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네루다의 서사시를 노래 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책장을 정리하고 서재에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셨다. 이 음악은 파블로 네루다의 시 「모두의 노래 Canto General」를 가사로 하여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작곡한 「Mikis Theodorakis - Pablo Neruda: Canto General」음반이다.
네루다의 이 시는 호머의 「일리아드」에 버금간다. 중남 미의 역사를 노래한 방대한 서사시이기 때문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이 사람을 알아본다는 것은 기적이다. 70대의 네루다와 40대의 테오도라키스가 피신지 파리에서 서로를 알아보았다. (「미오기전」 230-231쪽 인용)
나의 유튜브 계정으로 구입한 영화로는 유일하게 『일 포스티노』(Il Postino)가 있다.
1994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정치적 이유로 이탈리아의 작은 섬에 망명한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그에게 우편을 배달하던 청년 마리오 루오폴로 사이에 싹트는 우정과 성장을 다룬 작품이다. 순박한 마리오는 네루다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시’와 ‘은유’의 세계를 배운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 베아트리체에게 전할 시를 직접 쓰기 시작하며, 시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천천히 깨닫는다. 그러나 마리오가 공산주의 집회에서 자신의 시를 낭독하던 중 폭력적 진압이 벌어지고, 결국 그는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다. 이 영화는 시와 사랑, 정치와 민중의 삶을 한 화면에 담아내며, 네루다의 낭만적 시 세계와 마리오의 순진함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작품으로 평가받아 왔다.
내가 상원의원으로 있었을 때,
대 초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네.
그곳은 50년에나 한 번 비가 오는 곳이지,
그곳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들다네.
난 날 뽑아준 사람들이 누군지 알고 싶어 찾아갔어.
하루는 로타에 있는 탄광에서 한 사람이 나왔어.
땀과 모래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은,
고생으로 찌들었고 먼지로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네.
그는 굳은살 박힌 손을 내밀며 말했어.
"어디에 가시든지 우리의 고통을 알려주십시오. 저 아래,
지옥에 살고 있는 당신의 형제에 대해 말해 주십시오."
그때 난 인간의 투쟁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어.
고통받고 있는 자에 대한 시를.
그렇게 '모두의 노래'가 탄생했지.
_ 영화 <일 포스티노>의 50분경에 나오는 네루다의 대사 인용.
영화에서는 그의 책 '칸토 헤네랄'(모두의 노래)이 그가 떠나온 칠레에서 비밀리에 출간되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소식을, 마리오가 전해준 소포의 녹음테이프를 통해 듣게 된다. 서사시의 출간과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 되겠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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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를 잘 모른다. 이름은 오래전부터 익숙하지만, 그의 시나 생애에 대해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다. 영화와 다큐멘터리, 그리고 몇 편의 시가 내가 접한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 『미오기전』 4부에서 ‘모두의 노래’라는 에피소드를 읽었다. 그 글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것이 바로 오라토리오 칸토 헤네랄이다. 시집은 도서관에서 바로 빌려 읽었고, 음악은 유튜브 뮤직으로 찾아들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 음반의 한 곡이 흐르는 중이다.
오늘은 그 《칸토 헤네랄》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부족한 부분은 자료를 뒤지고, 또 문명의 도움도 조금 빌려볼 생각이다. 결국 누군가와 그가 남긴 시와 음악을 알아가는 이 과정 자체가 이미 큰 기쁨이 아니겠나 싶다.
4·19와 5·18을 지나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치열하게 쟁취해 낸 민주주의의 역사적 궤적은 어쩌면 네루다의 칸토 헤네랄이 품고 있는 거대한 서사와 본질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억압과 폭력, 그리고 침묵을 강요하는 체제에 맞서 시민들이 함께 일어나 자기 역사를 다시 쓰려했던 그 장면들은, 라틴 아메리카 민중이 겪어온 투쟁의 역사와 깊은 공명을 일으킨다.
특히 ‘III. 정복자들’ 파트에서 네루다가 서구의 정복 신화를 해체하는 장면을 읽을 때, 자연스레 우리 사회가 겪어야 했던 국가폭력의 기억을 떠올렸다. 유럽중심주의적 승리의 서사 뒤편, 그 서사가 빚어낸 수많은 민중의 고통과 수치가 얼마나 깊고 오래된 상처인지, 네루다는 그 잔혹한 실체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의 ‘탈신화화’ 작업이 내 가슴에도 고통으로 밀려왔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서사는 이미 우리 안에도 새겨진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를 읽어야 한다. 시는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역사와 우리가 마주해야 할 현실을 재조명하게 하는 또 하나의 감각 기관이다. 시를 읽는 것은 타인의 고통과 시대의 진실에 귀를 기울이는 행위이며, 동시에 우리의 기억을 더 선명하게 다듬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단지 시를 읽는 데서 멈출 수 없다. 그 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해 내기 위해 필요한 인식의 깊이, 해석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문학적 이해 능력은 곧 역사와 사회를 꿰뚫어 보는 힘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네루다를 읽으며 더 깊은 해석을 갈망하게 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I.
파블로 네루다의 칸토 헤네랄(Canto General, 모두의 노래)
총 15권의 연작으로 구성된 칸토 헤네랄은, 그 시작은 식민 이전의 태초적 세계에 닿아 있고, 끝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 라틴 아메리카 전체의 시간을 관통하는 이 시집은 마치 대륙 자체가 시인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는 듯한 울림을 만들어낸다는 전언이다.
칠레의 시인 네루다가 1950년 멕시코에서 초판을 출판한 이 서사시는 단순한 시집을 넘어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 자연, 정치적 투쟁을 아우르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시인의 개인적 삶의 경험과 고향 남미대륙의 집단적 역사를 엮어 노래한다.
이 작품에서는 ‘역사’를 다시 바라보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네루다는 기존의 사관으로 쓰여진 유럽의 승자 우선의 서사를 거부한다. 그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원주민의 삶에 남긴 상처, 착취, 불평등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대안적 역사를 쓰고자 했던 듯하다. 그의 시적 시선은 전통적 역사 서술이 무시하거나 축소해 온 민중의 목소리를 전면으로 끌어올린다. 네루다에게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는 영웅과 정복자의 업적이 아니라, 침묵해 온 수억의 삶과 공동체가 겪어온 고통과 저항의 역사로 기억되는 것이다.
칸토 헤네랄이 가진 강렬한 이념적 색채는 네루다의 생애 경험과 깊이 연결된다. 스페인 내전을 직접 목격한 이후, 그는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을 확고히 받아들인다. 이 작품에도 역사가 억압과 저항의 변증법을 통해 진행된다는 그의 믿음이 짙게 배어 있어 보인다. 민중 봉기, 혁명적 지도자, 억압에 맞선 투쟁의 순간들이 시적 이미지와 결합하면서, 시집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혁명 연대기’처럼 읽히기도 한다.
네루다는 역사를 단순히 회상하지 않았다. 그는 라틴 아메리카의 과거를 미래의 변혁을 향한 ‘진행 중인 서사’로 재해석하려 한다. 이 관점은 그가 그리는 비전의 윤곽을 더욱 명확하게 하는 모양새다.
네루다가 공산당원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1940년대에 쓰인 이 작품은, 문학을 넘어 정치적 목적을 선명히 갖고 있다는 평이다. 흥미로운 점은, 네루다의 서사가 종교의 언어를 빌려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성서적 구조를 전유하여, 억압받는 민중의 역사를 구원사의 형태로 재구성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칸토 헤네랄은 마치 ‘해방의 복음서’처럼 기능하는가 보다. (공산주의자가 차용한 성서적 서사라니...^^; 하긴, 우리에게 그는 공산주의자로만 알려져 있으나, 영화에서 네루다는 가톨릭 신자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어찌 알겠나, 그 정신에는 그리스도의 신앙이 자리했었는지를...)
전통적 신앙이 제공하던 도덕적 에너지와 역사적 의미를, 혁명적 참여와 사회적 개혁이라는 새로운 가치로 치환하려는 시도가 여기서 뚜렷하게 드러나 보인다. 그 결과 이 작품은 문학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신학이 된다는 해석이다. 민중에게 향하는 일종의 도덕적 요청이자, 공동체가 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세속적 성전이라는 것. (그렇다고 그의 시가 프로파간다의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닌 듯하다. 결단코)
오직 네루다는 칸토 헤네랄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 민중이 자신들의 역사를 기억하고 재해석하며,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거대한 비전을 제시했던 것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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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트리오 칸토 헤네랄은 15개의 칸토(노래)로 되어있다.
(전곡 링크: Mikis Theodorakis - Pablo Neruda: Canto General )
1. Amor América (지상의 등불 중 아메리카의 사랑)
이 곡은 칸토 헤네랄의 서문처럼 식민 이전의 아메리카를 되살려내는 장면을 열어준다. 네루다는 대륙의 자연과 원초적 생명력, 그리고 잊힌 조상들의 기원을 소환하며, 침략으로 꺼졌던 땅의 등불을 다시 밝히듯 아메리카의 본래적 얼굴을 회복하고자 한다.
가발과 재킷이 존재하기 전부터 강, 핏줄처럼 연결된 강,
산맥이 있었다. 산맥의 들쑥날쑥한 물결 위에는 미동조차 없는 콘도르와 백설이 있었다.
그리고 습기, 울창한 녹음, 아직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천둥, 지상의 평원이 있었다.
인간은 흙, 질그릇, 말랑말랑한 진흙으로 빚은 눈꺼풀, 점토로 형태가 빚어진 존재.
카리브의 항아리, 칩차의 돌.
잉카제국의 잔, 아라우카 족의 규토로 만든 존재.
용맹스러우나 여린 존재, 그러나 그들의 촉촉한 수정 무기 손잡이에는 이 땅의 표식이 새겨 있었다.
그 누구도
후에 그 표식을 기억할 수 없었다. 바람은
그 이름을 잊었고, 물의 언어는 묻혀버렸고, 기호 체계도 잃어버렸다.
아니, 침묵과 피로 뒤덮여버렸다.
양치기 형제들이여, 생명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야생의 장미 같은 빨간 방울
우거진 녹음에 떨어지자
지상의 등불이 꺼져버렸다.
_ 칸토 헤네랄 1부. 지상의 등불 중 '아메리카의 사랑' 도입부 (<모두의 노래> 31-32쪽)
2. Alturas de Macchu Picchu (마추픽추의 고산)
이 시는 칸토 헤네랄의 전환점으로, 네루다가 마추픽추 앞에서 고대 문명의 영원성과 이름 없이 사라진 민중의 고단한 삶을 대비하며 정치적 자각에 이르는 순간을 담는다. 1943년 실제 방문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문명의 장엄함 아래 묻힌 노동의 기억을 소환하고, 침묵한 민중의 목소리를 다시 불러내는 선언으로 이 칸토를 완성한다.
인간은 옥수수처럼 타작되었다.
패배의 역사, 불행한 사건의 끝이 보이지 않는 곡물 창고에서, 하나에서 일곱, 그리고 여덟까지.
인간을 찾는 것은 하나의 죽음이 아닌 무수한 죽음.
매일 겪어내는 작은 죽음,
먼지, 구더기, 빈민가의 수렁에서 꺼지는 등불, 두툼한 날개의 작은 죽음이
짧은 창이 되어 우리 모두를 찌른다.
그리고 인간은 빵이나 칼에 쫓긴다.
목동, 항구의 아이, 쟁기를 모는 구릿빛 대장, 법석대는 거리의 쥐새끼까지도.
모두들 죽음을, 나날의 짧은 죽음을 기다리며 시들어 갔다. _III편 중에서 (<모두의 노래> 53쪽)
3. Los Conquistadores (정복자들)
이 장에서 네루다는 콜럼버스 이후의 정복 시대를 영웅 서사로 미화한 서구의 신화를 해체하며, 이를 폭력·배신·파괴로 점철된 암흑의 역사로 재구성한다. 그는 정복자들을 문명의 선구자가 아니라 파괴와 약탈의 실행자로 그리며, 반대로 원주민 공동체를 자연과 조화를 이룬 평화로운 존재로 재현한다. 라스 카사스의 기록을 토대로 한 “검은 전설”의 이미지를 활용해 침략의 잔혹함을 소환함으로써, 이 장은 정복 신화를 뒤집고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기억을 회복하려는 네루다의 문학적·정치적 선언으로 자리한다.
백정들은 섬을 초토화했다.
과나니 섬은
순교 역사의 1호를 기록했다.
흙의 자식들은 자신들의 미소가 부서지고,
사슴같이 여린 몸이 구타당하는 걸 알았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들은 묶였고, 상처를 입었고, 불에 달구어졌고, 화형에 처해졌고.
개에 물렸고, 땅에 묻혔다. _ 바다에 오다(1493) 중에서. (<모두의 노래> 75쪽)
4. Los Libertadores (해방자들)
‘해방자들’에서 네루다는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 영웅들을 하나의 거대한 해방 서사 속에 모아, 그들의 투쟁을 대륙의 존엄 회복을 위한 집단적 장면으로 재탄생시킨다. 호세 미겔 카레라와 에밀리아노 사파타 같은 인물들의 희생은 찬가처럼 울려 퍼지며, 이 장은 라틴 아메리카 해방 역사를 문학적 신전으로 세우려는 네루다의 정치적·시적 의지가 가장 강렬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여기 나무가 온다, 폭풍의 나무, 민중의 나무.
수액을 먹고 자라는 잎처럼, 땅에서 영웅들이 올라오고,
웅성대는 무수한 이파리를 바람이 흔들어대자,
다시 한번 빵의 씨앗이 땅에 떨어진다.
_ 해방자들 중에서 (<모두의 노래> 125쪽)
5. La Arena Traicionada (배신의 모래)
‘배신의 모래’에서 네루다는 독립 이후 라틴 아메리카를 뒤덮은 내부 엘리트의 부패와 미국식 신식민주의의 착취를 고발하며, 정복자는 바뀌었지만 배신과 수탈의 역사가 계속된 대륙의 상처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어쩌면, 지상에 대한 망각은, 겉에 걸치는 옷처럼, 점점 더 커질 수 있고, 숲 속의 어두운 부식토처럼, 삶에 양식을 줄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
어쩌면, 어쩌면, 인간은 불에 다가가, 대장장이처럼 쇠 위의 쇠에게 무두질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석탄의 눈먼 도시로 들어가지 않고, 눈을 감지도 않은 채, 무너진 곳, 물속, 광물, 파국을 향해 저 아래로 떨어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러나 내 그릇은 다르다, 내 양식도 다르다.
내 눈은 망각을 물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내 입술은 모든 시간, 모든 시간을 향해 열린다.
시간의 한 부분만이 내 손을 허비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없애고 싶은 이 고통에 대해 당신께 말하겠다.
당신이 그 고통의 화상 사이에서 다시 살게 하겠다.
그것은 출발하기 위해서 한 역에 멈추는 것이 아니고, 이마로 이 땅을 치기 위해서도 아니며, 짠 물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의미가 있는 무한한 결심을 가지고 알아가면서 걷고, 올바른 것을 만지기 위한 것이다.
엄격함이 기쁨의 조건이 되어서.
우리가 무너뜨릴 수 없는 인물이 될 수 있도록. _ 배신의 모래 중에서 (<모두의 노래> 263-264쪽)
6. América, No Invoco Tu Nombre en Vano (아메리카, 나는 너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않는다)
이 장에서 네루다는 아메리카를 고통과 희망을 함께 품은 생명체로 부르며, 정복·착취·독재를 견뎌온 대륙의 혁명적 잠재력과 연대의 힘을 다시 확인한다. 그의 호명은 단순한 이름 부르기가 아니라, 민중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서약을 새기는 맹세로 제시된다.
아메리카, 나는 너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않는다.
마음에 칼을 매달고 영혼에 떨어지는 방울을 참고,
창문으로 새로운 너의 날이 내게 밀려올 때,
나는 존재한다.
나는 나를 만들어낸 빛 속에 있고
나를 규정하는 그림자 안에서 산다.
포도처럼 달콤하나 끔찍하고,
설탕을 만드나 체벌이 기다리는 너,
너와 같은 종류의 정액에 젖어,
네 유산의 피를 마시면서.
너의 본질적 여명 속에서 자고 깬다. _ (<모두의 노래> 374-375쪽)
7. Canto General de Chile (칠레를 위한 모두의 노래)
이 칸토에서 네루다는 거대한 대륙 서사 속에서 칠레를 특별히 불러내어, 자연과 민중의 투쟁이 어우러진 운명적 공간으로 그린다. 광물과 산맥, 바다와 사막이 역사적 주체로 등장하고, 칠레 민중의 사회적·정치적 투쟁이 시인의 신념을 형성한 근원으로 제시된다. 이는 네루다가 조국을 향해 들려주는 가장 진솔하고 내밀한 노래라 할 수 있다.
조국, 내 조국, 내 피를 그대에게 돌려준다.
그러나 눈물로 범벅이 된 아이가 어머니에게 하듯, 애원한다.
거두어다오,
이 눈먼 기타와 잃어버린 이 이마를.
나는 세상으로 그대 자식들을 만나러 나갔다.
그대 눈(풀)의 이름으로 쓰러진 이들을 돌보러 나갔다.
그대의 순수한 목재로 집을 짓기 위해 나갔다.
그대의 별을 상처받은 영웅들에게 가져다주러 떠났다.
지금 그대의 존재 안에서 잠들고 싶다.
그대의 별이 빛나는 하늘, 항해의 밤, 가슴을 울리는 현을 들려주는 맑은 밤을 다오.
내 조국이여, 그늘에서 나오고 싶다.
내 조국이여, 장미를 바꾸고 싶다.
_ 찬가와 귀향(1939) 중에서 (<모두의 노래> 374-375쪽)
8. La Tierra Se Llama Juan (그 땅 이름은 후안이라네)
이 칸토에서 네루다는 라틴 아메리카를 ‘후안’이라는 이름으로 의인화해, 대륙 곳곳에서 묵묵히 살아온 노동자와 농민—익명의 민중 전체를 상징하게 한다. 그는 이들의 고단함과 소박한 희망, 그리고 억압 속에서도 지켜낸 존엄을 조용한 힘으로 그려내며, 라틴 아메리카 역사의 중심이 위대한 영웅이 아니라 바로 이 평범한 사람들임을 시적으로 선언한다.
해방자들 뒤에서 후안은 목공소에서, 젖은 광산에서 일하고, 물고기를 잡고, 투쟁했다.
그의 손은 땅을 경작하고 길을 가늠하는 데 썼다.
그의 뼈들은 산지사방에 있다.
그래도 산다. 흙에서 돌아왔다. 태어났다.
영생의 식물처럼 다시 태어났다.
순수하지 못한 밤은 밤새 그를 수장시키려 했다.
그러나 여명이 되자 그의 불굴의 입술만 확인했을 뿐.
그를 묶었으나 지금은 결연한 군인이다.
그에게 상처를 냈으나 지금은 원기왕성하다.
그의 손을 잘랐으나 지금은 그 손으로 두드린다.
그를 묻었으나 지금은 우리와 함께 노래하며 온다.
후안, 문과 길이 이제 당신의 것이다.
땅, 민족이 당신의 것이고, 진실은 당신의 피에서 당신과 함께 태어났다.
그들은 당신을 뿌리 뽑을 수 없었다. 당신의 뿌리,
인류의 나무, 영원한 나무,
소련이라는 나라에서 오늘 강철로 보호받고 있으며,
괴로워하는 이리가 무는 것에 대비해 당신의 위대함이 철통같이 방어되고 있다.
민중이여, 질서는 고통에서 태어났다.
질서에서 그대의 승리의 깃발이 태어났다.
쓰러진 모든 손으로 깃발을 들고, 모여든 모든 손으로 그것을 방어하고,
그대의 무적의 얼굴들이 별을 향해 마지막 투쟁에 나서게 하자.
_ 그 땅 이름은 후안이라네 (<모두의 노래> 448-449쪽)
9.Que Despierte el Leñador (나무꾼이 잠에서 깨기를)
이 칸토에서 네루다는 미국 제국주의와 이에 협력한 라틴 아메리카 엘리트들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억압 속에 침묵해 온 민중, ‘나무꾼’에게 각성을 촉구한다. 그는 노동자와 농민이야말로 대륙의 운명을 바꿀 주체임을 선언하며, 칸토 헤네랄 전체에서 가장 격렬하고 정치적 힘이 응축된 장을 만들어낸다.
10. El Fugitivo (도망자)
이 칸토에서 네루다는 자신의 망명 경험을 라틴 아메리카 민중 전체의 역사적 고난과 포개어, '도망자'를 개인적 비극이 아니라 억압 속에서도 진실을 지키려는 집단적 운명의 상징으로 제시한다. 개인의 도피는 대륙의 투쟁과 맞물려 하나의 연대의식으로 승화되며, 이 장은 네루다 서사시 중 가장 자전적이고 정치적 깊이가 응축된 순간으로 자리한다.
11. La Flor de Punitaqui (푸니타키의 꽃)
네루다는 푸니타키에서 목격한 광부들의 고단한 현실을 한 송이 꽃의 이미지로 응축해, 노동자의 고통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력을 동시에 노래한다. 개인적 경험은 민중의 집단적 역사로 확장되고, 이 칸토는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존엄과 희망을 잃지 않는 민중을 위한 조용한 헌사로 자리한다.
12. Los Ríos del Canto (노래하는 강들)
네루다는 시를 고정된 언어가 아니라 대륙 곳곳으로 흘러가 민중의 의식을 깨우는 ‘강’으로 비유하며, 예술이 기억을 보존하고 저항의 에너지를 전하는 살아 있는 힘임을 강조한다. 이 칸토는 시가 개인을 넘어 공동체와 역사 속에서 흐르며 변화를 일으키는 네루다 시학의 핵심을 응축한 장이다.
여보게, 그 잔을 내게 주고 들어보게. 나는 축축하고
급류에 휩싸인 내 아메리카로 에워싸여 있다네.
때때로 침묵을 잃고, 밤의 화관을 잃는다네.
증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것, 한 허공의 허공,
강아지의 황혼, 한 개구리의 황혼이 나를 에워싸지.
그러면 드넓은 땅이 우리를 떼어놓는 것처럼 느껴.
자네 집에 가고 싶네. 나를 기다리는 걸 알고 있네.
우리만 선할 수 있으니, 그냥 선하게 살기 위해.
우리는 빚진 게 없지 않은가.
사람들이 자네에게 빚진 게 있지, 그건 조국. 기다려.
자네는 돌아갈 걸세. 우리는 돌아갈 걸세. 어느 날은
자네의 강 연안에서 황금빛에 취해, 자네와 함께
항구로 가고 싶네, 남쪽 항구는 그때 못 갔거든.
_ XII. 노래하는 강들 중에서 (<모두의 노래> 545-546쪽)
13. Coral de Año Nuevo para la Patria en Tinieblas (어둠에 묻힌 조국을 위한 신년 인사)
네루다는 이 칸토에서 어둠 속에 놓인 조국을 향한 집단적 희망과 해방의 열망을 합창 형태로 그려낸다. 절망을 직시하면서도 새벽의 도래를 예감하는 이 노래는, 민중이 다시 일어설 힘이 집단적 목소리의 회복에 있음을 보여주는 예언적 선언에 가깝다.
나는 모든 다정한 땅을 껴안는 사람이다.
내 조국의 꽃피는 허리. 기쁨이 꺼지면 우리 서로 말하기 위해,
이 시간을 닫힌 꽃처럼 당신께 드리기 위해 당신을 부른다.
어둠 속에 놓인 내 조국에 새해 인사를.
우리는 함께 간다. 세상은 밀로 왕관을 썼고, 높은 하늘은 미끄러지듯 날아간다,
밤에는 순수한 높은 돌을 부수면서.
이제 일 분만 있으면 새 잔이 채워질 것이고, 우리를 이끄는 시간의 강과 합쳐질 것이다.
이 순간, 이 잔, 이 땅은 당신 것이다. 그것들을 정복하고, 여명이 어떻게 터오는지 들어보아라.
_ 어둠에 묻힌 조국을 위한 신년 인사 중에서 (<모두의 노래> 587쪽)
14. El Gran Océano (위대한 대양)
네루다는 이 칸토에서 바다를 단순한 지리적 풍경이 아니라 시간과 역사를 초월해 대륙의 아픔과 꿈을 품어 온 우주적 존재로 그려낸다. 바다는 라틴 아메리카의 서사를 영원한 자연 질서 속에 연결하며, 칸토 헤네랄 전체를 장엄한 스케일로 확장하는 핵심적 역할을 한다.
15. Yo Soy (나는)
마지막 장 ‘나는(Yo Soy)’에서 네루다는 개인적 고백을 넘어, 자신의 존재를 대륙의 역사와 민중의 운명과 하나로 결합된 주체로 선언한다. 그의 ‘나’는 개인을 넘어 라틴 아메리카 전체를 품은 목소리이며, 앞으로도 노래하고 싸우겠다는 혁명적 의지의 마지막 확인이다. 이 장은 칸토 헤네랄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존재 선언으로 묶어내는 장엄한 결말을 이룬다.
스페인, 꿈에 휘감겨, 이삭을 가진 머리칼처럼 깨어나는 너,
내가 본 것은 어쩌면 어둠과 민둥산 사이에서 태어나는 너,
경작하는 너, 떡갈나무와 산 사이에서 일어선 너.
그리고 상처를 안고 대기를 가로지르는 너.
그러나 옛날의 도적 떼가 모퉁이 요소마다에서 네게 공격을 가하는 걸 보았다.
그자들은 가면을 쓰고, 뱀으로 만든 십자가를 들고,
죽음의 극지방 늪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그러자 잡초에서 떨어져 나온 네 몸이
상처 입은 채 모래 위에서 찢겼고,
세상이 무너져 내렸고, 고통은 가중되었다.
_ 전쟁(1936) 중에서 (<모두의 노래> 665쪽)
II.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에게서 음악으로 새롭게 탄생한 오라토리오 칸토 헤네랄
칸토 헤네랄이 그리스의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를 만나 오라토리오로 재탄생한 것은 단순한 예술적 우연이 아니라, 20세기 냉전 시대 전 세계적으로 만연했던 권위주의와 억압에 맞선 문화적 연대의 정치적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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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와 테오도라키스는 정치적 이념과 박해의 역사를 공유한 예술가들이었다. 두 사람 모두 공산주의·사회주의적 성향을 지닌 세계적 예술가였으며, 적극적인 행동주의 때문에 자국에서 탄압을 받았다.
네루다는 1940년대 후반 가브리엘 곤살레스 비델라 정권의 박해를 피해 망명해야 했고, 이 경험은 《칸토 헤네랄》 제10부 도망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비슷하게 테오도라키스 역시 1967~1974년 그리스를 통치하던 우익 군사정권(대령들의 정권) 아래에서 탄압을 피해 1971년부터 파리에서 망명 작곡 활동을 이어갔다.
두 예술가의 협업은 바로 그 파리에서 1971년에 이루어졌다. 둘은 정치적 신념을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예술적 동지가 되었고, 테오도라키스는 이 오라토리오가 “네루다의 투쟁적 영혼과 자유·독립·민주주의를 향한 인민 혁명에 대한 그의 헌신을 음악으로 재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냉전기에 두 사람이 모두 서방의 후원을 받던 반공 군사독재의 탄압 대상이었다는 사실은 이 협업을 단순한 예술적 상호작용 이상으로 만든다. 테오도라키스가 작곡을 시작하던 시기 그리스는 군부 독재 아래 있었고, 칠레는 사회주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가 집권했지만 곧 쿠데타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결국 1973년 9월 11일 칠레 군부 쿠데타로 아옌데 정부가 무너졌고, 이미 병세가 악화되어 있던 네루다는 그로부터 불과 12일 뒤인 9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테오도라키스가 1976년 네루다를 추모하는 악장을 추가한 사실은 이 작품이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적 맥락을 넘어, 억압에 맞선 전 지구적 저항의 메시지를 품은 작품임을 보여준다. 이렇게 칸토 헤네랄은 칠레와 그리스라는 두 민족의 투쟁을 잇는 강력한 반권위주의적 축을 형성하며, ‘우리 시대의 복음’이라 불릴 만큼 시대정신을 품은 오라토리오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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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라키스는 네루다의 텍스트가 품고 있는 정치적 의도와 서사적 힘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고, 이를 음악으로 충실히 번역하는 데 집중했다는 사가들의 평가다. 자료를 찾아보니 그는 첫 시 〈아메리카의 사랑(Amor a América)〉을 출발점으로 삼아 1972년까지 총 7개 악장을 완성했고, 이를 이어 이 악장들은 훗날 오라토리오의 1·2·3·6·9·10·13부에 해당하는 핵심 구조가 된듯하다.
네루다는 파리에서 직접 리허설을 지켜보았다고 전해진다. 특히 그는 작곡가 테오도라키스의 음악적 해석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심지어 작곡가에게 ‘에밀리아노 사파타’, ‘라우타로’ 등 혁명적 인물들을 다룬 시를 추가해 달라는 제안까지 했다는 전언이다. 이는 네루다가 이 작품을 단순한 낭독이 아닌 ‘대륙적 저항의 교향’으로 확장시키려 했음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아닐까 싶다. (1974년_7악장 버전으로 초연, 1976년_네루다 추모 악장 추가, 1981년_최종 13악장 완성)
이처럼 유동적으로 확장시켜 가는 구조는, 작품 자체가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 맥락에 반응하도록 의도하고 있는 것 아닌가 여겨진다. 테오도라키스는 네루다의 시를 '단지 음악화한 것'이 아니라, 칠레 시인의 대륙적 서사시를 '자기 조국과 전 세계의 해방 투쟁에 대한 생생한 음악적 응답'으로 재탄생시켰다는 평가가 온당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터.
III.
오라토리오 칸토 헤네랄 (음악)
테오도라키스의 칸토 헤네랄은 오라토리오라는 전통적 형식을 빌려오되, 그 안에 민중적 리듬과 정치적 열망을 불어넣음으로써, 예술과 현실이 만나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의 목소리’를 만들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오라토리오는 1974년 파리 초연 이후 큰 반향을 일으키며, 정치적 예술 작품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테오도라키스는 칸토 헤네랄을 가지고 대규모 국제 투어를 진행했고, 그 여정 속에서 수만 명에게 네루다의 시 세계를 소개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투어는 토오도라키스를 ‘대중이 사랑한 현대 클래식 작곡가’라는 명성의 정점으로 올려놓았다는 전언이다.
특히 칸토 헤네랄은 그리스와 칠레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두 나라는 모두 군부 독재의 탄압을 겪고 있었고, 이 작품은 자연스럽게 민주주의 저항의 상징으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네루다의 라틴 아메리카 투쟁 서사와 테오도라키스의 그리스적 음악 어법이 결합하면서, 작품은 언어와 국경을 넘어선 연대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모양이다.
정리하자면...
강렬한 서사시 —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오라토리오의 만남.
문학과 음악의 단순한 만남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만남, 역사와 역사의 만남, 공간과 공간의 만남이 되다.
파블로 네루다의 연작시 칸토 헤네랄과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오라토리오 작업은, 20세기 예술이 정치적 현실과 만날 때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를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인 듯하다.
네루다의 텍스트는 라틴 아메리카의 식민 경험, 독립과 혁명, 민중의 투쟁과 상상력을 하나의 대륙적 서사로 엮어낸 거대한 시적 건축물이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인식과 해방의 미학이 결합된 작품으로, 억압받는 민중에게 자기 자신을 역사적 주체로 인식하게 하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성전'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이다. 아울러,
테오도라키스의 음악은 여기에 생생한 호흡과 육체를 부어 넣는다. 그는 복잡한 오페라적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단순한 하모니와 반복적 리듬, 그리고 그리스 대중음악의 핵심 악기인 부주키를 과감히 사용한다. 그이 선택은 명확한 메시지를 지닌 듯하다. 이 오라토리오가 겨냥한 청중은 공연장의 귀빈석이 아니라 거리의 민중인 것이다. 음악은 예술의 장벽을 낮추고 네루다의 정치적 언어가 더 넓은 사람들에게 닿도록 확장하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망명을 겪은 두 예술가의 만남은 단순한 예술적 협업을 넘어 지정학적 저항의 의미를 띠게 된다. 칠레와 그리스, 두 나라 모두 군부 독재 아래에서 시민들이 억압받던 시기였다. 바로 그 역사적 순간 속에서 탄생한 이 작품은 반제국주의, 사회 정의, 민중 해방이라는 메시지가 국경과 언어를 넘어 어떻게 보편적 연대를 구축할 수 있는지를 웅변한다.
결국 테오도라키스의 칸토 헤네랄은 단지 음악으로 된 시집만이 아니다.
시대를 넘어 울려 퍼지는 연대의 선언이자,
문학과 음악이 함께 역사적 폭력에 맞서는 예술적 저항의 대표적 유산인 것이다.
관련자료
1. 『모두의 노래 Canto General』, 파블로 네루다, 고혜선 역, 2016, 문학과지성사
2. Wikipedia: Canto General , Canto General (Theodorakis)
3. Redefining Civilization: Historical Polarities and Mythologizing in Los Con Quistador Los Con Quistadores of P es of Pablo Neruda ablo Neruda's Canto Gener o General, 2007, Mark J. Mascia, Sacred Heart University
4. Analysis of Pablo Neruda’s Amor America, NASRULLAH MAMBROL, 2025
5. Theodorakis and the Greek Art-Folk Song | Seminars 2025, Dr Maria Athanasi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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