친밀은 친절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들과 친밀한 관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친밀한 관계는 단골로 이어진다고 믿었다. 모든 고객을 다 단골로 만들 수는 없지만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고 싶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여기서 의미하는 친밀은 친구 같은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닌, 간단한 안부 정도만이라도 물을 수 있는 친밀을 말한다. 


왜 친밀한 관계를 만드려고 했을까? 친절은 고객이 카페를 나갈 때 기분 좋게 하는 힘이라면, 친밀은 카페를 한 번 더 오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손님이 친밀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주 최소한의 친밀이라 하더라도, 심지어 단골이라 하더라도, 그 정도까지 바라지는 않는 분들도 계셨다. 


친절은 태도의 문제라면, 친밀은 관계의 문제다. 친절은 일방이어도 성립 가능한 문제라면, 친밀은 쌍방의 문제다. 모든 사람과 친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수는 있다. 친밀하지 않아도 단골은 카페를 찾아오지만, 친절하지 않으면 단골이라도 카페를 찾아오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친절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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