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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의 가치

진짜와 가짜가 뒤섞이는 세상

by Rosary

나는 “Original” 애호가다. 원작소설이 있는 영화라면 반드시 원작소설을 찾아 읽어본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레베카. 1940>, <새. 1966>의 원작소설을 쓴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들을 찾아 읽어보고 애거서 크리스티에 필적할만한 서스펜스의 여왕임을 알게 되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 2003>을 보고 나서 연극 <날 보러 와요>를 알게 돼서 보고 난 후 흡족했던 기억이 있다.


2010년대 이후 가요계는 온통 리메이크 열풍이다. 2030들에게 익숙한 그 노래들이 사실은 산울림, 이문세, 유재하, 강수지, 이소라 등의 원곡이 대부분이다. 좋은 노래들이 젊은 감각으로 만들어져서 새로운 세대들과 공유한다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원곡을 능가하기는커녕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리메이크곡을 만나기란 매우 어렵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OST 손디아의 “어른”을 70대 중반의 가수 정미조가 리메이크한 곡만은 원곡을 뛰어넘었다고 할 만큼 감동적이긴 했다.


문학, 영화, 음악, 미술, 건축 등 창작자들에게 “Originality”는 자존심과 긍지의 근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인기와 부를 쉽게 얻기 위해 남의 것을 훔쳐서 제 것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세계의 넘쳐나는 콘텐츠들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어려운 일이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우격다짐으로 제 것으로 만드는 이들도 있지만) 세계화 이전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별다른 가책 없이 누군가 피땀으로 이뤄낸 성과물을 통째로 훔쳐서 영광을 가로채는 일이 적지 않았다. 평생을 천재 소리를 들으며 부와 명예를 쌓았는데 사실은 “가짜”였음을 뒤늦게 알게 돼서 배신감에 허탈했던 적도 있다.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10년도 되지 않아 ChatGPT와 AI가 빠르게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으며 이를 얼마나 익숙하게 다루는지는 새로운 세대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물론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지식이 떨어진다면 ChatGPT와 AI는 어리둥절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검증할 만한 능력자여야 제대로 된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듯한 결과물을 맞닥뜨릴수록 “Originality” 애호가인 나는 공허함과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지난봄 지브리 스타일” AI 이미지 유행을 재밌게 즐길 수 없었던 이유다. 지브리 캐릭터와 서사, 작품을 모른 채 이미지만을 소비하는 현상이 유쾌하지 않았고, “Originality”의 가치가 무너지는 현상을 짐작할 수 있는 예고편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ChatGPT와 AI가 그럴듯하게 흉내 낸 수준이 아니라 인간의 작품인지 AI의 작품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콘텐츠가 넘치는 세상이 도래하면 그 혼란과 무질서를 인간이 과연 통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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