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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를 끊어달라고 부탁한 날

국경을 넘은 나의 글

by 미쓰하노이




2년 전 이맘때의 일이다.

나의 최애 베트남 간식인 '해바라기씨'에 대해 예찬한

브런치 글의 조회 수가 갑자기 폭등했고,

특히 페이스북을 통한 유입이 크다는 것을 발견하고

페이스북에서 나의 글을 한번 검색해 보았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걸






5만여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베트남의 한국어 관련 커뮤니티에

내 글이 베트남어로 번역되어 소개되어 있었고,

게시물의 하단에는 친절하게도

나의 브런치 주소가 '태그(#)'되어 있었던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도 관심과 인정을 갈구하는 인간인지라,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상력 2만 프로의 극 'N'의 인간이라

아주아주 잠시(한 30초 정도?),

내가 이제 1억 명 인구수의 베트남 독자들을 발판으로

글로벌 작가로 우뚝 서는 것은 아닐까,

아주 황홀한 상상을 했었더랬다.




▼ 베트남 커뮤니티에서 베트남어로 번역되어 소개된 나의 글




그런데 이런 나의 상상은 금세 허물어지고 말았는데,

그 글에 달린 베트남 현지인들의 댓글들을 보고 나서였다.





해바라기씨는 공짜가 아닌데,
한국인들은 그걸 모른다


북부지방의 카페 문화인데
베트남 전체 문화라고 착각한다


이런 댓글은 양반이었고,

한국인을 비하(?)하는 댓글도 더러 보였다.


게시글에 댓글이 기하급수적으로 달릴수록

연동된 내 글의 조회수도 폭등했고

혹시라도 타지에 사는 이방인인 나의 신상이라도 털릴까,

마음이 조마조마 해졌다.


반나절 정도 고민하다

내 글을 번역하여 게시글을 올린 커뮤니티 주인장 분께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해당 글의 작가 미쓰하노이입니다.
제 글을 재밌게 읽고 고생하여 베트남어로 번역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만 저의 브런치 주소는 태그를 끊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차마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껏 번역해 주신 게시글을 삭제해 달라고까지는 하지 못하고

태그라도 끊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한국어가 유창한 그분은, 감사하게도

동의 없이 게시글을 올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바로 태그를 끊겠다고 답을 해 주셨다.



비록 내가 등단한 작가는 아니지만,

브런치를 통해 쓴 모든 글은

나의 '창작물'이다.


그리고 이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은

단순히 출처를 밝히지 않는 복제를 금하는 것을 넘어,

창작자(원작자)인 내가 2차 창작(번역을 포함한 모든 재생산)에 대한 허용 여부까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고 본다.


해당 사례에서는

베트남 분께서 그분 입장에서는 친절하게도 원본 출처를 밝히긴 하셨지만,

나의 글을 본인의 커뮤니티에 올린다는 허락을 먼저 받으셔야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출처 표기는 기본이며 허락은 별개로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고의가 없었더라도

나는 '해바라기씨'에 대한 내 글의 창작자이므로

태그를 끊어달라는 선택을 할 권리가 있었다.



어찌 되었든,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반나절의 에피소드 끝에

몇몇 브런치를 이용하는 베트남 독자분들이 나를 구독해 주시기도 하며

뜨거웠던 나의 브런치는 다시 잠잠해졌다.


비록 당혹스러운 경험이었지만,

문득 정보 보안 및 저작권에 대해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보호가 취약하다고 느껴지는 베트남에서도

일반 시민들이 원본 출처를 밝히려는 노력을 하시는 것을 보고

내심 저작권이 창작자를 보호하는 글로벌 개념이며

트렌드로 퍼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가끔씩 나의 또 다른 글을 블로그 등에 태그 하시는

한국인 분들도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음에는 조금 귀찮으시더라도 댓글 하나만 남겨주시면 좋을 것 같다.


저작권의 본질은

창작물을 넘어 창작자에 대한 존중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이해한다면

더욱 다채로운 콘텐츠의 르네상스가 열릴 것이라 믿는다.




저작권 이미지.png ⓒ 이미지 제작: OpenAI DALL·E, ChatGPT 기반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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