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에게
너는 읊조렸어.
어쩌면 오래 머무른 감정의 집은 황무지가 아닐까? 충만함 없이 결핍으로 가득한 감정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로. 네모난 물방울도, 푸른빛 잎사귀도, 소리를 내지 못하고 열리는 문까지 , 그 어떤 것도 들이지 못한 채 머물러있는 듯해.
어느 순간 너는 아팠던 감정들을 되짚었지. 희와 멀어졌던 그날에, 네가 갉아 먹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고등학교 시절의 모든 시간을 붙어 지냈지만, 어른이라는 때를 맞이할수록 네 마음은 희의 감정받이로 변모되고 있었던 거야.
사람들과의 관계의 폭이 흘러갈수록 연락 속에서 희는 동 트기 전까지 한탄을 늘어놓았고, 너는 이 경청이 친구의 역할이라 생각했었지. 너의 시간을 들여 희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쓰는 것, 귀가 아프도록 핸드폰을 귀에서 떼지 못하는 것. 그렇게 너는 희의 곁에 머물렀어.
혜윰아, 그런데 네가 견디지 못해서 너무 아팠던 그날 있잖아. 그때 네가 차디찬 바닥 위에서 초조하게 희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 기억나?
단 오분이라도 마음의 신세를 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가만히 앉아있질 못했잖아. 먼저 들린 희의 이야기는 어렵고 힘든 아픔으로 범벅되어 있었고, 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 상처를 듣는다는 게 얼마나 아픈지 알기에. 감정소모의 시간이라는 것을 차마 건넬 수 없었던 거였잖아.
단지 넌 희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고, 희는 너에 대한 잠깐의 멈춤이 부족했던 거야. 너는 그때부터 희를 사랑할 수 없었고,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었고, 그저 해결되지 않은 텅 빈 감정의 조각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었더라.
한참을 허우적대고 압도된 너를 바라봤어. 너의 시선은 하나의 조각이 바닥을 이루고 천장을 이루고 벽을 이루어 방이 되고 문이 되고 창문이 되어 버린 집으로 향했지.
너는 아직도 그 행복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집에서 매일을 보내니? 죄책감과 상처로 얼룩져 안식처도, 도피처도 못된 매번 있던 그 공간에 주저앉아버렸니?
그 황무지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겠구나. 어쩌면, 떠나지 않는 걸 지도 모르겠다.
희에 대한 미련, 그녀의 생일에 보냈던 마음 담은 생일케이크와 텅 비었던 너의 생일, 돌아보면 서로 그저 갈구하기에 머물렀던 사랑에 이르지 못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오늘도 네가 악몽을 꾸지 않기를 속삭이듯 기도해. 잠에 들 수 없어도, 금방 깨어날 꿈이라도, 그 가운데에서 보는 희의 모습은 너를 점점 작아지게 만들어 이 집을 벗어날 수 없도록 할 게 뻔하니까.
분노도, 슬픔도 아닌 상처만이 너를 괴롭히고 있겠지. 너무 오래 괴롭힌 당한 너는 아무것도 정의하지 못할 거야.
그건 그저 영원한 집이야.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봄날의 앞에서,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