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로운 소비를 위한 한걸음 내딛기
완전한 비건 한 명보다 불완전한 비건 한 명이 더 가치로운 사회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요즘 들어 동물 및 기후 보호, 개인의 건강 혹은 종교적인 영향과 같이 다양한 이유로 많은 이들은 비거니즘에 용기를 내고 채식주의를 선호한다. 나 역시 건강상의 이유로 상황에 따라 적당한 육식을 하고, 채식을 지향하는 '플렉시테리언'으로 전향한 이래 비거니즘의 세계에 스며들고 있다.
동시대를 살아감에 있어 어느정도 채식에 대한 인식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부터 말해보자면, 채식은 사람을 지킨다. 2015년 세계보건기구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등의 육류를 발암물질로 정했다. 즉, 과한 육류 섭취는 암, 당뇨 및 고혈압과 같은 생활습관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아울러 채식은 공장식 축산을 줄인다. 공장식 축산에서는 동물들이 자유로이 뛰어놀지 못하며 공장 속에 갇혀있는 한 위생관리 역시 어렵다. 이 때문에 화학물질이 가득한 항생제와 살충제를 이용해 공장을 관리한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이 화학물질을 섭취하게 되는 셈이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동물들이 갇힌 공장의 축산업이 줄면, 자연스럽게 전염병도 줄테니 일석이조다.
채식은 사람을 지키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위에서 숱하게 언급한 바가 있는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좁은 공간에서 하늘 한 번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동물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다. 축산업은 환경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데, 축산업으로 인해 생기는 온실가스량은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무려 18%에 다다른다. 축산업을 위해서 필요한 물, 땅 그리고 사료도 어마무시한데, 채식을 실천한다면 자원의 양은 줄이며 효율은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다.
비건은 공부할수록 더 부지런해지며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느낌이 든다. 어떻게 채식으로만 이렇게 고소한 맛을 낼 수 있는 걸까, 놀라울 때도 많다. 오늘은 비건에 대한 흥미를 키워나가게 되었던 네 곳의 비건 레스토랑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연찮게도 모두 해방촌에 위치해있다.
녹사평역 2번 출구를 나와 쭉 걷다 보면 해방촌이 시작되는 입구와 함께 저 멀리 우뚝 솟아있는 남산타워가 보인다. 해방촌은 이태원과 사이좋게 도로 하나를 두고 마주한다.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이태원 덕에 해방촌 길거리에서는 일상 속 비건을 찾는 사람들을 쉬이 볼 수 있다. 해방촌 오거리가 위치한 언덕 위를 올라가기 전 그 길가에 내놓은 테이블에서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이국적인 느낌에 마치 외국에 있는 느낌이 든다.
먼저 소개할 공간은 찰리스 그로서리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건스페이스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었는데, 지금은 약간의 논비건 제품들을 함께 판매하며 상호명을 '찰리스 그로서리'로 바뀌었다. 다양한 비건 제품을 파는 식료품점은 흔치 않아 이런 공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진열장에 빼곡히 채워져 있는 알록달록한 외국 식료품들은 우리의 눈도 즐겁게 하니, 분명히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길을 쭉 따라 걷다 보면 끝자락 건물 코너에 베제투스 비건 레스토랑이 위치한다. 내가 처음 비건을 접한 곳이자, 접한 이래 5번은 가본 듯한 음식점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식물들이 파릇파릇 곳곳에 위치한 덕에 마치 숲 속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베제투스에선 시그니처 메뉴인 베제투스 버거를 먹어보아야 한다. 유기농 버거 번에 렌틸콩으로 만들어낸 패티, 다양한 채소들로 어우러진 건강한 비건 버거를 맛볼 수 있다. 육류 소비를 지양하는 비건 식당에서 무려 콩으로 만들어낸 고기라니!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이게 콩으로 만들어진 음식이라고?"라는 멘트와 함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질 것이라고 장담한다.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도 이런 식감과 맛을 낼 수 있음에 신기함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 이 또한 비건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버거 사이드 메뉴로는 샐러드와 감자튀김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나는 주로 두툼하게 잘린 감자튀김을 고르는데, 스모키한 향이 강하게 나면서도 담백한 맛이 좋아 자주 찾는다.
사이드 메뉴로는 팔라펠을 추천한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든지 흔하게 접해볼 수 있는 음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19살 수험생 시절, 제2 외국어로 아랍어를 공부하며 아랍 문화 파트에 대해 공부했던 적이 있다. 그때부터 현재 대학에서 와서까지도 중동 지역 언어를 공부하고 있어 팔라펠이라는 중동 음식에 대해서는 익히 들은 바가 있다. 그때 처음 알게 된 음식이다. 팔라펠은 병아리콩을 불려 향신료와 각종 재료를 넣고 섞어 크로켓 형태로 만들어진다. 이론으로만 익히 들었던 갓 튀겨져 나온 따뜻한 팔라펠은 '겉바속촉' 그 자체. 바삭하면서도 안쪽은 촉촉한 것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맛이다. 지금도 종종 그 맛이 기억나 냉동으로 된 팔라펠을 주문해 집에서 데워먹곤 한다.
다음으로 소개할 비건 레스토랑은 몽크스델리이다. 몽크스델리와 베제투스는 맞닿아 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일만큼 가깝다. 둘 다 맛이 좋아 비건식이 끌리는 날에는 두 식당 기로 앞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곤 한다. 다만 몽크스델리는 골목 안쪽에 위치하며 공간이 많이 협소하다. 나는 그래서 몽크스델리를 '숨은 찐맛집'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작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찾아와 준 손님들을 위해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녹인 음식을 내어주는 곳이다.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하여 가끔 귀여운 강아지들을 마주할 수 있다.
몽크스델리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들깨투움바파스타다. 꾸덕하면서도 전혀 느끼하지 않은 매콤달콤한 들깨 소스 맛이 일품이다. 비건을 처음 접해보는 지인들과 종종 들리곤 하는데, 그들은 어떻게 식물성 재료로 이런 맛을 낼 수 있냐며 남은 소스를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는다. 풍부하게 들어있는 브로콜리와 버섯과 같은 채소도 소스와 잘 어우러져 건강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몽크스델리에서 접해본 다른 비건 음식으로는 두부 강정 버거와 오렌지 치킨 라이스가 있다. 베제투스는 100% 콩을 갈아 햄버거 패티를 만든 느낌이었다면, 몽크스 델리는 고기를 섞은 느낌이 들긴 했다. 으스러지는 특유의 콩패티 식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달까. 오렌지 치킨 라이스의 소스와 감자튀김도 속세의 맛이 느껴질만큼 짭조름했다. 결론은, 내 입맛에 맞고 또 그만큼 맛있었다는 얘기다... :)
바이두부는 해방촌 언덕에 위치해 있다. 용산 02번 마을버스를 타고 해방촌 오거리에서 내려 아주 조금 걷다 보면 바이두부를 볼 수 있다. 봄에 한 번 지인과 가봤던 식당인데, 앙증맞은 인테리어가 따듯한 날씨와 잘 어울리는 그런 곳이었다.
바이두부는 지구와 사람, 동물을 사랑하는 가치 지향 아래 일상 속에서 그 사랑을 실천하고자 한다. 그 실천은 우리가 사용하는 인테리어와 먹을 그릇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폐자재를 활용한 가구를 사용하고, 플라스틱 사용을 최소화하고자 코코넛 껍질로 만든 그릇을 사용한다. 벽에 붙어있던 환경 보호 관련 잡지 스크랩들과 색연필로 그려진 귀여운 채소 그림들 역시 인상적이었는데, 아기자기함에 넋을 놓고 있다 보니 시킨 음식이 나왔던 기억이 난다.
이때 시켰던 것은 시그니처 메뉴인 브로콜리 두부강정으로, 건강하고 담백한 맛이 매력이었다. 푸짐한 양 덕분에 든든하게 먹을 수 있었던 건강한 한끼였다. 버려진 코코넛 껍질을 접착제로 붙여 다소 오뚝거리던 그릇은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전부 우리에게 돌아올 '환경' 을 위해서니까, 이러한 작은 불편함 정도는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어야한다.
해방촌에서는 이렇듯 동네의 특색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이 발자취를 따라 환경을 생각하고 건강도 챙길 수 있는 가치로운 소비를 위한 한 걸음을 해방촌에서 내디뎌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비거니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갖추고 있으나 시도를 꺼려하는 사람들에게도 고민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다지 보편화가 되어있지 않아서인지, 일주일에 한 번은 비건에 도전해보고자 하면 꼭 다른 식단보다 경제적인 부담이 커지는 느낌이 든다. 어쨌든 일반 재료의 대체재를 사용해야 하고, 그 대체재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만 구성되어있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만 경제적인 이유로 타협을 하게 된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효율적으로 지속 가능성을 가지고 이 의식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 늘상 고민한다. 나의 무지에서 오는 걱정은 아닐지 몰라 계속해서 찾아보고 공부하게 되는 것도 있다. 어쨌든 차분히 내딛는 발걸음 한 자국 한 자국이 언젠가는 변화를 보여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