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도시 보드룸 여행
훌쩍 떠난 작은 지중해 도시에서 배낭을 꼬옥 매고 들어갔던 나름 유명한 패스츄리점. 그 전날부터 골목에 놓인 이 지역 명물점을 기웃거리던 탓에 정신없이 주문을 받던 아저씨들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터키인들만의 휴양지로 관광객들에겐 많이 알려지지 않은 도시에 낯선 아시아 여학생이 문을 두드리니 얼마나 신기했을까. 알록달록한 디저트들 중에 가장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를 선점하여 높은 유리 진열대 너머로 외쳤다. 로투스 치즈케이크와 과일들 많아 보이는 걸로 주세요, 따듯한 아메리카노도! 그러자 뒤에서 MAŞALLAH 라며 감탄사를 읊조리는 또 다른 아저씨의 말이 귀 너머로 들려왔다. 터키어를 너무 잘한다는 아저씨의 칭찬에 씽긋 웃으며, 감사하다는 짧은 인사를 전했다. 길고양이를 만지며 지중해 바다의 선선함을 느끼다 온 탓에 디저트를 먹기 전 손을 씻기 위해 물수건부터 찾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주문이 오가는 사이를 비집고 나는 꿋꿋이 유리 진열대 너머로 물수건을 찾고 있다는 말을 던졌다. 그는 갖다 주겠다는 다정한 말과 함께 갑자기 진열대에서 두 개의 버터링을 꺼내시기 시작했다. 숱한 터키인들의 머리 너머로 나에게 서비스라는 듯 윙크를 두어 번 하며 말이다. 고심해서 골랐던 윤기가 흘러 넘치던 디저트보다 아저씨가 건네준 작고 소중한 딸기 버터링이 훨씬 맛있었다. 이거 신종 마케팅 수법인가 싶은 생각을 하며 한 입 한 입 베어물었다. 입 안에 퍼지는 버터 풍미와 느껴지는 지중해 사람들의 친절함으로 저절로 머금게 되었던 미소는 곧 주변인들에게도 퍼져나갔다. 이보다 행복할 수가 없다는 생각과 함께 버터링 4개를 더 사먹기로 결심했다. 맛도 맛이지만, 이는 내가 그들의 친절에 보답하는 일종의 방식이다. 이틀간 이곳을 기웃거려서 그런지 내일도 또 오라는 기분 좋은 농담과 함께 패스츄리점을 나선다. 그렇게 또 다른 하나의 추억이 적립된다.
보드룸은 파스텔톤의 지중해를 보기 위해 가기도 하지만 진짜 매력은 그 골목길을 걷는데에서 시작한다. 비좁지만 잘 다듬어둔 그 길바닥엔 나자르 본주우(악마의 눈)이 구석구석 박혀있다. 그 색과 모양의 차이를 발견하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념품 가게에서 저거 하나에 120TL (한화 8000원 정도)는 하던데, 이걸 다 길바닥에 박아놨네. 쩝 소리를 내며 괜히 쭈그려 앉아 툭툭 건드려보기도 한다. 주변 이들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다. 평화로운 분위기에 아주 적당한 호객, 그리고 거리를 걷는 순간순간마다 애옹거리며 달려오던 형형색색 고양이들. 곧 가는 모로코의 도시마다 있는 메디나도 제발 이런 느낌이길, 이라고 생각하며 끝없이 걸었다.
나자르 본주우 (악마의 눈) : 푸른 유리에 눈이 그려져 있으며, 터키 전국에서 볼 수 있는 부적이다. 재앙을 물리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골목골목 한참을 거닐다 들어갔던 뷰 맛집 레스토랑은, 여행하면서 가보았던 식당 중에 제일 인상적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주 어지러울 만큼 아재들의 윙크를 많이 받았다. 서빙을 할 때도, 남들의 주문을 받을 때도, 건너편 테이블에 멋쟁이 중국인 젊은이들이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도. 꽁지머리를 한 한 웨이터가 그들을 바라보며 내게 ‘쟤넨 어느 나라에서 온 것 같아?’라고 물었다. 곧장 귀에 심한 높낮이가 섞인 언어가 들려왔다. ‘우리나라는 아니야. 아마 중국 쪽 같아.’라고 답하자 갑자기 웨이터들이 터키와 한국의 연대를 뽐냈다. 그들을 빤히 쳐다보며 내겐 터키와 한국은 따듯한 피를 가진 가장 다정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속삭였다. 중국과 대조하는 짓궂은 농담. 갑자기 뭔 소린지. 이럴 땐 어떻게든 한중일 3국을 지켜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좀 조용히 하라는 의미에서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 입에 쉿, 을 갖다 댔다. 웨이터는 본인을 무안하게 만들었다며 뭐라하지만 이내 싱글벙글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못 말린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돌렸다. 그렇게 많은 장난과 대화가지나가고 계산을 하려고 할 때 즈음 레스토랑의 사장이 웨이터들에게 속삭이는 것을 들었다. 웃음이 가득한 저 친구에게 차를 대접하라고. 환대를 내심 기대했는데, 끝내 뷰값이 왕창 들어간 따듯한 차를 무료로 마시게 되는구나. 시치미를 떼고 고맙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그 모든 티키타카는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만약 내가 언어가 안 됐더라면 이 정도까지 그들의 장난을 맞받아칠 수 있었을까, 조금은 씁쓸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잘 배워둔 언어는 오지랖이 넓은 터키인들의 환심을 사기에 아주 적절한 수법. 어쩔 수 없다. 이 나라 사람들의 방식을 알아가며 그들에게 나를 맞춰야 한다. 좋은 것은 더 크고 풍부하게, 무례했던 순간들은 유연하고 현명하게 대처해 내는 방법을 알아가며 말이다. 언어가 곁들여진 여행에서는 그 양쪽을 다 즐기며 얻는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