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8 재미의 이동에 따라 팀을 바꾼다
골을 나만 못 넣었다. 15분씩 네 번의 풋살 경기 속에서. 10번 등번호를 뭐 하러 달았는가. 골을 넣지 못하는데 그 번호를 가질 자질이 나에게 있는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이야기처럼 번호를 달면 나도 달라지지 않을까를 기대했다. 번뇌는 비교에서 비롯된다. 풋살대회를 처음 나갔다. 다들 골을 넣는 회원들 사이에서 골을 못 넣는 나를 비교했다. 3년 동안 축구 수비수만 해서 골을 못 넣은 게 한이 되어 풋살팀에서는 공격수를 해보겠다고 나섰다가 아무것도 못 하는 신세가 됐다. 풋살팀 창단으로 10번의 등번호를 운으로 받았다. 10번의 무게는 좀처럼 가볍지 않았다. 필요할 때 해내야 하는 구력(짬)이 있어야 했다.
경기는 축구로는 많이 할 수 없었다. 대신 풋살로 조금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일주일 열여덟 시간은 축구와 풋살로 공을 만지며 운동한다. 그럼에도 풋살에서 내 실력은 풋린이도 안된다. 그런 정신없는 실력에 정신없는 수업으로 축구 수업에서는 발바닥으로 잡고 풋살 수업에서는 인사이드로 잡는 어이없는 고집을 부리고 있다. 비밀이지만 이 고집은 머리와 몸의 괴리에서 오는 몸의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소속된 축구팀에서는 경기하려면 주말이나 저녁 시간에 따로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풋살에 더 치중하면서 축구를 살짝 덜 하고 있다. 축구를 아예 버릴 수도 없었다. 지난 시간이 아까워서. 축구와 풋살 사이에서 새로 옮긴 축구팀과 이전팀은 확연히 달랐다.
기존에 있던 축구팀에는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축구를 배웠거나 여성 프로축구팀에 소속되어 있던 실력자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이 대략 10명. 평균연령이 대략 30대 후반에서 40대였다. 감독 코치는 환갑을 목전에 두고 있다. 50대들은 다른 종목의 체육을 전공으로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결승에 올라가는 일은 열심히 하면 가능했다. 운이 따를 때는 우승도 하곤 했다.
새로 들어간 축구팀에는 평균연령이 30대 초반이다. 20대들도 많다. 감독 코치가 30대다. 경기를 뛰면서 함께 조언해 주는 여자 코치가 있어 많이 배울 수 있다. 평일에 운동을 나가면 나는 나이 많은 언니가 되었다. 지금 팀은 운동을 좋아하는 젊은 여성들이 순수하게 모여 있다. 군인, 다른 종목의 선수 출신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대회 1승에 목말라 있다.
필드에서 뛰면서 이 팀에 축구 실력으로 기여하고 싶다. 하지만 여기서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젊은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쉬지 않고 계속 집중해서 운동한다면 승산은 있을 것 같은 예감이다.
팀을 옮기는 일을 쉽게 결정한 일은 아니었다. 실력을 키웠는데 경기장에 넣어주지 않아서 나갔다고 주변에서 말했다. 사실이다. 하지만 비단 그뿐만은 아니었다. 옷이 많아도 옷이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철이 지나고 유행이 지나고 지겨운 옷들은 안 입는 것처럼. 재미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재밌던 모든 것들이 재미없음으로 바뀌는 순간 팀을 옮기게 된다.
3년이라는 시간으로 내가 공들여 올린 탑을 버리고 다른 곳에 간다는 일이 쉽지 않았다. 생활이 편리했다. 누구를 만나도 얼굴을 알았고, 내 생각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간의 일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자리를 옮긴 이 한 걸음 한 걸음이 생각이었다. 나에게 시작은 끝까지 간다는 의미기도 했다. 쉽게 그만둘 일이었으면 시작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여러 개를 시작해놓고 다 그만두는 일은 좋아하지 않는다. 마흔다섯 살이 되면 웬만한 축구단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그 나이가 되기 전에 자리를 잡고 싶었다. 10년은 축구를 해봐야지 않겠는가.
처음으로 축구팀을 그만뒀을 때 주변 이곳, 저곳에서 오라는 부름을 받았다. 내가 허투루 운동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 부름은 위로가 되었다. 3년 동안 몸담았던 팀에서 받지 못하는 위로를 내가 몸은 소속되었지만 같은 팀이 아직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팀에서 받았을 때 감사했다. 몸과 마음이 함께였던 소속팀은 없던 셈이다.
그래서 생일에도 풋살대회를 나가기로 했다.
풋살은 시작한 지 이제 육 개월이니 구력을 쌓으면 성장하지 않을까.
축구와 풋살 어딘가에서 나는,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