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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괴로울수록 똑바로 쳐다보라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

by Rosary

빈센트 반 고흐, 에곤 실레, 프리다 칼로 등 자화상으로 유명한 화가들이 많지만 내가 본 자화상 중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은 그림은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이다. 자화상 속 그의 나이는 40대 중반이다. 재상이 되고도 남을 높은 학식과 고매한 덕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학자였지만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못했고, 결국 고향 해남으로 낙향해서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그림을 완성하고 3년 후 불과 47세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지금이야 40대 중후반이면 아직 한창나이지만, 자화상 속 윤두서의 얼굴은 다소 진이 빠진 듯한 노인의 모습이 담겨있다. 평생 학문과 덕을 쌓아 올렸지만 끝내 관직에 나아가지 못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살았던 시대를 이해해야 한다. 그는 25세 되던 1693년(숙종 19년) 진사시에 합격했다. 그러나 당시는 어느 때보다 당쟁이 극심한 시절이었다. 인현왕후(서인)와 장희빈(남인)으로 맞서는 궁중 권력다툼은 당쟁과 맞물려 숙종 시대는 혼란과 갈등이 이어졌다.


윤두서와 그의 형 윤창서는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윤 씨 집안사람들의 줄초상과 옥사가 이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윤두서는 관직에 나가 정치적 출세를 하는 것을 포기하고 가족을 돌보면서 학문에 정진하는 삶을 선택했다. 하릴없이 30대와 40대를 보낸 윤두서는 40대 중반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고향인 해남으로 돌아갔다. 윤두서의 자화상에는 이러한 그의 고독과 쓸쓸함이 그대로 녹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면을 응시하는 형형한 그의 눈빛은 좌중을 압도하는 힘과 당당한 기개가 느껴진다.

1937년 표구 전 그림과 현재의 그림

우리가 알고 있는 윤두서의 자화상은 목 아래가 없이 얼굴과 수염만 보여 더욱 강렬한 인상을 주지만 사실은 어깨선의 도포를 입은 모습이 그려졌다고 한다. 1937년 표구 전 그림이나 자외선 촬영한 사진에는 도포선이 확연히 보인다. (KBS 역사스페셜 “윤두서 자화상의 비밀”)윤두서의 자화상은 아무리 현실이 괴롭더라도 외면하지 말고 정면으로 응시하라고 말을 거는 것 같다. 현실을 똑바로 봐야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윤두서의 자화상은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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