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청 본관동의 외형
청주시청 본관동은 1964년 서울 홍익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강명구 교수가 설계한 작품이다. 대한민국은 광복과 광복 직후인 1950년에 발발한 6.25 전쟁을 거치면서 1995년부터 파괴된 지방행정청사에 대해 전재복구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실행하게 된다.
당시 대한민국은 현대 건축 이론 및 구축에 관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많았는데 이는 일제강점기(1910~1945)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022년 현재는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원한다면 자국의 여권을 가지고 외국에 나가는 것이 자유롭지만 일제강점기 시기는 일본제국에 대한제국의 주권, 외교권, 군사권 등이 박탈되어 있었기 때문에 경제/문화/사회/역사/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교육 및 연구는 일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근대 건축도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 유학하여 배운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자명한 사실이었던 것이다.
청주시청을 설계한 강명구 교수는 다른 현대 건축가에 비해 알려져 있는 사실이 적지만 그 역시 일본에 유학하여 와세다대학교 부속의 공업학교 건축과를 1940년에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오게 된다. 이 때가 그의 나이 23살이었다.
1930년대의 일본 교육 과정을 직접 확인해보기 어려우나 4년 과정이라고 추정한다면 강명구 교수는 10대 후반에 건축에 대한 꿈을 지니고 20살에 일본으로 건너갔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강명구 건축가가 일본에서 건축을 공부하던 시기의 일본에는 일본제국 건축의 최초이자 최후로 평가받는 단게 겐조가 일본 도쿄대학 건축부를 1938년에 졸업하고 1941년에 동대학 대학원에 입학했다.
이 당시 세계의 근대 건축은 목조 건축에서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건축물로 옮겨가던 시기였는데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도 이런 시대적 흐름을 받아들이면서 "현대 건축의 5원칙"에 필로티 구조에 사용되는 기둥은 철근 콘크리트로 해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철근 콘크리트는 르 코르뷔지에가 발표한 "현대 건축의 5원칙"에도 포함될 만큼 가치가 있는 건축 기술이었으며 르 코르뷔지에는 철근 콘크리트의 사용에 대해 프랑스 파리에 있던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선구자인 오귀스트 페레(Auguste Perret, 1874 ~ 1954)에게 배웠다.
세계 근대 건축과 흐름과 별개로 1800년대 말부터 시절부터 일제 강점기가 거의 끝날 때까지 대한민국 건축물 대부분은 석조를 이용해 건축물을 지었던 경향이 컸다.
1945년 8월 대한제국이 광복을 맞이하면서 한국에는 미군정이 들어오며 또 한 번 사회가 전반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바로 1945년 이후 미국의 기술도 도입되며 사회 전 분야의 기술도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대한민국은 전재복구 5개년 계획이 실행되던 1950년대 중반부터는 짓기 시작하는 시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56년에 지어진 수원, 대구, 춘천의 시청사 등은 대부분 석조와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혼합한 건축 양식을 가졌으나 1950년대 후반인 1958년부터는 근대 건축의 영향 및 건축 트렌드로 철근 콘크리트만을 이용해 건축물이 세워지게 된다. 1960년대부터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가 완전히 자리잡아 사용되기 시작한다.
강명구 교수가 설계한 청주시청 역시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영향을 받았기에 철근 콘트리트 구조로 지어지게 된다.
강명구 교수는 청주시청을 설계하면서 청주가 가지고 있는 별칭인 주성(舟城)에 착안해 건축물을 설계하였는데 주성(舟城)의 유래는 고려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청주는 풍수적으로 한반도에서 물 위에 배가 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전해져 내려오는데 고려시절 운등사(또는 연등사) 주지 스님인 혜원(慧園)스님이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작스런 폭우가 내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남쪽 하늘이 노랗게 물들며 풍악 소리가 들리더니 부처님의 음성이 들리면서 "혜원은 용두사(龍頭寺)로 가서 배가 풍랑에 떠내려가지 않게 돛대를 세워라"라는 말을 듣고 용두사에 철로 된 당간(幢竿)을 세우게 된다.
철 당간(幢竿)은 물 위에 배가 풍랑을 만나 여기저기 휩쓸려 다니지 않도록 돛대를 세울 필요가 있다하여 만들어진 문화유산으로 이후 청주를 "주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15권 청주목 고적조에 동장(銅檣, 철당간)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이 철당간은 본래 ‘고을 성안의 용두사에 있다. 절은 폐사(廢寺)가 되었지만 돛대는 남아 있으며, 높이가 10여 길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처음 주(州)를 설치할 때 술자(術者)의 말을 써서 이것을 세워 배가 가는 형국을 나타내었다’
청주시청사를 설계한 강명구 교수는 1995년 건축가 잡지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청주시청사는 주성(舟城)의 이름에서 착안해 외관을 배 모양으로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당시로서는 모든 관청건물, 초등학교 등 공관에서 운영하는 건물들의 Symmetric한 좌우대칭형의 위압적인 외형에서 벗어나 관청건물의 좌우 대칭적 중심강조를 없애고 주민이 친근감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외형을 주 테마로 한 관청 건물을 시도하였다. 그것이 청주시청사의 설계개념이다. 오래된 시일이라 지금보면 부끄럽고 후회되는 점도 많으나 그 당시(30여년 전)로는 최선을 다했다”
건축가 잡지에서 청주대 김태영 교수는 설계자인 강명구 교수가 언급하지 않은 청주시청사의 건축적 특징을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
주성(舟城)의 배 모양을 은유적으로 표현
지면 레벨인 대지의 지평선은 무심천의 수평선
그 위에 3층 규모의 배 몸체가 부유
옥탑 부분은 돛대
수평선은 층을 구분하는 수평 돌림띠와 난간선에 의해 더욱 강조
청주는 지형적인 모습이 고려초 부터 물 위에 배가 떠 있다 하여 주성(舟城)이란 이름을 가짐과 동시에 행주지세(行舟之勢, 사람과 재물을 가득 싣고 출발하려는 배를 묶어 두었다는 뜻)의 의미를 가진다고도 볼 수 있다.
청주시청 본관동은 건축 첫 해인 1965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 건축물의 외형을 잘 보존하고 있기에 김태영 교수가 밝힌 특징적인 모습이 잘 드러난 것을 볼 수 있다.
청주시청 본관동은 건물의 앞(남쪽)은 건물 바깥으로 돌출된 캔틸레버 형식의 수평 돌림띠를 두고 돌림띠를 안정적으로 무게를 받치기 위해 전통 목구조 건물의 공포(栱包)를 따와 돌림 띠 하단에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한 것을 볼 수 있다.
청주시청은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건물 전면에 있는 수평 띠 위에 전통 목구조 난간을 철근 콘크리트로 재해석하여 평난간을 배치했다. 평난간은 난간 동자를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하고 2개의 띠줄을 배치함으로서 그 미(美)를 한껏 뽐내고 있다.
이런 특징들이 모여있는 청주시청 본관동은 시간이 흐르면서 1960년대 당시의 청주의 현대 건축의 포문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청주시청 본관동은 설계자인 강명구 교수가 청주의 지형적인 특징(舟城)을 반영하여 건물 옥상의 기계실 위에 돛 대를 형상화하여 입체적으로 만들어놓았다. 돛 대로 구성한 구조물은 2층 높이의 구조물로 세워져 있었다.
시청사 옥상에 돛 대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구조물은 설계자인 강명구 교수가 시청사를 배에 빗대어 만들었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청주시청은 동시대에 같이 만들어진 건축물 중에서도 외적으로 1층의 일부를 필로티 형태로 만들면서 필로티다음엔 1층을 아케이드 형태의 곡선으로 구성하여 유려한 곡선미를 뽐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60-1970년대 당시 1층을 청주시청 본관동과 같이 필로티 구조로 선택한 건물은 청주 시청 외에 찾아볼 수 없는 건축학적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청주시청은 이런 특징 외에도 지면에서 계단없이 바로 사무실로 진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관청은 물론이고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대구시청 산격동 청사(구, 경북도청), 강남구청(구, 경제기획원 조달청), 구미선산출장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다.
청주시청 본관동의 이러한 구조는 공공청사의 권위적인 모습이 아닌 시민과 함께 하려는 모습이 돋보이는 건축물의 설계 의도가 시민과 함께 했음을 나타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청주시청 본관동을 설계한 강명구 교수는 청주시청사 외에도 서울대 농대 기숙사, 예총회관, 부산해무지청 등을 설계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도시의 급성장으로 인해 남아있는 건축물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서울대 농대(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대학)가 수원에 있을 당시 설계한 기숙사는 폐허가 되어 관리되지도 않고 있다.
이번 글에서 청주시청 본관동의 외관을 살펴보면서 청주시청의 건축적인 측면을 들여다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민선 8기 청주시 이범석 시장이 시의회에서 발언한 시청사 왜색 발언에 대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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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이런 글을 쓰게 된데는 민선 8기 청주시장의 독단적 행동 규탄과 함께 합리적인 근거도 없는 왜색 발언을 반박하기 위해서 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