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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 정리

[선정단] I-7권 『경제이야기』사실은... 임주영

시민도서선정단 I차 대상 도서 독서 후기 및 평가

by KEN

『경제신문이 말하지 않는 경제이야기』 임주영



0.

Intro...


임주영 작가의 《경제신문이 말하지 않는 경제이야기》는 흔히 보이는 경제 해설서와는 결이 다릅니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던 주류 경제 담론을, 내부자의 시선으로 해부한 비판적 보고서에 더 가깝습니다. 저자가 25년 넘게 채권·외환 등 자본시장의 한복판에서 일해 온 인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문제 제기는 바깥에서 던진 구호가 아니라 시스템을 직접 작동시켜 본 사람이 내놓는 자기 성찰에 가깝습니다. 이 경력이 그의 비판을 단단하게 받쳐주는 토대이기도 하지요.


흥미로운 지점은, 금융시장에서 오래 몸담았던 사람이 오히려 현재 경제 시스템이 자본의 효율성만을 숭배하는 구조를 정면으로 비판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경제가 결국 인간의 삶을 위한 도구라면, 성장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며, 그 중심에는 삶의 질·행복·공정성이 놓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실물 경제의 구조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아도 이는 매우 핵심적인 논점입니다. 경제는 생산과 분배의 메커니즘이기 때문에, 분배의 정의가 무너지는 순간 시스템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하니까요.


저자는 사회적 악의 뿌리를 가난보다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에서 찾습니다. 그래서 “악은 가난이 아니라 불평등에서 온다"는 말을 중심 주제로 삼아, 경제도 정치도 사람을 향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의 비판은 도덕적 호소가 아니라 경제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구조적 문제 제기입니다.


우리가 보통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이는 GDP, 수출 증가율, 자산시장 상승 같은 숫자 뒤에는 윤리적 실패와 구조적 불균형, 계층 간 기회 단절이 숨어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이런 통찰은 금융 현장을 오래 경험한 전문가가 아니면 얻기 어려운 시각입니다.

부딪히고 싶었습니다. 휴리스틱의 오류를 걷어내고, 깊이 박혀 있는 오해를 뽑아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성장의 열매가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함께 잘 사는 그 길로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첫걸음에 눈곱만큼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이 땅에 선 브렉시트 같은 결정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이 책을 준비했습니다. _ 9쪽, (프롤로그) 중에서


결국 저자는 익숙한 질문 하나를 다시 꺼내 우리 앞에 놓습니다.

“경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자본인가, 사람인가?”

그리고 그의 답은 명확합니다. 경제는 인간의 번영을 위한 장치이며, 분배의 정의 없이는 어떤 성장도 지속될 수 없고, 시장도 건강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도, 경제 칼럼 모음도 아닙니다. 경제 시스템의 내부 구조를 아는 사람이 우리가 간과해 온 본질을 차분하게 짚어주는 토론의 장에 더 가깝습니다.



1.

숫자와 이론의 함정 — 정답 없는 경제학의 한계


세테리스 패러버스(Ceteris Paribus)

경제학을 자연과학처럼 ‘정답이 있는 학문’으로 여기는 오해는 아직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경제는 수많은 변수와 인간 행동이 뒤엉켜 있어서, 단일한 해답을 제시하기 어렵습니다. 대공황이나 IMF 위기 같은 사건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저자가 지적하는 핵심은 바로 주류 경제학이 지나치게 단순한 가정 위에서 현실을 설명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그 대표격이 세테리스 패러부스, 즉 “결과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무수히 많을 때는 다른 변수는 없다고 가정하고 계산한다(다른 조건은 모두 동일하다)”는 분석법의 한계입니다. 이는 경제학 모델을 만들 때는 편리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상황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업의 투자, 고용, 소비는 글로벌 경기, 기술 변화, 산업 구조, 심리 요인 등 수십 가지 변수가 동시에 작용하며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 → 고용 감소”, “법인세 인하 → 투자 확대” 같은 단순 도식은 실제 경제를 설명하기보다는 현실을 왜곡할 위험이 더 큽니다. 저자가 특히 비판하는 낙수효과도 같은 이유에서 설득력을 잃습니다. 실증 연구들은 기업이 세금을 덜 내면 투자보다 배당·자사주 매입 증가로 이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보여주며, 이는 성장의 혜택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라 위에 더 쌓이는 구조를 강화할 뿐입니다. (1장)

게다가 최근에는 보수적 성격이 강한 IMF나 OECD조차도 법인세 인하, 부자감세 등의 정책은 오히려 세수 감소로 이어져 국가 재정을 악화시키고 경제적 불평등을 키워 결과적으로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IMF에서 1980년부터 2012년까지 전 세계 159개국의 소득과 경제 성장 관련 자료를 토대로 실증 분석한 결과 소득 상위 20% 고소득층(5분위)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 포인트 높아지면, 향후 5년간 경제 성장률이 0.08% 후퇴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에 하위 20%(1분위)의 소득 비중이 1% 포인트 증가하면, 5년간 0.38%의 경제 성장 효과가 생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계적 경제포럼인 다보스포럼은 낙수효과의 실패를 지적하고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 개념인 '포용적 성장(nolusive growth'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낙수효과는 허구이며 거짓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한 것입니다. _ 19-20쪽, (1장) 중에서


저자는 여기서 중요한 메시지를 남깁니다. 우리가 ‘경제 이론’이라고 믿는 것들 상당수는 사실 정치적 선택, 이익집단의 논리,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서사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는 사회과학이므로, 그 이론이 탄생한 시대적·정치적 맥락을 읽지 못하면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한 셈이 됩니다.


그래서 이 책은 독자에게 두 가지 감각을 요구합니다.
첫째, 경제 이론을 교과서적 모델로만 소비하지 말 것.
둘째, 그 이론이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한가까지 함께 해석할 것.

결국 저자가 강조하는 능력은 ‘경제 이론을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힘’, 즉 정책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바깥에서 평가할 수 있는 시민적 감각입니다. 오늘날 경제정책의 결과를 실제로 감당하는 것은 결국 시민이기 때문이죠.


GDP나 고용률 같은 거시지표가 국가 경제의 큰 흐름을 읽는 데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 숫자들이 경제 전체의 평균적인 움직임만 보여줄 뿐,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의 질은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작가가 말하는 ‘착시 현상’은 바로 여기서 발생합니다.


경제의 파이가 커졌다고 해서 모두가 더 잘 먹고 잘 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소득층의 소득이 줄어드는 시기에도 성장률은 높게 나타나는 역설적인 상황이 존재합니다. 이 경우 GDP는 현실을 설명하기보다, 오히려 가려 버리는 역할을 할 수도 있죠. 그래서 작가는 “이런 성장이라면 GDP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지점에서 논의는 단순히 GDP의 기술적 한계를 넘어, 경제성장의 윤리적 목표로 확장됩니다.

경제는 단순히 총량을 늘리는 데 목적이 있는가?

아니면 그 총량이 사회 전체의 복지와 행복으로 이어지는지를 따져야 하는가?


저자는 후자를 명확히 지지합니다. 진정한 발전은 양적인 증가가 아니라 성장 결과가 어떻게 분배되고, 불평등을 얼마나 완화하며,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실제로 행복하게 만드는 가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죠.


결국 경제정책의 중심을 자본의 효율성에서 사람의 삶의 질로 이동시키라는 요구입니다. 정책의 우선순위도 자연스럽게 달라집니다. 성장률보다 중요한 것은, 그 성장이 누구에게 도달했는가, 그리고 누구를 놓쳤는가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사람 중심 경제(2장)’는 이런 전환을 촉구하는 개념입니다. GDP가 말해주지 않는 영역—삶의 온도, 행복의 격차, 불평등의 구조—를 함께 보자는 것이죠. 이는 감성적 주장이라기보다 지난 수십 년간의 불평등 연구가 확인해 준 실증적 결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경제정책이 실패하는 이유는 정책 설계의 문제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정책을 선택하는 사람들(대중과 엘리트 모두)이 완전히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저자는 이 지점을 행동경제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며, 경제정책을 이해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라고 강조합니다.


대니얼 카너먼이 말한 두 가지 사고 체계, 즉 깊이 생각하기(System 2), 대충 생각하기(System 1, 휴리스틱)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데 유용합니다. 인간은 복잡한 문제를 차분하게 분석하기보다, 빠르고 직관적인 판단을 선호합니다. 뇌의 에너지 절약 전략이기도 하지요. 문제는 이런 경향이 경제정책처럼 중대한 결정에서도 그대로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민주주의 사회라고 해서 시민이 모든 정보를 토대로 합리적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가정은 현실과 거리가 멉니다.


저자는 대표 사례로 브렉시트를 듭니다. 영국 경제가 이후 성장 둔화, 생산성 하락, 금융자산 유출 등 전방위적 충격을 겪은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사실은 투표 직후 검색어 1위가 “EU 탈퇴가 무슨 뜻이지?”였다는 점이지요. 이는 많은 유권자가 사안의 의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결정을 내렸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정책 실패의 출발점은 ‘제도’가 아니라 ‘판단’ 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는 언론의 책임도 무겁습니다. 경제지가 충분한 맥락 없이 자극적인 헤드라인만 반복할 때, 대중은 자연스럽게 ‘대충 생각하기’ 모드에 머물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시장을 흔드는 문제를 넘어, 국가의 장기적 경로를 왜곡시키는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사례가 말해주는 메시지는 매우 분명합니다. 경제정책은 숫자나 모델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과 정책의 성패는 시민의 판단 능력, 즉 ‘깊이 생각하기’가 가능한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가 실제로 던지는 핵심 질문은 브렉시트의 평가를 넘어섭니다.
“경제적 의사결정에서 인간의 비합리성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줄일 것인가?”

이는 오늘의 정책 환경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모델이나 지표뿐 아니라, 판단의 구조 자체를 함께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줍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시종일관 독자인 우리에게 묻는 질문이자 핵심 주제인 것이죠.



2.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는 '재정 건전성'이라는 담론


국가 채무 비율 47% — 재정 건전성 담론의 허상

저자는 우리가 흔히 듣는 ‘재정 건전성 위기론’이 실제 경제 상황보다는 정치적 프레임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한국의 국가 채무 비율은 GDP 대비 약 47% 수준인데, 이는 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과도할 정도로 건전한 편에 속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나라가 곧 빚으로 무너진다’는 식의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죠.


특히 그는 채무의 구성을 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금융성 채무—금융자산으로 바로 상환 가능한 부채—를 제외하면 순채무는 더 낮아지고, 국채의 80% 가까이를 국민이 보유한 원화 채권이 차지한다는 점도 안정성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인 것이죠. 외채 의존도가 높아 위험에 취약한 국가들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뜻이라는 겁니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저자는 ‘빚의 공포’가 복지 확대나 재정 투입을 가로막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IMF나 OECD도 한국처럼 여력이 있는 국가는 경기 침체기에 과감하게 재정을 써야 한다고 권고해 왔죠. 저자의 관점은 단순합니다. 경제는 사람의 몸과 같고, 아플 때 약을 써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정리하자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7%는 경제 규모 등을 감안할 때 사실 양호해도 과하게 양호한 편입니다. 금융자산이 있는 금융성 채무, 즉 금융자산을 상환하면 바로 갚을 수 있는 금융성 채무를 제외하면 국가채무비율은 훨씬 더 양호한 수준입니다. 우리 국채 80%는 국민이 갖고 있는, 대부분 원화표시 채권입니다. 채무비율도 매우 양호하지만 빛 내용도 매우 건전합니다. 오죽했으면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IMF나 OECD조차도 대한민국은 훨씬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겠습니까? 사실상 재정의 직무 유기나 다름없습니다. (중략)
재정건전성보다는 당연히 국민의 삶이 먼저여야 합니다. 뒷산에 큰 불이 나서 화마가 곧 마을을 덮칠지도 모르는데 한가하게 저수지에 물에 충분한지 아닌지 따지고 있어선 안 됩니다. 저수지 물은 비가 오면 다시 차오르기 마련입니다. _137-138쪽, (2장)중에서


이어 저자가 지적하는 부분은 재정 운용의 모순과 편법입니다. 명분은 ‘재정 확대는 위험하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적자 국채 발행을 피하기 위해 외평기금 같은 목적 외 기금을 재정 수단처럼 사용하는 방식이 대표적 예입니다. 이는 투명성 측면에서 문제가 될 뿐 아니라, 사실상 필요한 재정 지출을 ‘눈에 띄지 않게’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편법은 감세 정책의 후폭풍과 연결됩니다. 법인세 감면 등으로 세수가 줄어들면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변칙적 재원 조달이 반복되고, 결국 재정의 본래 역할—국민의 삶을 지키는 안전망—이 훼손됩니다. 저자는 재정이 정치적 목표에 끌려다니기 시작하면, 그 비용은 결국 국민에게 전가된다고 경고합니다.

그의 비판은 단순한 학술적 문제 제기가 아니라, 잘못된 정책이 초래할 현실적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재정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신념이 그의 글 전반에 일관되게 흐릅니다.



3.

금융 시스템 — 탐욕적 설계가 만든 구조적 위험


부동산 공화국의 병적 집착과 자산 버블의 경고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은 단순한 주거가 아니라 일종의 신앙 수준의 자산 증식 수단이 되어버렸습니다. 저자는 이 비정상적 구조가 어떻게 반복적인 버블을 낳았는지 역사를 짚어가며, 특히 지난 정부가 투기를 자극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하고 있었다는 점에 강한 경고를 보냅니다. (4장)


그는 과거 정부가 부동산 안정화를 위해 제도를 손보려 했던 사례(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를 언급하며, 반대로 직전 윤정부가 부동산 경기 부양을 정치적 동력으로 삼으려는 모습을 대비시킵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단기적으로는 표를 모으는 데 유리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산 양극화, 계층 고착화, 금융불안, 버블 붕괴 위험이라는 더 큰 비용을 남긴다는 분석입니다.


경제를 하나의 유기체로 본다면, 부동산 시장의 왜곡은 특정 부위의 병이 아니라 전신을 위협하는 중대한 질환입니다. 저자는 단기적인 정치적 목표(특히 총선용 경기 부양)를 위해 시장을 자극하는 것은 결국 더 큰 고통을 국민에게 되돌리는 선택이라고 강조합니다.


전세제도·가계부채·DSR 완화 — 금융 시스템의 취약한 고리

저자가 가장 심각한 구조적 위험으로 지목한 것은 가계부채와 전세제도입니다. 최근 수년간 이어진 전세사기 사태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한국 특유의 전세제도가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에서 출발한 재앙이라는 것이죠. 주거 안정성을 국가가 보장하는 제도가 부재한 상황에서, 그 피해는 가장 취약한 서민층에게 집중됩니다. 저자는 대안으로 공공임대 확대의 필요성을 분명히 제시합니다.


여기에 더해 저자가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입니다. 가계부채를 통제하는 거의 유일한 안전장치인데, 이를 완화하려는 시도는 단기적 거래 활성화 외에는 아무런 실익이 없으며, 오히려 가계부채 폭증 → 금융시스템 불안 → 장기 인플레이션 → 서민층 타격이라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습니다.


특례보금자리론처럼 단기 부양을 노린 정책이 오히려 부채 급증과 자산 가격 왜곡을 부르는 사례는 이미 경험해 온 바 있죠. 금융정책은 단기 정치 일정에 종속될수록 위험해지고, 그 피해는 언제나 서민층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떠안게 됩니다. 저자의 경고는 분명합니다. 부동산과 금융은 표 계산이 아니라 국민의 생계와 안정의 문제라는 것과 잘못된 정책은 한 번의 실수로도 국민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의 비판은 단순한 학술적 주장이 아니라, 잘못된 금융정책의 후폭풍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려는 절박한 사명감에서 나온 듯합니다.



4.

정리하며...


임주영 작가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경제정책의 최종 목적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는 “경제도 정치도, 자본이 아닌 사람을 향해야 한다”는 확고한 철학을 기반으로, 사회적 악의 근본 원인을 가난이 아니라 구조적 불평등에서 찾습니다. 따라서 모든 정책은 이 불평등을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이 책은 주류 경제신문이 기술적 논의 뒤에 숨겨온 윤리적 질문, 즉 “경제 시스템은 지금 누구를 위해 작동하고 있는가?”라는 문제를 독자에게 다시 묻습니다. 저자는 숫자 분석을 넘어, 경제정책이 국민의 삶을 실제로 보호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과 공정성의 기준을 강조합니다. 정책 입안자는 경제지표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파괴할 위험을 먼저 인지할 의무가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결국 핵심은 해석력입니다. 현상을 해석해 낼 수 있는 역량에 있다는 겁니다.

이 책의 중요한 기여는 독자를 능동적 경제 해석자로 성장시키는 데 있습니다. 저자는 주류 경제지의 시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다른 입장과 비판적 논의를 함께 듣는 ‘균형 감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경제는 정답이 있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을 종합해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 곧 경제 문해력입니다.

그런데 베블런은 가난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보수화된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그 이유는 유한계급과는 정반대입니다. 이들은 하루를 살아내기도 매우 힘듭니다. 내일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습니다.
지옥 같은 현실이지만 당장 시키는 일에 순응해야 겨우 하루를 먹고살 수 있습니다. 이들도 마찬가지로 변화를 싫어합니다. 작은 변화에 혹시 그 나쁜 일자리마저 사라지면 어쩌나 두렵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대부분 국가에서 빈곤계층이 보수정당의 주요 지지층이라는 사실은 당시 베블런의 통찰이 얼마나 날카로웠는지를 보여줍니다. 사실 가난한 사람들이 넘쳐나서 낮은 임금으로 노동을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자본'과 '권력'의 오래된 전략이었습니다. 자본가 입장에서는 최저임금 수준의 일자리조차 서로 갖겠다고 치열하게 싸워야 더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 착취를 극대화할 수 있어서입니다. _ 96쪽, (2장) 중에서


책은 비판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인 대안도 제시합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경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은 사람 중심의 경영, 인사관리, 일터 혁신을 강화하고, 노동자는 일터 개선과 고용안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즉 ‘사람 중심 경제’는 정부 정책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노동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변화라는 뜻일 것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경제 해석력은 단순한 투자법이나 부의 축적 기술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정책의 위험성을 읽어내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선택에 비판적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힘, 즉 자신의 삶과 공동체를 지키는 경제 민주주의의 실천 능력입니다.


결국 이 책은 주류 언론이 놓치거나 외면한 불평등의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하고, 자본의 논리가 아닌 사람의 가치를 최우선에 두는 경제 시스템으로 나아가기 위한 성찰을 제공하는 안내서와도 같습니다.



자 이제 다시 1차 대상도서의 마지막권을 평가해야만 하는 시점입니다.

책은 민주시민이 갖추어야 할 기본 경제적 소양과 비판적 경제 읽기에 대한 도전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합니다. 적극 추천 목록에 포함시켜야 하겠습니다.



[참고]

◻︎ 선정을 위한 (임시) 도서평가점수 = 9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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