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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문학동네)

by 김민주

※ 2024.11.21. 작성, 2024-2학기 독서후담 응모작



즐거웠다. 한 번 더 읽을 것을 스스로 예감한다. 유명한 책이어서 교환가치가 있을 것임을 염두하고 고른 이 책은 이번학기가 종강하면 기차 안 캐리어 속을 지나 내 방 책장으로 향할 것이다.


딱딱한 언어로 먼저 하자면 확장적이다. 하루키는 그의 어느 책 한 권에서 세계에 대한 건전한 관심을 묘사하며 수평축과 수직축을 언급한 적이 있다. 아마 동시대에 대한 열린 태도가 수평적이고 역사적인 관심이 수직적이었을 것이다. 우선 나는 작가와 같은 가로축에 서서 그가 인용한 많은 노래를 알아볼 수 있다는 데에서 신기함과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보다 놀라웠던 건 작가가 아무런 연관이 없어 뵈는 역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을 살갗에 닿는 거미줄로 얽어서 읽는 내가 그 축들을 어렵지 않게 가로지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로와 세로만이 아닌 방식으로. ‘팍스 아토미카’, ‘보편 교양’, 표제작인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등에서 조직된 정보들은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인물들에게 불현듯 감지되어 서사에 스며들어있다. 그 정보들을 묽지 않은 선에서 정말 부드럽게 떠먹을 수 있도록 언어가 읽기 즐겁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교통ㆍ물류ㆍ노동 등을 통해 현대의 지구인들이 이웃하는 모양새를 들춰낸다. 총 아홉 개의 단편으로 이뤄진 이 책을 다 읽고나면, 각 단편 내에서만이 아니라 단편들 간에도 그 이웃함이 지속되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포인트들이 있었다. 그걸 느낄 때 정말 설렜고 ‘태엽은 12와 1/2바퀴’와 관련해 아직 발견할 수 있는 게 책에 남아있는 듯해서 기대된다. 혹은 앞으로 작가님이 쓰실 작품 속에라도.


작가는 세상에 대한 구체적 인식과 균형감각을 동시에 갖고 있는데 이는 내가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바이다. 대략적으로 분류했을 때 아홉 개의 단편은 긍정적인 작품과 부정적인 작품은 개수가 거의 반반 나뉜다. 이때, 좋은 것이 마냥 나쁜 방식은 아니고 모두 조금씩의 수수께끼나 미결의 감정을 내포하고 있다. 누군가 기쁠 수 있는 것이 누군가 슬퍼서 그런 건지, 누군가가 슬퍼한다면 다른 누군가가 기뻐하는 것을 저지함으로써 중단시킬 수 있는지 하는 의문들이 남는다. 하지만 기뻐함과 슬퍼함 그 자체는 세상에서 어느 편에 서고 어느 곳에 위치하는지, 즉 모두가 그 아래에 놓인 같은 규칙에 동의하는지의 여부보다는 디폴트로 주어진 인물 자신들의 삶 속에 그 규칙의 그림자로 나타난 어떤 패턴을 간파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았다. ‘전조등’은 내 안에 확실한 그림자를 남긴 것 같다. 그 제목의 의미가 소설 속의 의미로 한 번, 다른 단편들에서 전조등이 언급될 때마다 또 한 번 재생되었다. 많은 정보들이 묽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사건들이 자아내는 긴장감 덕분이었다.


물리적 간격보단 그 존재에 의의를 둔 채 CCTV가 내려다보는 길을 밤에 산책할 때면, 이전에 살았던 별난 지구인들이 알 수 없는 힘에 휘둘려 생에서 열심히 구른 덕분에 저렇게 겨우 불빛 몇을 밝힐 수 있나, 그치만 상하수도의 원리와 구조를 인지하고 사는 동시대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한다. 책을 읽고 나니, 섭취하기 좋게 가공된 전공지식들을 소화하기 위해 내가 가끔 고전하는 것은 그들로 말미암아 가능해진 첨단의 세상이 주는 혜택에 최소한의 경의를 표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실은 필요하지 않더라도 그저 내가 이 흐름 속에서 취하고 싶어하는 것이 있어서임을 깨닫는다. 세상에 대해 개인은 의무보단 권리에 집중하는 것이 이곳을 살아가는 보다 유효한 자세인 것 같다는 뜻이다. 부채감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평균과의 간격을 재보는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그것을 잘 구현하고 실천한 것 같다.


책에는 다양한 인간관계가 등장한다. 사건을 작동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그 관계들은 지금 현실 속에서 많은 관계가 그러하듯 어떤 것들은 멀고 소원했으며 어떤 것들은 멀고도 긴밀했다. 책에서도 언급된 오아시스는 재결합 후 내한을 약속했으며, 나는 그들의 노래 중 하나인 〈Half the world away〉를 표제작을 읽고 나서 떠올렸다. 가수 윤하는 아이유의 팔레트에 출연하여 마지막 하고 싶은 말로 그녀에게 ‘친하게 지내요’라고 말했다. ‘무겁고 높은’이란 단편에서 고등학교 역도부 선수인 송희는 바벨보다 무게가 더 적게 나가는 아버지를 업는 법을 몰라 애를 쓴다. 그녀와는 달리 사람이 바벨 모양이 아니라 더 무거운 이도 업을 수 있는 나의 입장에서는, 더 무거운 바벨을 들기 위해 혼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겠다만 언젠가 나와 ‘친한 사이’를 해버릴 엉뚱한 사람이 더 있도록 편한 어깨가 될 필요가 있겠다고 느꼈다. 상황별로 쓸 수 있는 무한도전 짤을 모은다면 아마 도움이 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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