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얼고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크리스마스가 지나갔다. 공만 있으면 어디서든 축구를 할 수 있었는데 땅이 얼어버린 세상에서는 공도 얼었다. 그래서 2주를 쉬었다. 그동안 엄마로의 일상으로 돌아와 밀렸던 집안일들을 해냈다. 아이들과 함께 방학을 맞이해 게을러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새해 첫날 기대하며 운동을 나갔다. 얼마나 기다린 운동이었던가. 몸이 근질근질했고 운동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비가 와서 실내에서 훈련을 하게 되었다. 실내는 축구장보다 확연히 작아서 우리들의 커다란 몸짓이 실내 축구장은 받아주지 못했다. 그래서 실내경기를 할 때면 회원들의 부상이 잦았다.
실내 축구장에서 욕심 버리기
드리블 연습과 달리기를 해서 몸이 달궈지면 미니게임을 했다. 그 미니게임을 실내에서 하게 되면 축구는 당구가 되고 농구가 된다. 축구장의 선 바로 뒤로 벽이 세워져서 공은 당구공처럼 벽을 치고 제멋대로 나온다. 가끔은 공을 들어 올린다는 게 실내 천장에 부딪혀 농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실내에서 발을 들어 올려 축구 경기를 하다가 발을 빼는 타이밍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타이밍을 찾아도 느린 내 몸은 공의 빠르기를 감당하지 못했다. 할 수 없음을 판단해야 했다. 그리고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타이밍과 움직임이 필요했다. 병원에서 돌아와 코치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상소식을 알렸다.
"오늘은 다치지 않게 적당히 했는데 다쳤어요."
"너 오늘도 적당하게 하지 않았어."
나에게 보이지 않는 욕심이 상대방에게는 보였다. 지피지기. 내가 나를 알지 못한 죄였다.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금이 가다
발목이 심하게 접질린 게 바로 1년 전. '될 것 같은데, 할 수 있겠는데'라는 자신감은 다시 부상으로 가는 길을 인도했다. 마치 운전이 익숙해질 때즈음에 사고가 나는 것과 같았다. 미니게임 전반전을 뛰다가 발가락에 문제를 직감했다. 슬픈 예감이었다. 발을 공중으로 많이 띄우고 누군가에게 부딪힌 것 같은데 정확하게 어디에 부딪혔는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부상의 느낌은 언제나 정확한 편이다. 아픔을 참으며 후반전을 뛰었더니 이기고 있던 스코어는 기울어져지고 말았다. 다친 발가락을 뒤로하고 게임 패배가 원망스러웠다. 마지막에 페널티 킥하라고 주셨는데 엄지발가락이 아파서라는 변명을 가진 채로 노골이 되면서 경기는 마무리되었다. 골키퍼도 없는 골대에 멍멍이 발이 된 것이다. 병원에 가서도 엄지발가락 ‘골절 같다’는 슬픈 예감을 분명히 말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깁스를 하고 발목으로 걸어가면서 집에 가는 길은 험난했고 걷지 못하는 자의 슬픔을 느꼈다.
가족과 함께 스키강습을 받기로 했는데 나만 빠지게 생겼다. 애초에 계획이라는 게 계획 한대로 된다면 인생이 재미없겠지. 애써 나를 위로했다. 40년 인생동안 매번 연초에 다치는 일이 잦았다. 부상의 위로를 찾는 일이 액땜이었다. 더 좋은 일이 올 거라는 위로. 이번에도 그 위로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오늘, 방금 전이라서 더 슬펐다.
+스키를 배워보려 했는데 망했어요. 사실 스키를 배우는 일이 영 두려웠는데. 마음에 따라 이렇게 된 건가 싶기도 합니다. 언제나 마음먹기에 따라 상황이 가는 것 같아서. 시크릿이라는 책이 떠오르는 오늘입니다. 방학이 아직 한창이고 졸업식에 예쁜 구두를 신고갈 요량이었는데.... 골절로 모든 계획은 바이바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