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기분전환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다. 신체 나이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서는 주변에 가벼운 자조 혹은 으쓱함을 표현할 심상이었다. 국가에서 격년마다 지원하는 기본 검사에 대장내시경을 추가로 받은 것도 그저 재미있는 하나의 이야깃거리를 만들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금식과 전신마취, 스마트폰에 녹음된 자신의 취한 잠꼬대 따위로 말이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난 그를 부른 의사는 마네킹 같은 얼굴로 대장암 말기를 선포했다. 모니터에 뜬 내시경 화면을 볼 때까지만 해도 이것이 나의 곱창인가, 오늘 저녁에는 곱창을 먹으면 좋겠군, 생각하며 속으로 키득거리던 그는 의사의 말을 듣고는 시시콜콜한 농담들이 동물원에서 탈출한 타조나 낙타의 움직임으로 흩어져 멀어짐을 느꼈다. 누가 빨간 소스를 찍어 두세 번 씹다 뱉은 곱창 같은 모습의 대장을 모니터로 바라보고 있으니 농담의 빈자리를 순식간에 절망이 채우고 있었다. 살 수 있을까요, 그가 의사에게 내내 간절히 물었을 때 처음에는 큰 병원에서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는 말만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통계적으로…’ 하고 말하며 온라인 쇼핑몰에서 선심 쓰듯 뿌리는 할인쿠폰의 할인율과 비슷한 퍼센티지를 답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스마트폰에 녹음된 음성을 틀었다. 그는 수면마취를 아주 얌전히 받은 편이라 아무 잠꼬대도 하지 않았다. 내시경을 진행하는 의사의 탄식만 들렸다. 이것 봐, 용종이 심한데… 아이고, 암이네, 암이야. 그것도 한참… 그는 자신이 어째서 암에 걸려야 하는지, 걸리더라도 왜 이리 이른 나이에 그렇게 됐는지 생각했다. 그렇게 긴 슬픔 속에서 헤매며 견딜 수 없는 억울함을 느꼈다.
그는 두려운 것이 사라졌다. 어차피 죽는다. 모두가 죽기는 죽지만 나는 정말로 곧 죽는다, 길어야 일이 년 정도겠지… 그는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인성을 지닌 사람으로 변모했다. 경찰에게 잡혀가지 않는 선에서 그랬다. 잡혀 들어간다면 유일한 재산인 시한부의 자유마저도 빼앗길 터였으니까. 경찰에 잡혀가지 않는 선에서도 사람들을 괴롭히기는 충분했다. 끝없이 시비를 걸고 다녔다. 골목에서 껄렁대며 침이나 찍 뱉어대는 청소년들부터 시작해서 물가 상승에 맞춰 메뉴 가격을 올린 음식점에서, 거기서 술에 취해 큰 목소리로 떠드는 거구의 손님들에게도, 건방지게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는 자전거와 전동킥보드를 탄 이들에게도, 배달부에게도, 길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좁은 길을 가로로 길게 가로막고 다니는 무리와 영화관에서 소곤거리는 남녀에게도, 전단지 아르바이트생과 늦은 시간 노래방 앞에 멈춘 새까만 밴과 거기서 내리는 이들에게도, 휴지와 함께 신축건물 혹은 기독교를 홍보하는 족속들에게도… 언제나 거슬렸던 이들에게 그는 마음껏 덤비고 지껄였다. 누구도 역으로 해코지하는 경우가 없었는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에게 풍기는, 연소되어 잿더미로 변한 미래의 고약한 냄새를 맡아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신을 믿느냐면서 영상을 튼 태블릿을 들이밀던 맑은 얼굴의 사이비 종교인에게 피투성이 곱창을 몸에 품은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몰아붙였는데, 마치 자신이 신에게 차단당한 존재임을 뒤늦게 깨달은 듯 당혹스러워하던 사이비의 얼굴은 그를 아주 즐겁게 했다. 처음으로 진짜 통쾌함을 맛본 그는 운명에 대해 떠드는, 특히 믿을 수 없는 방식으로 운명을 파헤치며 돈을 받아먹는 사기꾼들에게 비아냥거리기로 결심했다.
줄까지 서서 받아야 한다는 유명한 역술가들을 모욕하는 행위는 그야말로 끝내주는 일이었다. 그들은 운명을 가지고 떠드는 직업 특유의 전형적인 주술적 태도로 미래에 대한 낙관 혹은 비관적인 조언을 내밀었지만, 이내 그의 망가진 곱창과 머지않아 곱창에 집어삼켜질 생애가 적나라하게 폭로되자 마치 둘 사이에 놓인 탁상에 피투성이 꼼장어가 펄떡이며 튀어나오기라도 한 듯 놀라서는 하얗게 질려 버리고 말았다. 그러면 그는 만족스러워하며 돈을 지불하고는 떠났다. 물론 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멍청이들, 당신들 헛돈 쓰고 있는 거야. 봤지? 얼마나 엉터리인지!”
하고 떠들면서 말이다.
이전까지는 체감한 적 없었지만, 대장암 말기 판정 이후로 그는 용변에 불편함을 느꼈고 항상 배에서부터 번지는 통증에 시달렸다. 점점 버틸 수 없어서, 진통제를 먹어도 잠들지 못할 때가 잦았다. 꿈속에서 죽음에 쫓기던 그는, 깨어나서도 다를 것 없다는 현실에 내내 절망했다. 기약 없는 치료나 달려드는 곱창 괴물 대신에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게 더 현명할지도 몰랐다. 몸져누워 아무 선택도 불가능해지기 전에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마지막으로 느낄 못된 만족감이 필요했다. 운명에 대해 떠들며 돈을 받아먹는 이들이 뒤집어쓴 신비를 볼품없이 벗겨내는 즐거움은 마약과 같은 효능이 있었다. 거기에 취한 채라면 기꺼이 죽어도 좋을 것이었다.
그는 현 대통령뿐 아니라 전 대통령, 전전 대통령은 물론 장관급 인사들도 담당할 정도로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갔다. 화려한 이력 덕에 예약이 빡빡할 것 같았으나, 야당의 네거티브 정치공작에 휘말리는 바람에 정계의 고객을 잃고 소송까지 겪어 일터를 옮겨야 했던 무당은 가능한 데까지 돈을 땡겨 모으려는 듯 잠자는 시간을 줄이며 종일 예약을 받고 있었다. 그는 생각보다 손쉬운 예약에 실망했다가도, 이처럼 체면을 구기게 된 유명 무당에게 재차 굴욕을 안겨주는 일이야말로 죽기 전 저지를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무당의 인상은 확실히 그간 보았던 장사꾼들과는 달랐다. 허벅지만 한 팔뚝을 지닌 불량배에게도 겁을 먹지 않았던 그마저도 조금 움츠릴 만큼 만사를 꿰뚫는 눈이었다. 그러나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중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닥쳐올 풍파를 피하지 못하여 블랙프라이데이와 다름없는 할인을 감내하는 무당의 신세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한낱 장사치에 불과할 것이었다. 그는 교묘히 뭉뚱그린 말로 미래에 대해 물었는데, 무당은 알아서 하겠다는 듯 말을 자르며 그를 대강 위아래로 훑어본 뒤 답했다.
“행실을 조심히 해! 그럼 무탈히 지낼 것이야.”
무탈히 지내? 그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곱창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곱창뿐 아니라 한편으론 몰락한 셈이나 다름없는 무당의 신세까지도 함께 조롱하면서 말이다. 그 말이 역린이라도 건드렸는지 무당의 얼굴은 금세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는 이때를 위해 준비한 현금을 무당의 얼굴로 흩뿌렸다. 마냥 견고할 것 같던 무당의 얼굴이 슬금슬금 무너지고 있었다. 그는 기분이 좋아 웃었다. 신내림이라도 받은 건 아닌지 스스로 의심할 정도로 우렁차게 껄껄 웃었다. 그쪽 앞가림이나 하시지! 팽이나 당한 주제에! 한참을 웃던 그는 당장 죽지 않기로 했다. 이 감정은 아주 단순하게 움직였는데, 그를 시한부라는 절망에 빠뜨리는 대신, 집으로 돌아가 발을 쭉 뻗고 자고 싶다는 충동에 다다르게끔 한 것이다. 그는 기쁨에 홀린 채 무당과 마주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때 무당은 다시 견고해진 얼굴로, 견고함을 넘어 극저음이 폭발적으로 요동치는 얼굴을 하고서는 손을 그의 뒷모습을 향해 뻗었다. 서슬 퍼렇게 뜬 눈과 천장을 향한 손바닥의 높이가 일직선으로 맞춰지는 순간, 그는 무당의 손바닥 위에 놓인 꼴이 되었다. 주먹을 쥔 손이 손바닥을 내리찍고는 지긋이 무언가를 짓이겼다.
정말이지 상쾌한 아침을 맞이한 그였다. 그는 무심결에 화장실에 앉아 마술 같은 쾌변을 보았다. 너무나 매끄럽게 나온 변이 소용돌이 아래로 들어가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그는 변기에 새로 물이 차오른 뒤에야 놀라움에 빠졌다. 어떻게 된 거지? 그는 온종일 건강했다. 싱싱한 생기가 단전에서 넘실대는 게 느껴졌다. 통증은 씻긴 듯 사라진 채였다. 그는 죽기 직전의 마지막 선물과 같은 몸의 각성 따위일까, 생각하며 기뻐하지 못했다.
이 상태가 일주일이나 지속된 뒤에야 그는 슬그머니 증상을 확인하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재차 내시경을 요구하는 그에게, 의사는 큰 병원에 가시라니깐… 하며 난색을 지었는데 검사 이후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와 모니터를 번갈아보며 완치, 완치… 하고 말을 더듬었다. 그 역시 얼떨떨한 채로 병원 건물을 나서며 거리를 걸었다. 구름에 가려져 있던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며 세상을 눈부시게 비추었다. 가만히 서서 빛으로 몸을 따뜻하게 달구던 그는 환희에 휩싸였다. 운명은 이런 것인가! 문득 고개를 돌린 곳에 정관장 매장이 보였다. 그는 한껏 받던 양기에 이끌리듯 매장으로 향했다.
온라인 예약창을 보니 빈 시간대였다. 그는 신당의 문을 벌컥 열었다. 손에는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몰라봬서 죄송하다고,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무당에게 인사를 건넬 작정이었다. 이제 그에겐 모든 게 아름다워서, 제 생각에서마저 경이로운 반짝임을 감지해낼 지경이었다. 침통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무당이 화들짝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하는 그의 말을 자르며 무당은 냅다 소리쳤다.
“너 보통 것이 아니로구나!”
네, 네, 그렇습니다. 하고 그는 쇼핑백에서 고가의 녹용 농축액 6개월치를 꺼내 보였다. 무당이 마구 박수를 쳐 주어서, 저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흡사 종교인의 그것과 같은 미소를, 폭죽 같은 손뼉 소리가 에워쌌다. 그는 주변에 건넬 이 시기의 놀라운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재미있는 모습을 포착했다. 무당도 얼마나 놀랐던지 한 손에 스마트폰을 쥔 채로 짝짝짝, 손뼉을 치더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